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크로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측에서 개표 직전까지 언급했던 단어다. 하지만 결국 골든크로스는 없었다. 다만 실버크로스는 이뤄졌다. 홍 후보는 24.2% 를 득표해 치열하게 2위를 다투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2.6% 앞섰다.

홍 후보 측이 꾸준히 주장해 온 ‘샤이 홍’의 존재도 확인됐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들어가기 직전 발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는 대체로 10% 후반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실제 투표 결과에서는 이보다 4~5%나 높은 수치가 나왔다.

이는 박근혜씨 탄핵 기각을 주장했던 세력과 거의 일치한다. 지난 3월 리얼미터가 발표한 탄핵 찬반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는 비율이 20.3%였고 2.8%는 ‘잘 모른다’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이 둘을 더하면 23.1%로 홍 후보의 득표율과 비슷하다.

이런 맥락을 볼 때 홍 후보가 사실상 수구보수 진영에서 가능한 표를 모두 끌어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후보를 내지 못할 정도의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선거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홍 후보의 성적표는 초라하지 않다. 홍 후보가 “자유한국당 재건에 만족한다”고 말한 이유다.

이철우 총괄선거대책본부장도 10일 오전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당초에 후보를 못 낼 정도로 어려웠다. 후보를 뽑은 후에도 지지율이 한 자리에 머물러서 군소후보로 전락하는 등 참담한 심정을 많이 느꼈다”면서 “하지만 후보가 보수를 결집시키는 능력이 있었고 막판에 많이 결집됐다”고 평가했다.

▲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9일 오후 8시, 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9일 오후 8시, 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하지만 좋아하긴 이르다. 남은 과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먼저 24.2%라는 득표율이 어디서 왔느냐다. 홍 후보의 득표율은 연령과 정비례한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 후보는 20대에서 8.2%, 30대 8.6%, 40대 11.5%, 50대 26.8%, 60대 45.8%, 70대 이상에서 50.9%를 받았다.

지역별로 보면 홍 후보는 인구의 절반이 몰려있는 서울, 경기, 인천에서 20%를 넘지 못했다. 호남 지역에서는 아예 한 자릿수 득표율이다. 다만 대구(44.3%), 경북(51.6%), 경남(39.1%) 지역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정리하자면 한국당의 지지자는 60대 이상 대구경북에 몰려있다.

지역주의와 고령층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당의 미래는 암담하다.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은 비상대책위원은 10일 오전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이번 2040 (득표율) 보셨냐”면서 “정당 폐쇄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리더가 탄생하고 꿈꿀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한국당의 태도로 볼 때 외연확장은 쉽지 않아 보인다. 홍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강성귀족노조” “친북좌파, 종북좌파” “체제 전쟁” 등의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노인비하(영감탱이), 여성비하(설거지), 동성애 혐오, 지역주의 조장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됐다.

오히려 득표울은 6.8%에 그쳤지만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보수의 미래’ ‘보수의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다. 유 후보는 탈당파 13인이 한국당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했을 때도 “우리가 정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되물었고 당내 단일화 요구도 거부하며 ‘따뜻한 공동체’ ‘합리적 보수’를 걸고 완주했다.

한국당은 조만간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 홍 후보가 이번 대선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에 당 대표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친박세력이 ‘홍준표 당대표’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홍 후보는 친박계 의원들을 ‘양박’(양아치 친박)이라고 칭하는가 하면 박근혜씨를 ‘향단이’로 일컬었다.

따라서 당내에서 이렇다 할 세력이 없는 홍 후보로서는 당권을 잡기 위해서 바른정당 탈당파 등 비주류세력의 지원이 절실하다. 홍 후보가 지난 6일 당헌 제104조에 규정된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근거로 친박의원 7명에 대한 징계를 풀어주고 바른정당 탈당파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10일 오전, 정우택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바른정당 탈당파 13명 의원들의 복당을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적으로도 바른정당 사람들이 아무 반성과 책임 없이 오는 것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꽤 많아서 논의를 한 번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친박 의원들은 부활했는데 바른정당 탈당파의 자리는 마련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후보를 내면 안 된다“는 비판을 받은 한국당은 이번 대선에서 2위를 차지했다. 상당한 성과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당내 갈등이 재점화 될 조짐을 보이고 선거 와중에도 ‘도로 새누리당’ 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도로 새누리당으로 갈지, 24.2%를 딛고 외연을 확대할지는 결국 한국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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