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권 독립 요구·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쳤던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파업 당시였던 1989년, 박노황 조합원은 ‘편집국장 직선제로 민주언론 쟁취하자’는 피켓 뒤에서 ‘투쟁’이라 적힌 머리띠를 둘렀다. 그랬던 박노황 조합원이 2015년 3월 연합뉴스 사장에 취임했을 때, 그는 구성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지난 5일부터 이주영 전국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은 출근길과 점심시간에 ‘불공정보도, 인사전횡, 사내 민주화 퇴보, 박노황은 퇴진하라’는 피켓을 들고 박 사장을 쫓아다니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연합뉴스 사무실에서 이주영 지부장을 만나 왜 사장퇴진운동에 나섰는지, 연합뉴스의 보도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해야 할지 등에 대해 물어봤다.

▲ 1989년 편집권 독립과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던 박노황 조합원(왼쪽)과 2015년 3월 취임 직후 임원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는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사진=연합뉴스지부, 미디어오늘
▲ 1989년 편집권 독립과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던 박노황 조합원(왼쪽)과 2015년 3월 취임 직후 임원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는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사진=연합뉴스지부, 미디어오늘

그는 왜 사장 퇴진을 주장할까. 이 지부장은 “언론사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편집권 독립제도다. 2012년 공정보도쟁취파업의 성과물로 얻은 편집총국장제를 박 사장이 취임하면서 일방적으로 폐기했다”며 “노사합의 단협에 명시된 것을 인사권 침해라는 명목으로 없앤 것만으로도 공영언론사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현 경영진은 편집상무(콘텐츠융합담당 상무)라는 직책을 만든 다음 그가 편집인 역할을 해 편집국장을 휘두르는 형태로 편집에 개입했다. 또 ‘3분의2 이상 투표·과반 찬성’으로 편집국장 신임을 묻는 중간평가제도 일방적으로 없애버렸다. 메르스 사태 때 정부의 미흡한 대응이나 국정농단 사태를 다룬 기사는 ‘톤다운’됐고, 국정 역사교과서는 ‘단일교과서’라는 이름으로 세탁됐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경영진은 반발하는 언론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줬다. 2015년 공병설 전 지부장과 이 지부장을 각각 충북 제천과 대전으로 발령 낸 게 대표적이다. 이 지부장은 “(박 사장은) 노조를 ‘암적인 요소’로 지칭한 사례도 있고, 새 (노조)집행부에 대놓고 ‘언론노조 배후 정치세력인 민주노총한테 조종당하는 거 아니냐’고 한 적도 있다”고 꼬집었다.

▲ 이주영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장은 지난 5일부터 출근길과 점심시간에 연합뉴스 1층, 임원실 앞 등에서 박노황 사장 퇴진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지부 제공
▲ 이주영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장은 지난 5일부터 출근길과 점심시간에 연합뉴스 1층, 임원실 앞 등에서 박노황 사장 퇴진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지부 제공

이 지부장은 박근혜 정부에서의 내부 투쟁을 두고 “살아있는 권력에 강하게 저항하지 못한 건 사실”이라며 “외부상황만 탓할 건 아니”라고 반성했다. 그는 “박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조직문화 건전성 회복 등 우리도 함께 변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왜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느냐만 가지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2003년 뉴스통신진흥법 만들어지기 전에도 KBS·MBC가 70%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어 정부영향력 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정 정치세력이 공영언론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7명은 대통령 지명 2인, 국회의장 추천 3인, 신문협회 추천 1인, 방송협회 추천 1인으로 구성된다. 정부·여당 쪽에 기울어지게 돼 있다.”

이사 7명을 여야 4:3 비율로 하거나 이사 수를 9명으로 늘려 5:4로 하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정한 뒤 특별다수제(3분의2 이상 찬성)를 도입해 극단적인 성향의 사장이 오는 것을 막겠다는 아이디어와 함께 내부에선 언론학계·기자협회·언론노조 등 이사 추천권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연합뉴스 독립성을 위해 정부로부터 받는 구독료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지부장은 “우리가 제대로 투쟁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비판이지만 정부구독료는 대부분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구독료를 세금특혜로 이해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다. 연합뉴스는 아랍어·일어·영어·프랑스어 등 외국어로 기사를 쓰는 기자가 70명 이상 존재한다. 연 350억 원 이상이 연합뉴스에 지원되지만 거의 다 목적이 정해져있고, 규모를 생각해보면 꼭 많다고만 볼 수도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지부장은 “국가기간뉴스통신사 규모로 보면 연합뉴스는 베트남통신보다도 작다”며 “중동의 뉴스를 서구가 아닌 한국의 시각으로 보거나 문화를 확산하는 등 공적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연합뉴스 통제를 막기 위해 정부구독료 일괄계약권을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 지부장은 “일괄구독을 하지 않았을 당시 기자들이 일일이 예산담당자를 만나 영업활동을 했던 게 사실”이라며 “구독료를 끊고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공익적 기능을 담당하는 뉴스통신사는 필요하다”고 답했다.

▲ 8일 연합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주영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은 “언론사에서 언로가 막힌 지 2년이 넘어간다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라며 사장퇴진운동에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사진=연합뉴스지부 제공
▲ 8일 연합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주영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은 “언론사에서 언로가 막힌 지 2년이 넘어간다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라며 사장퇴진운동에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사진=연합뉴스지부 제공

연합뉴스를 둘러싼 대표적인 논란은 뉴스도매상이 포털을 장악해 언론생태계를 어지럽혔다는 주장과도 연관돼 있다. 이에 대해 이 지부장은 “전통적 의미의 뉴스도매상이라는 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의부터 필요한 부분”이라며 “태생적으로 도매상이었으니까 엄청난 규모의 소매시장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도 정당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 지부장은 “특정 언론사들의 이익을 위해 연합뉴스가 포털에서 빠지는 것과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한 국가기간뉴스통신사를 만드는 것을 놓고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관행상 기수별로 내려오며 맡는 노조위원장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 지부장이 맡고 있다. 그는 “막내기자들이 부끄럽다·반성한다고 하는데 3년차들이 뭘 그렇게 잘못해서 반성할 게 많겠느냐”며 “궁극적으로 보면 선배들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뭔가는 해야겠고,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등의 성명을 낸 많은 선후배들이 있어 나설 수 있었다”며 “언론사에서 언로가 막힌 지 2년이 넘어간다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라며 연합뉴스에 대한 응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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