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정무위 인사청문회가 한창일 때였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약속 장소로 가고 있던 필자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오랜만에 통화하는 선배 교수였다. 그 선배는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학자답게 평소 학문의 자유와 시장경제의 유용성을 높이 평가하던 분이었다. 굳이 정치적 성향을 따지자면 진보라고 볼 수는 없고, 중도나 보수 쪽에 가까운 분이었다.

그런 선배가 “청문회를 보다가 전화를 하게 되었다”면서 “아니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가?” 라며 다짜고짜 분통을 터뜨렸다. 필자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김 후보자의 어떤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아니 저 국회의원, 교수 출신이 맞아? 연구보고서를 학술지에 실은 것이 뭐가 문제야? 미국에서 워킹 페이퍼 낸 후 그걸 논문으로 출간한 사람이 한둘이야? 다른 국회의원이 저런다면 교수를 안 해봐서 그렇다고나 하지, 몇 십 년 교수를 했던 사람이 이럴 수 있어? 마땅히 얘기할 데가 없어서 전 교수에게 전화했네.”

“아 네, 선배님. 아마도 ‘이 연구는 OO 기관의 연구비 지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정도의 감사의 말을 안 넣었다는 뜻이겠죠.” 그렇게 넘겼다.

묘한 안도감과 화끈거리는 창피함, 그리고 아직도 교수 사회는 이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다.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논문 표절 공세가 학계의 상식에 의할 때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지나치다는 점을 진보 쪽이 아닌 학자가 확인해주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문제의 그 국회의원이 필자가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선배 교수가 내게 전화를 했다는 점에서 창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선배에게 감사했다. 교수는 학문과 관련해서는 선입견이나 진영 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사실을 말할 뿐이라는 점을 몸소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김상조 후보자는 매일매일 ‘의혹과 비리의 백화점’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오죽 했으면 김 후보자의 호(號)가 ‘단독’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겠는가. 그러나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터져 나왔던 그 수많은 언론보도 중에 국민이 꼭 검증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의혹은 의외로 많지 않았고, 심지어는 정확한 팩트 체크조차 하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단독] 김상조, 케임브리지대 초빙교수 이력 허위표기 논란

지난 6월 1일자 노컷뉴스 단독 기사다. 기사의 요지는 김 후보자가 단순한 방문 연구원임에도 불구하고 초빙교수로 이력을 과대포장하고 이를 오랫동안 방치해서 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필자조차 생소한 구별이다. 교수가 연구년을 떠날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visiting scholar를 우리 말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해 딱히 정해진 관행은 없다. 어떤 이는 ‘방문 교수’, 어떤 이는 ‘초빙 교수’라고 하는 것이 예전에는 관행이었다. 때로는 그냥 영어로 visiting scholar 라고 쓰기도 했다. 그리고 듣는 쪽에서는 이를 모두 visiting scholar로 알아 들었다. 방문 연구원이라는 표기는 오히려 생소한 쪽에 가깝다. 어쨌든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이 기사는 "초빙교수는 엄밀히 따지면 그 학교에서 목적을 가지고 초청해 돈을 지급하고 수업을 맡기는 개념인데, 방문연구원은 자신의 필요로 가는 일종의 '비지팅 스칼러'(visiting scholar)의 개념이라 다르다"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서울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제목에 학계의 개념과 다르다고 써 붙였다.

정확한 팩트는 무엇일까. 노컷뉴스가 게재한 케임브리지대학의 답장 사진을 잘 살펴보자. 김 후보자는 초청없이 자신의 필요로 간 것이 아니라, 분명히 초청을 받았다. 경제학과(및 정치학과) 교수단(faculty)에. (“Professor Sang-Jo Kim was invited ... as an Official Visitor to ... the faculty of Economics and Politics ...”) 우리나라 교수가 연구년을 갈 때 보이는 가장 전형적인 케이스다. 여기에 추가로 강의를 하면 보수를 받고, 강의를 하지 않으면 보수가 없을 뿐이다. 김 후보자는 무슨 대학원생처럼 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로서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의 교수단에 동료로서 초청받아 간 것이다. 그것을 그 당시의 관행에 따라 초빙교수로 번역하여 기재한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만일 노컷뉴스가 돈을 받고 강의를 하지 않는 한 초빙교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학계의 통념과 다른 주장이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원내 대변인의 논평은 더욱 가관이다. “학계에 따르면 학교에서 초청해 돈을 지급받고 수업을 진행하는 초빙교수와, 본인의 필요에 의해 연구 과제를 설정하고 수업을 듣는 입장인 방문연구원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며 “한성대 교수로 재직하던 김상조 후보자가 이런 기본적인 사항도 몰랐으리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70601/84675653/2) 흐음. 기본적인 사항을 모르고 주장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논문 표절 시비도 정확히 가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연구부정행위에 포함되는 표절이 무엇이고, 이것이 어떻게 규율되어 왔는가를 잘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비윤리적인 연구 행위에는 ‘표절’, ‘논문 중복 게재’, ‘일부 텍스트의 중복 활용’ 등의 스펙트럼이 있다. 이중 남의 아이디어나 연구 결과물을 자신의 것인양 포장하여 발표하는 ‘표절’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절도다.

하나의 논문을 여러 곳의 ‘최종 발표 매체(final outlet)’에 게재하는 ‘논문 중복 게재’ 역시 문제다. 그러나 그 전제를 잘 살펴야 한다. 연구보고서나 워킹 페이퍼 형태로 임시 발간한 결과물을 학술지라는 최종 발표 매체에 게재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글의 권두에 언급한 시카고 출신 선배 교수가 흥분하여 전화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학계에서 ‘논문의 중복 게재’라고 하여 문제를 삼는 것은 복수의 최종 발표 매체에 동일한 논문 또는 이와 사실상 유사한 논문을 중복하여 게재한 경우다. 김 후보자의 경우 그런 경우는 없다. 교수 출신 국회의원이 문제 삼았던 노사정위 보고서는 최종 발표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논문의 중복 게재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신이 다른 논문에서 편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적절한 인용없이 다시 사용하는 ‘일부 텍스트의 중복 활용’은 적절한 집필 행태가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비록 본인의 주장이라도 적절한 출처 표시를 하거나 인용부호 안에 넣어서 독자들이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것을 어느 정도로 비난할 것인지는 사례별로 매우 다양하다. 두 논문의 텍스트가 동일하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집단의 현황에 관한 표를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그래서 어떤 연구자가 이를 한 논문에서 인용하여 설명하고, 다른 논문에서도 이 표를 인용하여 설명했다고 하자. 그 대신 그 표의 출처가 공정거래위원회였음을 밝혔다고 하자. 이것이 비난받을 집필행위인가. 당연히 아니다. 이것은 학자들이 흔히 ‘연구 원자료의 인용’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당연히 동일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론에는 이런 것들도 모두 “자기 표절”로 둔갑되어 있었다.

[단독]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위장전입 이어 자기표절도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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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의 2번 상자를 보면 이는 모두 공정거래위원회의 2005년 4월 8일자 보도자료에 수록된 표임을 알 수 있다. 김 후보자는 그 출처를 정확히 명시했다. 그런데 “도표도 그대로 옮겨졌다는 것이 확인된다”면서 ‘자기 표절’의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더구나 나중에 실린 매체인 『황해문화』는 매우 높이 평가받는 교양 간행물이지만 학술지는 전혀 아니고, 따라서 ‘자기 표절’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 기사에 나타난 또 다른 대목에서는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에 수록되고 김 후보자가 정확하게 출처를 제시한 도표에 대해 도표가 똑같다면서 역시 ‘자기 표절’의 증거로 제시한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학계 또는 각 학술지에서 ‘일부 텍스트의 중복 활용’에 대해 어떤 제재 규정을 두고 있을까? 거의 없다. 대부분의 학술지는 ‘표절’과 ‘논문의 (부당한) 중복 게재’에 대해서만 명문의 금지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다. 김 후보자와 관련하여 유일한 예외인 학술지는 『아세아연구』이다. 『아세아연구』는 아래와 같이 ‘연구부정행위’와 ‘부적절한 집필 행위’를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표절’이나 ‘(연구 논문의) 중복 게재’는 연구부정행위이지만 ‘텍스트의 재활용 행위’는 부적절한 집필행위에 해당한다. 텍스트의 재활용 행위에 대한 『아세아연구』의 가이드라인은 학계의 표준적 관행과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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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세아연구』 홈페이지상의 윤리규정

혹자는 그래도 김 후보자의 텍스트 재활용이 부적절한 집필행위였으므로 『아세아연구』의 윤리규정을 위반한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윤리 규정은 2008년 5월 31일의 저작에 대해서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김 후보자의 경우 일부 텍스트의 중복 활용은 적절하지 않은 집필행위였지만 윤리규정을 위반한 적은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진솔하게 사과하면 된다. 그리고 김 후보자는 사과했다. 그 정도면 얼추 된 것이다.

‘자기 표절’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언급할 보도는 한겨레의 보도와 사설이다.

[한겨레] 김상조 후보자, 2007년에도 논문 ‘자기 표절’

[한겨레 사설] 과도한 의혹 제기로 끝난 ‘김상조 청문회’

한겨레는 앞의 보도에서 김 후보자의 2005년 논문과 2007년 논문에서 각각 원고지 6매 및 3매 분량의 자기표절(중복게재)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2조를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일부 텍스트의 중복 활용은 팩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이 행위가 교육부의 지침 제12조의 적용을 받는 위반행위인가. 아니다. 그래서 이 보도는 팩트를 정확히 보도한 기사가 아니다.

이 기사가 인용한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은 2015년 11월 3일부터 시행된 것이므로 개정 규정 자체는 김 후보자에게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문제는 그 이전의 규정이 어떠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 이전에 이와 유사한 명칭의 훈령으로는 과기부 훈령 제236호로 2007년 2월 8일 제정과 동시에 공포된 같은 명칭의 지침이 있었다. (필자가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 과기부 지침이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과기부가 여러 부처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교육부 관할 훈령이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그런데 이 지침에는 ‘텍스트의 중복 활용’을 금지하는 규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논문의 중복 게재’를 금지하는 명문의 규정도 없었다. 이 지침의 제4조에 언급된 연구부정행위는 ‘위조’, ‘변조’, ‘표절’ (자기 표절이 아니라 타인의 연구를 도용하는 것을 말함),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 가 있었고 ‘기타’로 연구부정 조사를 방해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행위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침은 과기부 훈령이었기 때문에 과학기술분야에 적용되고, 인문사회계에는 별도의 윤리규정을 만들 경우 이를 준용할 수 있도록 했다(제2조). 김 후보자의 경우 문제가 된 부분이 인문 분야의 2005년 논문과 2007년 논문의 ‘일부 텍스트 중복 활용’이기 때문에 이 규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2015년의 개정 이전에 중복 게재에 대한 명문의 금지 규정이 없었다가 이 때 비로소 신설되었다는 점은 개정 내용을 발표한 교육부의 2015년 11월 3일자 보도자료 제2쪽과 제3쪽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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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육부, 2015년 11월 3일자 보도자료, 제2쪽

한겨레의 취재진이 이 보도자료를 읽었다면 당연히 2015년 이전에 있었던 ‘텍스트의 중복 활용’에 대해 이 규정이나 종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가 팩트와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팩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은 후속한 한겨레의 사설도 마찬가지다. 6월 2일에 게시된 위 한겨레 사설은 표절 논란과 관련하여 “2005년 자신이 쓴 논문을 2007년 인용 표기 없이 중복게재(자기표절)한 것은 ‘교육부 연구윤리 지침’ 위반이 맞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장직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결격사유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일종의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2015년 개정 이전에는 중복 게재 자체가 연구부정행위의 유형으로 열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연구지침 위반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

혹자는 그래도 현재의 규정을 소급 적용할 때 과거의 행위가 현재의 지침의 취지를 위반한 것은 맞지 않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이것도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현재 교육부의 지침은 연구의 내용을 ‘연구 원자료’, ‘연구자료’, ‘연구결과’, ‘연구결과물’로 정의하는데(개정 지침 제2조), ‘부당한 중복게재’란 연구자가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와 동일 또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중복게재하고 부당한 이익을 얻어야 발생한다.(개정 지침 제12조 제1항 제5호) 즉 ‘연구 원자료’ 또는 ‘연구자료’의 중복 활용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필자가 직접 두 논문을 면밀하게 검토한 것이 아니어서 단정할 수는 없으나, 김 후보자의 경우 중복 활용된 부분이 아마도 ‘연구 원자료’ 또는 ‘연구자료’에 해당할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는 개정 지침을 적용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결국 남는 부분은 역시 윤리적 측면의 미진함인 것이다. 이 부분은 진솔한 사과를 통해 해소된다고 보아야 한다.

결론은 무엇인가. 휘몰아치는 ‘단독 보도’의 태풍 속에서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진실보다는 진실의 왜곡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엄정한 검증이라는 외투를 입고 있었으나, 엄정한 진실을 알맹이로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결과 김상조 후보자는 그의 실체와는 크게 동떨어진 ‘파렴치한 학자’로 매도되었다. 이것은 언론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이 아니다. 필자가 30년이 넘게 옆에서 보아 온 김상조 교수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이 필자가 ‘김상조를 위한 변명’을 쓰게 된 이유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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