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탄압에 앞장섰던 앞잡이들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 촛불민심에는 언론탄압세력에 대한 청산 요구도 담겨있다.” (문재인 대통령, 2016년 12월16일 암투병중인 이용마 MBC해직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 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 하겠다. …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2017년 5월10일 취임사에서)

▲ 5월10일 취임식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 5월10일 취임식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정부의 대표공약은 적폐청산이다. 그중 언론적폐청산이 중대한 과제다. 촛불이 만든 새 정부는 진보진영의 주장을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면인 현실정치에서 보수진영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부터 상임위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임기 초 통합을 강조할 것으로 보이는 문재인정부의 對언론전략은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문재인정부는 시민사회가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언론개혁을 실패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재인정부 주요인사는 노무현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보수적인 입장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나 소송전 같은 직접적 대응보다 당장은 협력 기조 아래 보수언론과 유연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언론개혁 실패
“자유주의 규범론과 진보주의 목적론 간 모순”

김대중·노무현 정부 언론개혁논리는 보수신문의 여론 독점이 정치적 영향력과 자본력에 기반을 둔 불공정경쟁 때문이라는 인식에 기초했다. 20세기 말 신문권력은 방송권력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혁은 실패했다. 이와 관련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노무현·김대중 정부는 자유주의 규범론과 진보주의 목적론 간의 모순성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정부는 2001년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언론사를 대상으로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실시했다. 세무조사는 한겨레 ‘심층해부 언론권력’ 시리즈와 진중권·강준만 등 안티조선운동과 결합해 정부와 언론사간 폭발적인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세무조사 정국은 조중동에 대한 세금 추징으로 일단락됐다.

세무조사 전략은 진보·보수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다. 보수진영의 격렬한 저항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진보진영 또한 언론개혁의제가 국가주도의 세무조사로 변질되며 정권이 직접 언론 통제를 의도한 것으로 비쳐져 언론개혁세력이 정권의 들러리를 선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1999년 조합주의방식으로 추진했던 방송개혁위원회 또한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연합뉴스
▲ 노무현 전 대통령. ⓒ연합뉴스
노무현정부는 바람직한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최초의 정부였다. 왜곡보도에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언론보도를 오보, 악의적 비판, 건전 비판, 단순보도, 긍정보도로 구분해 적극 대응했다. 악의적 보도에 법적으로 대응하면 언론이 규범화 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상적이었다. 정부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유도한다는 점은 자유주의 언론관에 모순되기도 했다.

노무현정부 청와대는 300명 정도의 기자들이 브리핑룸에서 와글거렸다. 촌지수수와 향응은 거의 사라졌고 기자실 개방과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따라 공식 채널을 통한 뉴스생산 관행은 정착됐다. 그러나 정작 노무현정부에 대한 보도는 부정적 경향을 보였다. 기사 주고받기 관행이 개선됐지만 유착이 사라진 자리에 건전한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신문의 날 축사에서 “언론 개혁은 언론과 시민에게 맡겨두고 싶다”고 밝혔지만 이 발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안티조선운동의 입법화를 시도했다. 신문법을 통해 언론개혁을 시도했지만 입법단계부터 누더기가 됐고 2006년 헌법재판소가 주요 조항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며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노무현정부에선 대통령 관련 사설이 급증했고 부정적 사설이 긍정적 사설보다 더 많았다.

▲ 4월25일 JTBC 대선토론에서 문재인 대선후보. ⓒ사진공동취재단
▲ 4월25일 JTBC 대선토론에서 문재인 대선후보. ⓒ사진공동취재단
文정부, 보수언론과 협력기조 속
언론적폐청산 요구와 충돌할 듯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정부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거치며 누구보다 노무현식 소통이 갖는 장점과 단점을 파악한 인물이다. 문재인정부가 노무현정부의 실패를 對언론전략에서 찾았다면, 새 정부는 노무현정부와 다른 선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정부는 보수언론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설득행위를 일종의 ‘술사고 밥 사는 일’로 간주했고 그런 낡은 관행은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자의 무단 방문 취재 관행을 사전 약속에 의한 취재로 변경했고 진보언론에게도 비판받았다. 우호적 매체와 비우호적 매체를 구분해 두 매체를 차별적으로 활용하려 했으며 우호적 매체를 주변화 시키는 식의 방법론을 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믿는 바를 그대로 전달했고 정치적 위기 때마다 언론에 나서 정면 돌파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소통은 지지자를 실망시키고 적대자에게 얕잡혀 보였으며 일반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비우호적 매체로 분류된 주류언론은 그를 퇴임 이후까지 괴롭혔다.

더욱이 여소야대 속 국정 수습 국면은 새 정부의 선택지를 더욱 줄여놓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인수위 없이 당장 새 총리를 임명하고 내각을 꾸리는데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 정부는 보수언론과도 협력 기조 아래 유연한 관계를 갖고자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민주당
▲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민주당
이는 언론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언론적폐청산 요구와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해직언론인복직은 대법원 판결과 노사 합의에 따라 빠른 시일 내 이뤄질 가능성이 있지만 언론노조 등이 발표했던 부역언론인명단에 오른 인사들의 경우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빠르게 청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언론장악 진상규명의 경우도 언론탄압이란 반발을 우려해 선언적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공영방송지배구조개선은 국회의 몫으로 돌릴 것이다. 여기서 새 정부 언론개혁이 힘을 받으려면 MBC·KBS 등 언론노동자들이 스스로 들고 일어나 내부투쟁을 전개해야만 한다.

적폐청산을 주장하던 새 정부가 어설픈 화합과 통합을 시도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실패는 보수층의 재결집을 의미하기 때문에 새 정부는 김대중·노무현정부 당시보다 적폐청산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는 1980년 신군부처럼 전국 64개 언론사를 18개로 통폐합하고 언론인 1000명 이상을 강제 해직시킬 수 없으며, 전두환처럼 보도지침을 내릴 수 없고,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처럼 방송국 사장들을 베를린 방송회관으로 소집해 “방송은 우리에게 속한다”고 협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즉각적 방법 없이는 적폐청산이 더딜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의 능력은 ‘더딘 변화’를 설득시키는데 있다.

2003년 당시 손석희 MBC ‘100분토론’ 진행자는 문화일보 칼럼에서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수록 언론 문제에 있어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실종된다. 대통령이 나서는 한 시민사회의 언론개혁 운동은 본의 아니게 ‘관제운동’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새 정부는 이 같은 지적을 받아들이고 제도변화나 조직개편을 통한 점진적 적폐청산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 5월9일 광화문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와 캠프관계자들이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5월9일 광화문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와 캠프관계자들이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달라진 언론환경 적극 활용하고
마키아벨리식 정치능력 발휘해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3년 경향신문 칼럼에서 노무현정부를 평가하며 “통치자는 그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사용된 방법이 어떠하냐 하는 것보다, 그의 행위의 최종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민주진보진영에게 필요한 철학자가 마키아벨리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정치지도자의 역할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정치가는 통상적 의미에서 명백히 부도덕한 행태에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다른 정치적 행위자들과 마찬가지로 언론과 협상하고 타협하고 조정하며 언론을 설득해야 한다. 정권의 운영은 이념과 가치만으로 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스스로가 안티조선의 아이콘이 되어서는 도리어 조선일보의 영향력만 키우고 ‘관제운동’ 프레임 등 부작용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정부는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방식 대신,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달라진 언론환경을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정부 시기(2003.3~2008.2)와 현재 언론환경은 180도 달라졌다.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은 언론사중심의 정보독점·여론독점구조를 해체시켰고 인터넷은 탈권위적 의사소통 양식을 보편화시켰다. 시민들은 누구나 팟캐스트와 유튜브, 페이스북으로 의사를 표출할 수 있고 기자보다 많은 정보를 모으고 추적할 수 있다. 여론은 더 이상 특정 매체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

▲ 5월9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가 개표 당시 발언하는 모습. ⓒ이치열 기자
▲ 5월9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가 개표 당시 발언하는 모습. ⓒ이치열 기자
2012년을 기점으로 지상파3사 중심의 의제선점구조는 무너졌고 조중동 중심의 신문권력도 종이신문 열독률 하락으로 노무현정부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됐다. 여기에 더해 일부 종합편성채널은 정부가 특혜 몇 가지만 환수해도 방송사가 흔들릴 수 있을 만큼 재정적으로 취약한 상태다. 앞서 언급한 상황들은 모두 문재인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점이다.

문재인정부가 성공하려면 언론을 통해 여론의 지원을 받고 국회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보수언론을 폐간시킬 수 없다면 보수언론과의 공존은 불가피하다. 그런 맥락에서 동아일보 기자 출신 이낙연·윤영찬의 발탁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대북 특사를 맡을 가능성이 높은 점 등은 이전과 다른 흐름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보수언론과의 공존은 진보언론으로부터 적폐청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정우 전 노무현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이 “등 뒤에서 오는 화살이 눈앞에 보이는 화살보다 더 무섭다. 조중동의 생트집은 반박이 가능하지만 뒤의 화살은 더 깊이 박힌다. 적은 내부에 있다”고 밝혔을 만큼 노무현정부는 진보언론의 비판에 입었던 내상이 컸다. 새 정부도 진보언론의 비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정부 이후 지금까지는 일종의 ‘성내 평화(burgfrieden)’가 유지됐다. 전시라는 이유로 내부 갈등을 중지한다는 원칙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등장하고 한국사회가 이념적으로 분화되며 노무현정부는 진보진영의 비판대상이었다. 노무현정부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정체를 밝혀라’, ‘의도를 밝혀라’와 같은 비판과 의심 속에 무너졌다. 문재인정부 역시 비슷한 상황을 반복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구체제를 무너뜨린 촛불이 지지한 대통령’이란 상징성을 강조하며 적폐청산이 곧 통합이란 프레임을 강조하는 가운데 달라진 언론환경을 활용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적폐청산의 시기와 방법을 조율해내는 마키아벨리식 정치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참고=<안티조선운동사>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노무현 정부의 실험> <왕따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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