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민들이 광장 민주주의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썼다.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요구했다. 하지만 경악스러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드러내는 데는 일조를 하는 듯 보였던 부역 언론들은 국회에서 탄핵소추 결정이 난 이후 조금씩 논조를 변화시켰다. 정파적으로 유불리 여부를 따지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보이고 있는 언론의 편파 왜곡 보도는 또 다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는 권력화된 언론의 민낯을 보여준다.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한 광장의 기억은 매우 소중하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추위에 눈비를 맞으면서 광장에 나오게 된 배경에는 권력 감시를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저널리즘 윤리를 배반하며 권력을 엄호했던 편파 언론이 존재한다. 예로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 속에서도 권력의 편을 들었던 ‘세월호 보도 참사’를 기억한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이 구현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진실을 알고 공적 사안을 숙지,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시민이 실질적으로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기제가 언론임은 자명하다.

▲ 박근혜씨 대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3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씨 대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3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를 위해 헌법은 21조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소수 독과점 언론이나 권력이 장악한 언론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의 언론 장악과 왜곡은 언론의 현실을 7, 80년대 독재정권 시기로 돌아가게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차기 정권은 독립성, 다양성 그리고 참여가 보장된 언론을 통해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장을 뛰는 언론인들이 목도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즉 권력, 자본, 강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 노동자, 약자들의 목소리도 그대로 전달하는 다양성을 구현해야 한다. 그리고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는 기회가 더욱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장악되고 왜곡된 언론 정상화 우선

언론 정상화는 권력의 장악 또는 농단에 부역했던 현실부터 해소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적 교체도 필요하고 질서의 변경도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불법과 편법으로 언론사 사장을 쫓아내고 이를 위해 심지어는 교육부를 동원해 공영방송 이사인 교수를 학교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공영방송 출연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언론인들도 쫓겨났다. 지금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해직 언론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상황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 저항하는 언론인들이 내몰린 자리를 부역 언론인들이 대체했다.

이명박 정부는 개별적인 언론사 장악에 멈추지 않고 지배 질서를 영속화하기 위해 신문과 대기업이 방송 뉴스 영역에 들어 올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날치기 처리까지 하며 미디어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특혜로 무장한 종편이라는 저질 편파방송이 등장했다. JTBC는 손석희라는 언론인을 영입하여 공정한 언론으로 변화를 도모해 성공했지만 나머지 종편은 편파 왜곡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종편의 등장은 광고시장 질서 역시 왜곡하여 기존의 방송도 위기에 몰아넣었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수에 의해 언론이 왜곡되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권력의 언론장악은 환원되어야 하고 앞으로 다시 있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즉 언론 장악과정을 명확히 규명하고 이에 부역한 사람들을 가려내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 언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통해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물론 언론 장악과정의 희생자인 해직 언론인들의 복귀 역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회복 과정을 통해 언론 장악의 위험성을 재인식하고 다시 재발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질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위한 장치 마련해야

우선 공영방송의 경영진 선임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 유지를 위한 언론의 기능을 앞장서서 구현해야 할 중심언론인 공영방송이 권력에 유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국민대표성을 갖도록 국회가 일정 이사들을 의석수에 비례해서 추천하도록 하여 어느 특정 정치권력이 사장을 추천할 수 있는 이사회를 일방적으로 장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중립성). 동시에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전체 방송의 기자, PD 대표 조직인 방송기자연합회나 PD연합회(전문성) 그리고 공영방송사 전체 구성원이 참여하는 투표(대표성)로 각 1인의 이사를 추천케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최소한 사장을 뽑을 때는 이사 2/3의 찬성을 요구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여 중립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과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과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그 못지않게, 아니 더 중요한 것은 현장 취재를 통해 진실에 가장 근접해 있는 언론인들이 전문성과 양심에 따라 취재, 제작, 보도하는 것을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언론인들의 자율성(내적 자유)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방송법에 편성규약과 편성위원회 설치를 강제 규정하고, 취재/보도/편성/제작에 관여하는 종사자를 대표하는 위원들이 경영진과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여 상호 견제토록 하는 것이 공정성을 보장하는 길이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언론장악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또 다른 주체는 방송규제기구들이다. 종편 특혜의 일등 공신인 방송통신위를 명실상부하게 공공성에 기반을 둔 방송규제기구가 되게 하려면, 독립적이고 합의제로 운영되도록 하여 일방적 운영을 막아야 한다. 지금도 합의제 기구라 하지만 명목과 달리 위원장이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독임제 기구가 됐고, 위원장을 지렛대로 하는 정권 장악기구가 되고 말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의 독립적 합의제 위원회로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또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위원장을 하는 지금 방식 대신 위원 간 호선으로 위원장을 선출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방송과 통신이 맞물려 있는 지금의 어중간한 상황을 피하고 프랑스의 최고시청각위원회처럼 콘텐츠 중심의 기구로 재편하는 것이다. 청부 심의기구로 전락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위원 구성과 운영에서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장기적으로는 민간기구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9년 미디어 관련법 개악의 가장 큰 해악은 경향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신문과 달리 상대적으로 더 공정해야 할 방송뉴스 영역에 경제권력인 대기업과 언론권력인 신문이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또 기존의 대주주들도 허용 최대지분율을 높여 대주주의 영향력을 확대해주었다. 따라서 이 부분도 원상회복시켜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상업방송이지만 공영방송 못지않은 공공성을 구현하는 영국의 ITV가 그 전범이다. 더불어 특정 방송이 시장점유율을 높여 여론을 지배하거나, 자본이 광고를 매개로 방송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도 막아야 내야 할 과제다.

신문, 저널리즘 기능 강화를 추구해야

흔히 신문은 사양 산업이라고 하지만 언론으로서 신문의 저널리즘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은 소수 독과점 신문들의 무료구독, 경품 제공, 편파 왜곡 보도 등으로 신문의 신뢰와 가치를 잃어 유럽의 신문보다 훨씬 빠르게 쇠퇴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 측면에서 건전한 신문이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유럽국가들이 국가적인 대토론회를 열어 신문지원책을 고민하는 것은 신문산업 그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건전한 신문지원책을 논의할 가칭 신문지원특별위원회를 구성하거나 신문지원을 위한 법과 제도를 재검토하여 저널리즘의 기본가치를 실현하는 언론 지원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국고가 투입되고 있는 연합뉴스가 공영방송처럼 권력의 장악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극복해야 한다. 연합뉴스의 이사와 사장 선임방식을 공영방송처럼 바꿔야 한다.

촛불의 경험, 참여 강화 제도로 승화해야

우리는 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라고만 착각하는 질곡 속에서 사고한다.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면 직접 민주주의가 더 낫고, 보완이 가능하면 직접 민주주의로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 광장에서 얻은 촛불의 기억이 그것이다. 이를 일회적 경험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제도화해야 한다. 그 첫째는 무엇보다도 깊이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주권자인 시민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도 같은 취지이지만, 시민이 공공기관의 정보에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정보의 개방성을 높여야 한다. 진실에 관한 정보는 민주주의적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 재료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시민의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억압기제를 제거해야 한다.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 처벌 규정을 완화하고, 포털에서 쉬운 임시 조치로 진실을 가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대신 간편·신속한 심리제도를 도입하여 권리 보호와 악용될 소지를 줄여야 한다.

▲ 유튜브에서 활동중인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 TV’
▲ 유튜브에서 활동중인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 TV’
세 번째는 시민이 직접 언론 소통의 주체로 나서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최근 우리는 적어도 그 내용 상으로는 기존 제도 언론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 언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뉴스타파나 국민TV, 고발뉴스, 팩트TV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직접 운영하는 416TV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열악하게 개인방송을 하는 독립미디어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들은 스스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고 동시에 다른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소임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취재, 경영, 저작권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재권을 보장하고,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 이들이 좀 더 전문성을 가질수록 언론의 다양성과 시민의 참여는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가칭)대안미디어 재단’ 같은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이는 독립미디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국가의 사회적 자원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대선 경쟁이 한창인 지금 언론에서 촛불은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KBS는 여전히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를 들어 ‘광장의 기억’이라는 프로그램 방송을 막고 있다. 하지만 지난 광장의 경험은 민주주의를 위한 DNA로 시민들에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후보들에게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공공성 강화와 시민들의 소통 참여를 북돋는 제도 도입을 공약화할 것을 요구하고 차기 정부 임기 내내 그 실천을 감시해야 할 것이다.

# 연재

1. 총론 :

촛불 시민혁명과 주권자 시민의 탄생, 그리고 민주·평등·공공성의 민주공화국

2. 정치 개혁 :

촛불 광장이 요구하는 정부와 의회의 민주적 개혁

권력기구 분권화 없이 민주주의 회복은 불가능

지방자치 혁신 없이 참 민주주의 실현 없다

④ 민주주의의 기반 언론: 공공성 강화하고 시민의 공론장 참여 확대해야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