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이른바 ‘장미 대선’을 앞두고 보수후보 단일화 논쟁과 관련해 그동안 구 새누리당이 선거 때마다 야권단일화를 ‘밀실야합’, ‘기만’ 등으로 비판했던 논평과 주장이 새삼 조명받고 있다.

특히 28일 이은재 바른정당 국회의원이 유승민 대선후보의 보수 단일화를 촉구하며 탈당,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명분도 과거 새누리당이 비판했던 ‘이기는 단일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은재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좌파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보수가 다시 하나로 합쳐야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 새누리당이 지난 2012년 11월12일 발표한 논평에선 “안철수 후보의 이기는 단일화, 정략적 본색 드러났다”며 당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호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대표적 논객인 김대중 고문 또한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 고문은 올해 초부터 세차례나 보수정당의 단일화 필요성을 역설하는 칼럼을 쓰고 있다. 그러나 김 고문 역시 지난 대선인 2012년엔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구 여권의 야당 비판은 단일화 비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 새누리당은 지난 2011년부터 각종 재보선 때 야권 단일화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강도 높은 비판 논평을 내놓았다. 2011년 4월6일 당시 새누리당의 배은희 대변인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의 4·27 김해을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 방식이 성사되자 “속으로는 욕하고 겉으로만 악수하는 야바위 같은 야권 단일화”라고 비난했다.

구 새누리당의 이 같은 비판은 불과 1년 전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4년 7월20일 조정영 당시 부대변인은 7·30 재보선 동작을 새정치연합-정의당 단일화에 대해 “야당은 선거 때만 밀실 야합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합당을 하는 것이 유권자를 존중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이번 선거에서의 정략적 밀실 야합을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부대변인은 엿새 뒤인 그해 7월26일 당시 노회찬 의원을 상대로 “7.30 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정의당 노회찬 후보의 현란한 ‘단일화 말바꾸기 기술’이 점입 가경”이라며 “노회찬 후보의 ‘단일화 기술’이 선거와 지역에 따라 현란하게 바뀌는‘그때그때 달라요’식이라는 점”이라고 맹비난했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둔 4월4일 안형환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야권 단일화 정치쇼에 국민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며 “정당의 정책, 이념, 철학마저 전혀 다른 정당이 갑자기 하나가 되었다며 손을 맞잡는 것은 오로지 여당 후보만을 이기겠다는 정치적 야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 바른정당 이은재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정당을 탈당,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한다고 밝힌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바른정당 이은재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정당을 탈당,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한다고 밝힌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 대변인은 “눈앞의 이익과 승리만을 향해 달려가는 정치꾼과 국가적 미래와 의제를 고민하는 정치가는 구별되어야 한다”며 “국가 발전에 대한 비전도, 철학도 없는 정치인들만 활개를 치는 나라는 그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누구와도 같은 편이 될 수 있다는 비겁한 정치꾼이 절대로 국회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최진녕 선대위 부대변인도 당시 안양 동안을 정진후 정의당 후보와, 이정국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단일화에 대해 “‘묻지마식’ 야권단일화, 국민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더민주당이 또 다시 국민을 기만하는 야합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던' 구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최근 보수 단일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를 두고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단일화쇼가 판친다”고 비판하자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은 지난 3월26일 “자신이 하는 단일화는 정의이자 로맨스이고, 홍 지사의 단일화는 불의이자 불륜이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후안무치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라고 비난했다. 정 대변인은 보수단일화가 개헌이라는 대의를 위한 길이라 더불어민주당의 단일화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5년 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논의 때 새누리당은 하루가 멀다하고 단일화를 비난하는 논평을 쏟아냈다. 한달 반 동안 줄잡아 30여 건의 단일화 비판 논평이 나왔다. 다음은 구 새누리당의 2012년 대선 당시 단일화 비판 논평 제목이다.

-국민을 기만하는 야합적 단일화 논의를 중단하라! - 2012년 10월23일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는 자기기만이다. - 2012년 10월25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그들만의 이익’을 노리는 정치적 야합에 ... 2012년 10월29일
-단일화 그들만의 지루한 ‘부정의 덧셈’, 국민들은 피곤하다 - 2012년10월31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논의는 사상누각의 정치야합이다 2012년 11월1일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로펌 변호사+CEO의 권력 M&A 놀음이다 - 2012년 11월4일
-문재인 후보, 단일화 구걸정치 스토커 수준이다 - 2012년 11월5일
-단일화 밀실논의는 국민도 없고, 쇄신도 없고, 투명성도 없는 ‘그들만의 3無리그’이다. - 2012년 11월6일
-단일화협상, 국민을 속이는 밀실야합의 또 다른 이름이다. - 2012년 11월6일
-국민들은 초보(초선)와 무면허 운전자의 단일화에 탑승하지 않을 것이다. 2012년 11월7일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설계도 덜 끝난 아파트를 분양받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오만의 극치다 - 2012년 11월7일
-안철수 후보는 말바꾸기 반성문부터 쓰고 단일화 하라. - 2012년 11월7일
-국민 아닌 표만 좇는 문-안 후보 단일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가. - 2012년 11월8일
-단일화, 이질 세력사이의 밀실 담합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 2012년 11월8일
-문재인 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동상이몽의 계약결혼이다. - 2012년 11월9일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벌써부터 지분싸움 시작됐나. - 2012년 11월9일
-안철수 후보의 정책은 단일화 홍보용이다 - 2012년 11월11일
-안철수 후보, 선거비용 줄이려면 단일화 사퇴 빨리하는 게 지름길이다 - 2012년 11월12일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쇼’만 하지 말고 선거비용 펀드부터 단일화하라 - 2012년 11월12일
-안철수 후보의 이기는 단일화, 정략적 본색 드러났다 - 2012년 11월12일
-민주당의 ‘경험적 꼼수’ 장단에 안철수의 ‘이기는 단일화’ 맞장구가 과연 국민 대표성 있나 - 2012년 11월14일
-단일화가 쇄신인가? - 2012년 11월16일
-단일화가 새 정치인가? 구태의 부활일뿐이다. - 2012년 11월18일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기 싸움, 차라리 빗장문 걸고 하라 - 2012년 11월20일
-민주당의 사기도박, 그리고 ‘단일화의 추억’ - 2012년 11월21일
-어제 밤늦게 펼쳐진 문재인·안철수 간 후보단일화 TV토론회는 역시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긴 토론회... - 2012년 11월22일
-정치쇄신에 대한 국민의 열망 이해, 단일화 협상 약속 위반한 문재인 후보 사과 필요하다. 2012년 11월24일
-문재인 후보의 위선 시리즈 (① 후보 단일화 과정) - 2012년 11월26일
-꼼수정당의 가당찮은 조어(造語) 능력, 이제는 남의 당 후보마저 단일화 시키려는가? 2012년 11월29일
-국민들도 실패했다고 보는 ‘단일화’, 민주당은 정정당당히 인물대결로 승부하기 바란다. - 2012년 11월30일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은 이념적 차이와 정책단일화 방안을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 2012년 12월8일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19대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둔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열린 대선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19대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둔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열린 대선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지난 대선 때는 단일화를 비판하는 것이 거의 새누리당 네거티브 전략의 전부였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랬던 구 여권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19대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엔 오히려 자신들이 단일화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파면당한 정당에서 반성과 사죄, 거듭남없이 오로지 권력재창출에만 급급한 채 자신의 입으로 구태라 비판했던 정치공학적 단일화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 여권과 함께 조선일보의 대표 보수논객 김대중 고문의 ‘보수 후보 단일화론’도 자신의 과거 단일화 비판 논점과 거리가 있다.

그는 지난 1월31일자 칼럼 ‘문재인 아닌 것의 연합’에서 “내 힘으로 안 된다면 공유할 사람에게 길을 내준다는 정신”을 강조했다.

“민주당 이외의 인사들이 단일화를 이뤄낼 가능성은 얼마나 있을까? 소속 정당이나 단체들이 단일화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이 문씨의 안보·외교 노선의 국정 방향에 반대한다면 후보로서 단일화는 있을 수 있다. 공개적인 단일화가 아니더라도 사퇴라는 형식을 취한 단일화도 가능하다. 그리고 단일화를 통한 연합전선은 분권형 개헌 작업의 밑바탕이 될 수 있고 실제로 단일화에 성공해 정권 창출이 이뤄진다면 그 결합은 내각책임제 또는 이원집정부제의 시범적 모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관건은 ‘내 힘으로 안 된다면 나의 최소한이라도 공유할 사람에게 길을 내준다’는 정신이다. 보수층은 불안과 두려움을 같이 껴안아준 지도자에게 반드시 보답할 것이다.” (1월31일자 ‘문재인 아닌 것의 연합’)

김대중 고문은 지난달 28일자 칼럼 ‘보수정당의 통합’에서 “요즘 대선 가도(街道)에서는 이른바 대세(大勢)라는 민주당의 문재인씨에게 대항하는 반문(反文) 연대 내지 단일화 논의가 활발하다”며 “혼자서는 못 이기겠으니 떼로 달려들겠다는 모양새인데, 그런 철학 없는 떼거리 전술로는 이겨도 후유증이 더 크고, 지면 문재인씨 또는 민주당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 뿐”이라고 일부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칼럼의 뒷부분을 보면 그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정권은 포기하더라도 의미 있는 견제 세력으로 남아야 한다. 그러려면 보수는 다시 합쳐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민주당의 독선과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명분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소아(小我)를 버려야 한다. 대안 제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젊음이 있어야 한다.”(3월28일자 ‘보수정당의 통합’)

▲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사진=조선일보 기자 홈페이지
▲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사진=조선일보 기자 홈페이지
김 고문은 지난 25일자 칼럼 ‘보수는 왜 단일화 못하나’에선 노골적으로 보수진영이 합쳐야 한다고 촉구한다.

“보수가 합치는 것은 해볼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보수의 분열로 허탈감에 빠져 있는 보수 유권자에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잘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으로도 보수 정치는 활기를 되찾을 것.”(4월25일자 ‘보수는 왜 단일화 못하나’)

이처럼 김대중 고문은 올 한 해 동안 세차례나 보수 단일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12년 대선 땐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협상에 나선 안철수 후보를 비판했다. ‘위선’, ‘물거품’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제3세력으로 안착을 촉구했다. 

“우리가 다음 대통령을 뽑는 것인지, 단일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지만, 단일화가 과연 성사될 것인가, 된다면 누구로 단일화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 문재인으로 단일화되면 그동안 우리 사회의 새로운 담론으로 제기됐던 ‘안철수 현상’은 물거품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 게다가 5년 내내 권력 싸움, 자리 다툼으로 내홍이 이어질 것이 뻔하다. … 안철수가 여기서 민주당 또는 ‘문재인’이라는 기득권과 타협한다면 안철수 현상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안철수의 타협은 좋게 봐서 원칙의 굴절이며 심하게 말하면 안철수 현상의 ‘위선’으로 귀결될 것이다. 안철수와 제3세력의 존재 가치가 살아남는 길은 정당을 만들고 국민 속에 뿌리내리며 안착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아무리 날라리라고 해도 한술 밥에 배부를 수 없으며, 안철수 현상이 아무리 바람몰이를 해도 그 ‘현상’이 민주당의 ‘조직’을 단숨에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독일의 녹색주의자들처럼 정당을 만들고 조직을 뿌리내리며 국민의 광범위한 호응을 이끌어내고 국회 내에 실천 능력, 즉 의석을 확보해서 마침내 남의 들러리가 아닌 자신들만의 정책을 이끌어내는 장기적·합리적 포석이 필요한 것이다.” (김대중 칼럼 2012년 11월13일자 ‘대선 단일화의 결말’)

지금 자신이 펼치고 있는 칼럼의 논지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 셈이다. 5년 전 안철수에겐 독자세력화를 주문했으나 정작 지금 보수에겐 합치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고문의 이런 시각은 그때그때 다른 보수의 진영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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