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5·24 조치’로 불리는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가 시작된 지 7주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가 중단된 남북 교류 유연화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자 조선일보를 비롯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구여권의 대북 강경세력이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개성공단 가동 및 금강산관광 재개가 북한 김정은을 위한 달러 퍼주기이며, 민간 방북시 북한이 인질로 잡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펴고 있다. 나아가 7년전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남북간의 민간교류마저 사실상 중단시켰던 5·24 조치를 해제 또는 재정비하자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주장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부었다.

이를 두고 이들이 새정부의 남북교류 자체를 처음부터 못하게 하기 위한 억지 주장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덕행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22일과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해 나간다는 기본 원칙을 확고하게 갖고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남북관계가 계속 단절되는 것은 한반도 상황 관련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민간교류 등은 유연하게 검토해 나간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문정인 특보도 언론과 인터뷰에서 “5·24 조치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내일신문) “5·24 조치 재정비해야 한다”(KBS 등)고 언급했다.

하지만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겸 원내대표)은 24일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문정인 특보의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논의 발언(언론인터뷰)을 들어 “참으로 충격적”이라고 비난했다. 정우택 대표권한대행은 “천안함 폭침 이후 정부가 취한 대응 조치인데, 북한이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아직까지 한 번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거꾸로 대한민국이 자신들에게 뒤집어 씌었다며 자작극, 모략이라고 변명해왔다”고 주장했다. 

▲ 김종대 정의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김종대 정의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정 권한대행은 “5.24 조치 해제와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를 통해 북한에 또 다시 달러를 퍼준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한 북한의 핵미사일을 눈앞에 보고도 안보를 내팽개치는 행태”라며 “문정인 특보의 말대로 대북 유화 일변도 조치가 취해진다면 북한 김정은에게 달러를 갖다 바치려고 안달난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같은 주장은 하루 전 조선일보 사설과 거의 판박이다. 조선일보는 23일 사설 ‘우리가 5·24 해제하면 천안함 장병들은 누가 죽인 건가’라는 사설에서 문 특보의 5·24 제재 해제 및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주장에 대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북한의 전시상황 돌입 선포 등 모두 북한의 도발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북은 이런 범죄 행위, 공격 행위에 대해 어떤 책임도 인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북의 행태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5·24 조치를 해제하면 천안함 폭침은 누구의 책임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 지난 15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공단 일대가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15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공단 일대가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조선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 “북핵 최대 피해국인 우리가 김정은 주머니에 달러가 흘러들어가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고 한다”며 “새 정부 인사들은 햇볕정책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북은 교류를 위해 방북한 우리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5·24 조치는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발생 후 두달도 안돼 사고원인을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발표(5월20일)한 지 나흘만인 5월24일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취한 대응조치이다. 주요내용은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을 전면 불허, 남북 교역 중단, 국민의 방북 불허,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이다. 여기에 인도적 지원사업도 금지시켰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일부 예외를 두긴 했으나 이 같은 큰 틀은 7년째 유지되며 남북교류 중단의 강력한 근거가 돼 왔다.

5·24 조치에 대해 정부는 아직 해제여부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덕행 통일부 대변인은 2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5·24 조치를 해제하지 않고도 남북간 교류가 당장 가능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이것부터 해소할 수 있다”며 “5·24조치나 (그 원인이 된) 천안함 발표와 무관하게 남북교류 활성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5·24 조치나 개성공단 가동 및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아직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나중에 말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 정일용 연합뉴스 대기자(6.15남측위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 사진=조현호 기자
▲ 정일용 연합뉴스 대기자(6.15남측위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 사진=조현호 기자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민간교류마저 막는 등 남북교류 자체를 금지시켜왔다. 정권이 교체됐기 때문에 그전에도 할 수 있던 것을 이제야 하겠다는 뜻이다. 이 대변인은 “새 정부가 출범해 핵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적 노력과 함께 남북교류를 병행하면 핵문제 해결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인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2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5·24 조치 가운데 군사적인 내용은 의미가 없고, 나머지 교류협력 관련 내용의 경우 핵문제와도 무관하다”며 “해제하냐 마냐 할 것도 없이 민간교류를 재개하면 그만”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북한의 영유아 지원, 취약계층 지원이 핵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항행 자유의 경우 오히려 미국이 중국을 향해 요구하는 것 아니냐. 더 이상 우리가 이런 것을 막을 근거도 없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 4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했다. 사진=자유한국당
▲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 4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했다. 사진=자유한국당
북한이 천안함 책임이나 사과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김 의원은 “이는 하나마나 한 얘기이다. 천안함 진실과 북한 영유아 지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안보문제는 안보문제대로 풀고 교류사업은 교류사업대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가 김정은에 달러 퍼주기라는 주장에 대해 김 의원은 “두 사업은 시기는 따져볼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재개해야 한다”며 “모두 민간인들의 재산이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지원해서 먹여살리자는 것이 아니라 왜 무리수를 뒀느냐는 것”이라며 “하루 빨리 정상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방북한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김 의원은 “지난 10년 간 북한이 우리 국민을 인질을 억류한 적이 있느냐”며 “이해당사자들이 하겠다는데 왜 막느냐. 이는 사업을 못하게 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6·15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공동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정일용 연합뉴스 대기자는 2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천안함 폭침이라고 전제해 놓고 주장을 펴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5·24조치 해제여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언론이라면 우선,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확실하게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 대기자는 “또한 우리가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면 북쪽과 접촉하고 교류해야 천안함 사건 같은 비극이 줄어들 것”이라며 “더구나 천안함 사건의 ‘범인’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북의 폭침이라 전제하고 교류를 막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대기자는 개성공단 가동 재개 등이 달러퍼주기라는 조선일보와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의 주장에 대해 “그렇게 따지면 북한에 공기도 못들어가게 아예 밀폐해야 한다”며 “그런 주장이 상식적인지 되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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