“원장님 왜 안 나오셨습니까?”
“공식적으로 사과 안 하십니까?”
“질문 안 받습니까?”
“사회적 신뢰 회복하려면 이렇게 오랜 시간 분란 일으킨 서울대병원이 책임있게 답변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정치적인 환경이 바뀌어 이렇게 됐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15일 오후 열린 서울대병원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사망 종류 수정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서창석 병원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에 대해선 질책이 쏟아지기도 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14일 지난해 9월25일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의 사망 종류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기존 ‘병사’ 기재는 백씨가 2015년 11월14일 경찰의 직사살수로 치명상을 입은 사실을 은폐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 서울대병원 노조(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는 오후 2시 간담회가 열린 서울대 어린이병원 임상2강의실 앞에서 '서창석 파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대병원 노조(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는 오후 2시 간담회가 열린 서울대 어린이병원 임상2강의실 앞에서 '서창석 파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사망 종류와 더불어 백씨의 직접사인은 심폐정지에서 급성신부전으로, 중간사인은 급성신부전에서 패혈증으로, 마지막 선행사인은 급성경막하출혈에서 외상성경막하출혈로 수정됐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1월 유족 측이 사망진단서 수정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망진단서 수정 논의를 시작했다. 6개월 여 간 원내 교수진 등과 수정 여부를 검토해 온 서울대병원은 담당 진료과인 신경외과에서 ‘사망진단서는 대한의사협회 지침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힘에 따라 지난 7일 의료윤리위원회를 개최해 수정권고 방침을 결정했다.

병원은 당시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권아무개 전공의가 14일 의료윤리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함에 따라 사망진단서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은 백씨가 사망한 지 10여 개월 만에 사인 종류가 수정된 상황에 질책성 질문을 제기했다.

‘정치적 환경이 바뀌어 이렇게 됐다는 생각을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 김연수 부원장은 “작년에 설치된 특별조사위원회는 수정할 것을 권고할 수 있었지만 강제 규정을 담진 못했다. 12월 중순부터 지속적으로 논의해 6개월이 걸린 것”이라면서 “정치적 상황의 변화 때문에 서울대 교수들이 이렇게 동의했다고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답했다.

사망시점 기준 10개월, 논의 시작 기준 6개월이 소요된 이유에 대해 병원 측은 “서울대병원에 교수 500명이 있는데 국회의원이 있는 거라 생각하면 된다. 공식 논의는 듬성듬성 있었고 이외 서울대 병원이 교수들을 직접 만나고 설득하는 비공식적 논의가 훨씬 더 필요했다”면서 “한 분 한 분 찾아뵀다. 의사 사회엔 원로 의견이 중요해서 원로도 찾아뵙는 등 의견을 듣고 정리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유족·시민사회·의료계 등에서 문제제기가 있었던 점, 병원 내 의료윤리위원회가 상설기구인 점에 비춰 병원 측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 부원장은 “6개월 간 여러 단위에서 여러 논의가 있었다. 합의를 이끌어내고, 서울대 전체 의견을 모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뭐라 더 드릴 말씀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의 수준으로 서울대 병원 교수들이 합의를 해주고 서울대 전체 의견으로 합의를 해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서울대 병원 의료진이 기재한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중 일부.
▲ 서울대 병원 의료진이 기재한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중 일부.

서창석 병원장이 배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강한 질타가 이어졌다.

취재진들 사이에선 “원장님 왜 안 나오셨습니까?” “공식적으로 사과 안 하십니까?” “원장님 앞으로 공식입장 밝힐 예정입니까?” “앞으로 거취는 어떻게 됩니까?” 등의 질문이 연이어 나왔다.

기자간담회를 이끈 김 부원장은 “기자회견이 아니고, 기자간담회 형식으로 설명을 하는 자리니, 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부원장과 진단서를 설명할 법의학 교실 교수, 담당과인 신경외과 교수 등이 나온 것”이라면서 “진료부원장이고 이러한 진단서 논의과정을 최종 결재했으니 제가 나온 것이라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했는데 이 자리가 그렇게 될까. 병원장 처벌은 면제되는 것이냐”는 한 취재진의 질문에 병원 측은 “이 설명회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아니지만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간담회가 열린 서울대 어린이병원 임상제2강의실 밖에서는 서울대병원 노조(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 30여 명이 “유가족과 국민에게 사과하라” “오병희, 신찬수 숨은 부역자도 처벌하라” “서창석 백선하 파면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외력에 의한 사망이냐’는 확인 질문에 담당 신경외과 교수는 즉답을 피하면서 “그렇게 봐야할 것 같다. 어떤 원인에서 생겼는진 의사가 말할 입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담당 전공의가 입장을 밝혔느냐는 질문에 병원 측은 “진단서 수정이 (입장) 아니겠느냐”며 “경위 설명이나 사과 등은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근본 대책 수립한다고 시간 더 오래 걸렸다”

서울대병원은 논의가 길어진 배경으로 ‘근본 대책 수립’과 ‘전공의 보호’를 강조했다. 김 부원장은 “진단서 수정도 수정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근본적으로 의사 개인의 판단과 집단의 판단이 다를 때 이를 조정하고 권고할 수 있는 의사 직업윤리위원회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이 새로이 제정한 의사직업윤리위원회규정은 병원 소속 의사가 사회통념상 의사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책무를 수행할 의무를 가지며 직업윤리위원회의 심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뒀다.

규정 17조에 따르면 위원회는 심의 후 지체없이 “피심의자에 대한 심의 결과 서면 통보 및 개선 권고 사항을 고지”해야 하고 “고지에 따른 행위 개선 계획 및 결과 제출을 요구”해야 한다.

김 부원장은 “전공의는 지도교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에 직접 지도를 받는 동안엔 이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그 기간이 올해 4월 말로 끝났다. 준비해오던 일들이 5월 초에 다시 시작돼 어제와 같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유족 측을 만난 병원 측은 “1년간 심려, 걱정을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렸다”면서 “유족 측은 ‘늦긴 했지만 여러 논의와 절차를 거쳐 서울대 병원에서 사망 진단서를 수정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 ‘300일 이상 생존함으로써 이별 기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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