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룸’에 남은 말들 “이것은 분명 일하다 얻은 병이다”
‘클린룸’에 남은 말들 “이것은 분명 일하다 얻은 병이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이야기' 연속기고①] '클린룸' 증언 이후 1년, 여전히 고통은 현재 진행

2007년 3월 고 황유미씨가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숨을 거둔 지 10년이 지났다. 피해자들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배제없는 보상과 진실한 사과를 요구하며 지금까지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6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 인권지킴이)’이 제작한 “클린룸 이야기” 상영회가 열린다. 삼성 반도체, 하이닉스 반도체, 엘지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첨단 전자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 뇌종양 등 직업병 피해를 입은 20여명의 젊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소중한 증언이 담겼다. 미디어오늘은 상영회를 앞 두고 제작에 함께 한 이들이 보내 온 글을 세 차례에 나눠 싣는다.

※이 글은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에 공동게재됩니다.


“지난해 피해자들과 만났던 이야기를 짧은 글로 정리해주실 수 있을까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벌써 며칠째 노트북의 ‘커서’는 한 글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깜빡거리고 있었다. 인터뷰 녹취록을 들춰보니 마치 어제 일인 듯 피해자들의 육성이 생생히 되살아나건만, 1년 전 직접 들은 그 믿기 힘든 ‘진실들’을 다시 꺼내어 마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 며칠, 꿈 속에서 ‘먼지없는 방’, ‘클린룸(반도체를 제조하는 공간)’에서 하얀 방진복 틈으로 유난히 도드라지던 피해자들의 눈동자를 본 듯도 하다.

삼성반도체, 엘지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LCD 사업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이들, 그리고 남겨진 유가족 분들의 증언이 담긴 한 편의 영상 “클린룸 이야기”가 오랜 기다림 끝에 제작을 마치고 곧 공개된다는 소식이다. 지난 여름, 영상 속 화자인 피해자들, 혹은 유족들의 맞은 편에서 매번 몇 번씩이나 울음을 삼키며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그리고 다큐의 대본을 건네받아 몇 줄 읽어 내려가는 지금, 다시 눈앞이 흐려진다.

▲ 오는 6월20일 오후 2시 국회 소회의실에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증언이 담긴 영상 &#039;클린룸 이야기&#039; 상영회가 열린다.
▲ 오는 6월20일 오후 2시 국회 소회의실에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증언이 담긴 영상 '클린룸 이야기' 상영회가 열린다.

인터뷰를 마친 뒤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이 분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 때의 절규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위로받지 못하고 있다.

영상의 스크립트를 읽으며 여러 번 전율을 느꼈다. 이제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이들의 ‘또렷한 증언’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이들은 모두 나고 자란 곳이 달랐고, 훗날의 꿈도 달랐다. 하지만 입사동기를 묻는 질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전혀 몰랐지만 ‘삼성’이라는 두 글자를 믿고’ 취업했다”는 같은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공장에 취직하기 전까지 매우 건강했다. ‘신체적 조건’은 반도체 공장에 취직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으므로.

“그냥 일을 하러 간다라고.. 삼성이란 곳은 솔직히 좀 크고 이런 데니까 조금은 기대를 하고 간 거죠. 어린 나이에 처음 취직을 하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간 거죠”

거대한 기계들이 들어선 낯선 공장에서 어려운 반도체 용어들을 외워가며 반도체 ‘웨이퍼’를 다루는 일도 ‘사수’와 ‘언니들’이 따라하라는 대로 하다 보니 조금은 몸에 베었다. 하지만 그렇게 교대제 근무가 익숙해지는 몇 년 동안, 그들은 어떤 화학물질을 다루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냄새가 고약한 무언가’를 만지면서 가끔 경보음이 울릴 때마다 동료의 건강을 염려했고, 유산을 경험했다는 여성들에 대한 소문을 자주 접했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져야 했는지 짐작조차 못했다.

“투명유리로 덮인 설비에 불산, 황산 같은 게 들어있는데 거기에 웨이퍼가 들어가요...몇 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약품 끓는 온도가 써 있고..거기서 흄이 나오는 게 보여요.”

“제가 신입사원 때 셧다운이 크게 생겼어요. 다 대피하라고.. 그런데도 진행하던 런(Run)들 다 박스 안에 넣어 놓고 나라가고 하니까 그거 다 정리하고 동료들이랑 나오는데... 뒤돌아보며 ‘끝까지 남아서 처리하는 엔지니어들 어떡하지...’”

피해자들의 무수한 증언은 의심할 여지 없는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분명 일하다 얻은 병이다.”

그리고 이는 반도체 공장에서 희귀병을 얻은 이들의 제보가 200건 이상 이어지고 최근 ‘세계 최초로’ 각종 반도체 직업병을 산재로 인정하는 판결이 속속 나오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사실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한 삼성의 태도를 통해 재차 확인되고 있다.

“(동료가 일하다 사망해) 장례식장에 갔었는데 삼성 관계자들이 찾아와 동료 부모님께 그러더라구요. 산재신청하면 안될 가능성도 많고 보상금도 되게 적다. 산재 신청 안 하면 위로금을 드릴 수 있다.”

“..부모들한테 ‘회사에서 이런 약품을 만진다’라는 동의를 구해봤나. 위험하다고 하면 누가 보내겠는가. 저런 병 걸리면 나몰라라 하고.. 회사도 그만큼 일을 해주니까 운영되고 돈을 번 것이 아닌가.”

국가위의 권력 ‘삼성’이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외면할 때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오늘로 616일째 강남역에서 농성중인 ‘반올림’과 산재 승인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법률전문가들, 양심을 지닌 시민들의 힘으로 이들은 삶을 지탱해왔다.

그러나 삼성은 이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얼마전 김미선 씨(삼성LCD/다발성경화증)에 대한 법원의 1심 승소 판결에 대해 항소했다. 점점 희미해지는 시력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몸의 경직을 두려워하면서도 밝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했던 그녀에게 1심 판결의 결과는 ‘이기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그녀의 병이 결코 ‘그녀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하나의 징표였기 때문이다.

20일 국회에서 상영될 ‘클린룸 이야기’ 화면 속 피해자들의 시선은 이런 삼성을 향해, 근로복지공단을 향해 말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일터에서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새 정부의 약속도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그때 그 클린룸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도 지금 이렇게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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