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감독·견제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위 퇴직 직원들의 20대 대기업 대관업무 자리 이직을 도와 온 정황이 확인됐다. 공정위는 삼성그룹 측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청탁을 들어줬다는 특혜 논란도 받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김 부위원장이 공정위 인사담당 실무자와 퇴직 공무원의 대기업 이직 인사 조치를 논의하는 문자메시지를 발견했다.

김아무개 당시 공정위 운영지원과장은 지난해 중순경 김 부위원장에게 ‘어제 동반위 이사회에서 직제가 개편됐다’ ‘공모 형식 거쳐야 하므로, 종전 임아무개 소장은 강 본부장으로 교체 추진하고, 임 소장은 별도 자리를 롯데에 마련해주도록 하겠다’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물산 사옥. ⓒ 연합뉴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물산 사옥. ⓒ 연합뉴스
서아무개 전 공정위 직원은 삼성물산과의 고용계약 체결에 대해 김 전 부위원장에 감사 인사를 보냈다. 서씨는 2016년 6월24일 “부위원장님 오늘 취업심사 통과됐다.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6월27일엔 “부위원장님, 오늘 삼성물산 측과 계약했다. 7월1일부터 출근한다. 항상 감사히 생각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김 전 부위원장에게 보냈다.

특검팀 조상원 검사는 “공정위에서 퇴직 직원들 자리를 관리하며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되는 대기업에 실제 인사를 하고 있다”며 “김 전 부위원장은 (공정위가) 20대 대기업에 인사를 하면서 대관업무 등을 담당하게 했다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카드 등이 공정위 인사 관리 기업에 해당됐다고 지적했다.

삼성 앞에 공정 원칙 져버린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는 삼성 SDI에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특혜를 줬다는 오명을 벗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2015년 10월 위원장의 결재까지 떨어진 ‘1000만 주 처분’ 결정을 2015년 12월 ‘500만 주’로 급선회했다. 처분 주식 최소화는 삼성그룹 측에 유리한 방향이었다.

삼성물산 주식처분은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형성된 ‘신규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공정위는 2015년 10월14일 삼성SDI와 삼성전기가 각각 500만 주 씩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고 결정해 삼성 측에 통보했다. 삼성 측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물산에 대한 의결권 총량이 줄어들 우려가 있어 ‘500만 주’로 줄여주길 요구해왔다.

특검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삼성과 청와대는 최종 결정이 나기 한 달 여 전부터 본격적인 청탁 작업을 시작했다. 삼성그룹 임원, 김 전 부위원장, 안종범 전 정책조정 수석 및 청와대 경제수석 관계자 등의 진술, 통화내역을 종합한 결과다.

▲ 4월28일 최순실씨 측에 400억원대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 기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9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을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4월28일 최순실씨 측에 400억원대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 기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9회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을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2015년 11월17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직급 사장)은 김 전 부위원장의 자택 주변 일식집에서 만나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재심을 부탁했다.

11월20일 김 전 부위원장은 김종중 전 사장에게 “전기쪽, 단 쉽지 않으니 기대하지는 마시고. 그건만 놓고보면 어려운데 다른 사례와 형평성 차원에서 두 회사가 인접회사인 순환고리는 동 합병으로 고리형태가 바뀌어도 법취지를 살려 문제삼지 않았는데 양사가 떨어져있는 고리는 형태가 바뀌었다고 문제삼은 것”이라는 문자를 보내 내부 동향을 보고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12월8일 ‘현재론 다음주 16일 전원회의에서 논의할 것 같다’고 재차 보고했다.

12월20일 1000만 주에서 축소된 ‘900만 주 처분’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김 전 부위원장과 김 전 사장은 수차례 통화한다.

12월21일 김 전 부위원장은 최상목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10여 분 동안 통화하며 최 전 비서관으로부터 ‘500만 주 처분으로 줄여주면 안되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

이들이 통화를 끝낸 직후, 안종범 전 수석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간 74초 동안 통화가 이루어졌다.

정재찬 위원장이 ‘500만 주 처분’ 결정에 최종 결재한 시점은 12월23일 밤 10시 경이다. 이 전까지 김 전 부위원장과 최 전 비서관, 안 전 수석과 장 전 차장 간의 지속적인 통화내역이 확인된다.

김 전 부위원장은 22일 최 전 비서관과 5통이나 전화를 주고 받는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날 최 전 비서관으로부터 ‘안 전 수석이 왜 500만 주 처분 결정이 나지 않느냐고 역정을 낸다’ ‘위원장 설득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 2월24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2월24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최종 결정이 난 23일 저녁 김 전 부위원장은 최 전 비서관에 “위원장님이 2안(500만 주 처분)으로 결정했다. 보도관련 신경 써주소 특히 조선일보” 내용의 문자를 전송했다.

윤석열 검사는 이와 관련해 “2015년 10월 공정위원장이 최종결재해 삼성 측에 통보됐다는 것은 행정행위 효력이 발생된 것”이라며 “이 행정행위를 뒤엎었다는 걸 보여드린 것”이라 말했다.

특검은 공정위로 하여금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500만 주만 처분하게 한 것을 삼성그룹의 부정청탁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9회 공판에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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