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권하면 SBS 8시 뉴스 싹 없애겠다”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 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지난 2일 SBS의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리포트가 삭제된 것을 두고 3일과 4일 공개 유세 현장에서 쏟아낸 말들이다.

이 발언만 놓고 보면 마치 홍 후보가 SBS 보도의 피해자인 것처럼 비치나 사실 홍 후보는 SBS 관련 보도의 당사자도 아니고 SBS 뉴스가 삭제됐다고 해서 자신이 정치적 손해를 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홍 후보는 자신과 관련 없는 SBS 보도 논란이 빚어지자 지난 3일 부산거점 유세 현장에서부터 자신이 집권하면 ‘SBS 뉴스 없애겠다’고 겁박을 했을까.

되레 이날 홍 후보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겨냥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방송사 뉴스를 자기네들이 해놓고 겁을 주니까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지워버리고, 세상에 대통령 되기도 전에 언론 탄압을 그렇게 하는 사람이 무슨 대통령이냐”고 몰아붙였다.

3일 KBS ‘뉴스9’ 리포트 갈무리.
3일 KBS ‘뉴스9’ 리포트 갈무리.

그런데 KBS는 이날 ‘뉴스9’ 리포트에서 ‘문 후보가 SBS에 언론 탄압을 했다’는 홍 후보의 발언을 전하면서도 “내가 집권하면 SBS 8시 뉴스 싹 없애겠다”는 ‘언론 탄압’ 발언은 보도하지 않았다.

또한 SBS는 3일 새벽 “일부 내용에 오해가 있었다”며 기사를 삭제했고, 정작 이 보도로 피해를 본 문 후보 측은 이날 오후 SBS를 방문해 해명 보도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선에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민주당의 언론탄압이자 정치공작 의혹’이라며 3일에 이어 4일에도 SBS를 항의 방문, SBS가 논란이 된 보도에 대해 사과하고 기사를 삭제하는 과정에 외압이 있었는지 따져 물었다.

이 와중에 홍준표 후보는 자신의 3일 발언이 오히려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이 확산되자 4일 “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어떻게 방송국의 뉴스를 없애겠느냐”고 번복했지만, SBS 해명과 사과 보도를 비판하면서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3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SBS를 항의 방문해 문재인 후보 측의 압력에 의해 SBS 측이 기사를 삭제했는지 따졌다”(MBC),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문 후보 측이 정치공작을 하고, 이를 보도한 언론을 탄압했다며 문 후보의 사죄와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KBS), “(자유한국당의) 세월호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공격과 (국민의당의) 언론탄압이라는 논란”(TV조선)이라고 보도했던 방송들은 홍 후보가 SBS를 직접 압박하는 발언은 보도하지 않고 있다.

특정 대선 후보가 집권하면 방송사를 없애겠다느니, 사장의 목을 잘라야 한다는 등 반헌법적 언론관을 드러내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는데도 대부분의 방송사는 이해하기 어려운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

4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4일 JTBC ‘뉴스룸’ 리포트 갈무리.
직접적인 압박을 받은 당사자인 SBS를 제외하면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중 오직 JTBC만이 논란이 된 홍 후보의 발언을 언급하며 “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특정 언론의 뉴스를 없애겠다는 발언은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4일 SBS를 재차 방문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전국언론노조 SBS본부가 ‘언론 자유를 후퇴시킨 장본인들이 SBS를 다시 겁박하고 있다’며 항의했다고 보도한 곳도 JTBC뿐이었다.

방송 매체를 대신해 홍 후보의 언론관을 질타한 곳은 신문이었다. 경향신문은 5일 “SBS가 ‘세월호 인양 지연 논란’ 보도를 삭제하고, 사과방송을 한 것을 두고 ‘뉴스를 없애겠다’고 막말을 했고, 종편의 편파보도를 주장하면서 ‘두 개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노골적으로 ‘손보겠다’고 한 것으로, 언론자유를 무시하는 권위주의적 사고이자 겁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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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도 6일자 사설(도 넘은 홍후보의 막말 네거티브 공세)을 통해 “홍 후보가 막말과 흠집 내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며 “그렇지만 막판에 안보를 볼모 삼아 근거 없는 색깔 공세와 의혹 부풀리기로 일관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는 5일자 사설에서 홍 후보의 발언과 함께 민주당의 대응도 문제 삼으며 “5·9 대선이 임박하면서 언론을 대하는 각 정당과 대선후보들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며 “저마다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단순한 항의 차원을 넘어 해당 신문, 방송사에 온갖 외압을 가한다. 언론을 겁박해 통제하려는 듯한 이런 언동은 심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홍 후보의 거친 막말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홍 후보는 6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문화공원 광장에서 열린 합동유세에도 언론 보도에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언론이 전부 좌측으로 싹 기울었고 여론조사 조정하는 애들도 좌측으로 싹 기울었다”며 “내가 집권하면 어쩌려고 이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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