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파격 인사를 선보이고 있다. 상징성이 큰 인물을 발탁하면서 새정부의 개혁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대표적으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나 박춘란 교육부차관의 경우 전혀 예상치 못한 가운데 나온 깜짝 카드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여성 최초 헬기 조종사 타이틀에 암투병을 이겨내고 소송까지 치르며 군에 복귀한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다. 박춘란 차관은 만 40세에 정부 최연소 여성 부이사관급에 오르는 등 최초 타이틀을 갱신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같은 인사가 가능했던 이유로 참여정부 시절부터 구축해온 국가인재풀 DB를 활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 인사시스템을 가동할 것이라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시스템을 통한 인사가 이뤄져야 밀실인사가 올 수 없다는 뜻을 함께했다.

참여정부 시절 인사수석을 역임했던 박남춘 의원이 지난 2013년 쓴 <대통령의 인사>라는 책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문재인 정부의 인사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에 대한 내용을 총망라하고 있다.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의 핵심은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였다. 인사추천회의는 인사수석실이 추천안을 올리고,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검증안을 올리면 둘을 가지고 심의하는 합의제 기구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인사추천위원으로 참석했다. 인사추천회의는 비서진이 참여하기 때문에 밀실인사나 추천인사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특히 추천과 검증을 분리해 견제가 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인사라는 책의 추천사를 통해 "참여정부는 청와대와 국가청렴위원회가 각각 만든 두가지 인사검증 메뉴얼을 남겨두고 나왔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 중 어느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정부의 인사 노하우를 활용하고 있을까, 적어도 출범 인사에서 보인 바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참여정부의 인사검증 메뉴얼을 적용하면 부적격 판정을 받았을 인사가 이미 낙마한 후보자들 이외에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바꿔말하면 새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남겨놓은 인사검증 메뉴얼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과 같다.

참여정부는 발굴-추천-검증 단계로 이뤄진 인사시스템을 만들었다. 국가인재 DB를 활용해 인사를 발굴하고 인사수석설과 민정수석실이 추천과 검증을 담당해 인사추천회의에서 일명 배심제로 최종 인물을 선정하는 식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인사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정찬용씨를 초대인사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소위 중앙 정치에서 ‘듣보잡’이었던 정씨는 호남과 경남에서 시민운동을 해온 인사였다. 노 전 대통령은 정찬용 보좌관을 발탁한 이유에 대해 남에게 빚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답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초대 정부 인사수석으로 조현옥 수석을 발탁했는데 조 수석은 참여정부 인사수석실에서 정찬용 보좌관과 함께 균형인사비서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조현옥 수석이 새정부에서도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을 활용, 가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수사당국이 만든 존안자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참여정부와 맥을 같이 한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는 "기존의 정부 인사자료를 무조건 배척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과 중앙인사위를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의 검증자료를 충분히 활용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새정부 인사는 과거 형식과 상당히 다르므로 소수 인사들이 작성한 존안자료에는 크게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존안자료 활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사정기관에 주요인물과 관련한 자료를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뒤늦게 자료를 재요구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과거 생성된 인사자료는 사용되고 있고 사용할 것"이라면서 "과거에 만들어 놓은 자료는 청와대가 사용하겠지만 서훈 국정원장이 국내 정보담당관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미래에는 그 업무를 보지 않아 그런 자료가 사라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존안자료가 소수에 의해 주관적인 판단에 개입돼 작성되고, 사찰 요소도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 존재하는 자료를 활용하겠지만 더 이상 존안자료를 생성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제 존안자료는 특정인에 대한 비난성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 인사 자료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노 전 대통령의 존안자료에는 "노동문제와 관련해 반정부적인 과격한 언동으로 노동자를 선동하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동향 관찰 요망, 결정적인 범죄증거 수집에 노력하겠음...정부는 근로자의 정치참여를 좌경용공으로 매도한다는 등 사상이 극히 불순한 인물"로 나와 있다.

박남춘 의원은 이에 대해 "존안카드의 작성을 위해서는 사찰, 미행, 도청 등 불법적인 방법이 총동원됐다. 그런데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이 구축되기 이전에는 존안자료가 정부 인사에도 사용되곤 했다"면서 "문제는 존안자료의 작성 동기가 방법이 올바르지도 공명하지도 못한 데다 음해에 가까웠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사를 오히려 방해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존안자료 대신 참여정부는 집단 그룹 인터뷰를 활용했다. 적합한 인물을 찾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집단으로 좌담회를 했다. 또한 7만 2천개의 중앙인사위원회 인사 파일에 정보를 새롭게 입력하는 방식으로 국가인재DB를 구축했다. 참여정부 말기 국가인재DB에는 12만명의 인물이 등록됐다. 문재인 정부도 과거 생성된 존안자료를 참고하겠지만 참여정부 때부터 구축해놓은 국가인재DB를 적극 활용하고 면접 및 인터뷰 방식으로 인사를 검증할 가능성이 높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마치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마치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내각 구성시 여성 30%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 후보자 파격 인사를 발탁할 수 있었던 것도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는 여성 인재를 장관급은 X, 집중관리대상은 S, 차세대 지도자급은 P 등 세 등급으로 나눠 관리를 하고 DB를 구축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최종 책임자가 여성이라는 것 자체부터 여성 인재 등용에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조현옥 인사수석이 참여정부 시절 균형인사비서관으로 일할 때 여성 인재 등용과 관련해 불만을 터뜨린 일화도 유명하다. 조 비서관은 주관이 뚜렷하고 리더십 강한 여성인사에 대해 주변에서 "그 사람은 너무 독선적"이라고 하자 온화한 이미지의 여성인사를 추천했더니 "그 사람은 카리스마가 없어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 비서관은 "리더십이 있어 보이면 독선적이라고 하고, 성격이 온화해 보이면 카리스마가 없다고 하면 도대체 그 중간지점이 어디냐"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능력을 인정받은 내부 인사를 발탁하고 있는 것도 참여정부의 인사와 비슷하다. 참여정부 시절엔 교육청 9급 행정서기보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기획관리실장까지 오른 이기우 국무총리 비서실장, 인천 세무서 9급으로 시작해 1급에 오른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 조달청 창설 이후 처음으로 9급에서 1급으로 오른 신삼철 조달청 차장, 집안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시 9급 행정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1급에 오른 김애랑 여성부 기획관리실장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차관급 임명자 모두 해당 부처 공무원으로 채우고 있다. 내부 인사의 전문성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겠다는 얘기다.

기존 관행과 서열을 파괴하는 인사도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닮았다. 참여정부는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강금실 법무부 장관, 윤영관 외교부 장관 임명을 단행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44세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사람을 행정부 수장으로, 검찰 경험이 없고 사법개혁을 주장해왔던 인물을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장관으로, 외교관 경험이 없는 대학 교수 출신을 외교부장관으로 발탁한 것이다. 학자 출신인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앉히고, 윤석열 검사를 기수를 뛰어넘어 서울지검장에 임명한 것도 기존 관행과 서열을 파괴한 문재인표 인사로 풀이된다.

다만, 참여정부 당시 파격 인사의 끝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김두관 장관은 재임 6개월 만에 물러났고, 윤 장관도 외교부 내부에서 노 대통령 자주 외교 노선을 비난하고 정보를 유출한 문제로 10개월만에 경질됐다. 강 장관은 검찰 개혁 과제를 추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1년 5개월 만에 물러났다. 문재인 정부 인사의 핵심은 법무부장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또 한번의 파격 인사가 나올지 아니면 관리형 인사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국회인사청문회가 장관까지 확대된 것도 참여정부 인사 실패가 계기가 됐다.

2005년 1월 4일 참여정부는 이기준 부총리 및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인선을 발표했다. 언론은 판공비 문제, 사외이사 겸직 문제, 장남 병역기피 의혹, 자녀 국적 거짓말 등 파상공세를 펼쳤고 이 부총리는 나흘 만에 면직처리됐다. 이 문제로 인사수석을 맡고 있던 정찬용과 박정규 민정수석, 그리고 인사추천회의 전원이 사표를 냈다.

박남춘 의원은 당시 인사수석실에서 이 부총리에 대해 임명불가, 민정수석실도 같은 의견을 냈지만 인사추천회의에서 서울대 총장 시절 걸러졌던 문제라고 넘어갔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놓았다 하더라도 정작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그 시스템과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이헌재 경제부총리 및 재정경제부 장관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돼 사퇴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교육부총리로 내정된 김병준 교수도 논문 관련 의혹이 나오면서 사퇴했다.

박남춘 의원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이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거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면 그 제도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인사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인사를 하는 사람 스스로가 이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지켜가야 한다. 인사권자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이나 국민도 믿고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박남춘 대표집필, <대통령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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