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현재 해체)은 2015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받은 5억 원 지원금을 정말 몰랐을까. 지원금 명목의 '16억 원' 영재센터 뇌물 공여 과정을 둘러싸고 삼성은 '구체적 내역은 알지 못했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7회 공판에서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직급 사장)의 휴대전화에서 복원된 문자메세지 일부를 공개했다.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는 장 전 사장에게 '영재센터 박재혁과 후원 건에 대해 협의했다' '전자 홍보팀에서 후원하는 방법으로 진행코자 한다. 내일 실무미팅은 본건을 처음 시작했던 황성수 전무와 내가 같이 할 예정이다. 최대한 빨리 지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문자를 보냈다. 제일기획 관계자가 삼성 미전실 임원에게 '영재센터 후원 과정'을 보고한 것이다.

지원 과정만 보면 금전 지급 실무는 '제일기획'이 담당했고 자금은 '삼성전자' 회사자금에서 융통됐다. 이같은 내용이 '삼성 미전실'에 보고된 것이다.

특검은 삼성 미전실이 영재센터 후원 사실관계를 모를 리 없다는 입장이다. 김영철 검사는 "제일기획에서 지급되는 돈이라면 컨트롤이 필요없지만 당사자인 제일기획이 아닌 삼성전자가 지원한 것인데, 이는 미전실의 업무를 초월하는 것"이라며 "결국 각 계열사 업무 조정에 미전실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피고인 장충기는 이 내용을 알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문자가 발송된 것"이라 밝혔다.

▲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사진=포커스뉴스
▲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사진=포커스뉴스

영재센터 뇌물 공여 혐의를 사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최지성 미전실 실장·장 전 사장은 대통령으로부터 영재센터 후원 요구를 받은 건 맞지만 진행상황은 모른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은 10억7800만 원이 추가 지급된 '2차 후원'에 대해서도 “지원과 관련된 보고 받은 적 없다”며 전면 모르쇠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문자 발신 추정 시점은 2015년 9월23~24일 경이다. 복원된 문자인 탓에 수발신 날짜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문자 내용에 비추어 추측한 날짜다. 영재센터에 5억 5천만 원 '1차 후원'이 이뤄진 10월2일보다 일주일 여 전이다.

삼성·최순실, 뇌물 공여 1~2주 전부터 바삐 움직여, 장시호 '삼성 소문' 책임에 얼굴 맞기도

이 당시 영재센터 실무자들도 바삐 움직였다. 특검은 이규혁 전 영재센터 전무이사, 장시호씨, 김소율 전 영재센터 직원 등의 카카오톡·이메일 내역 등 관련 증거 자료를 공개했다.

9월16일 오전 장씨는 이 전 이사에게 카톡으로 '저쪽 큰 집 들어가는 날이라 내 말 잘 들어줘야 하거든. 파란색집' 이라 보낸다. 다음 날인 9월17일 최씨가 청와대에 가는 것을 말한 내용이다. 장씨는 같은 날 밤 '나 내일 가 그리고 서울' '그때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게. 큰댁 어른들이' 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삼성은 어때'라고 물어본 이 전 이사에게 장씨는 다시 '내일 만나러 큰 집 간다니까. 인사드리러. 추석선물 가져가라 연락왔어. 내일 5시에 만나'라고 답했다.

9월17일 장씨는 이 전 이사에게 '나 오늘 서울가 쌈하고 다 알아볼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쌈', '삼' 등은 '삼성'을 뜻하는 이들간의 은어다. 최씨는 이날 청와대에서 '추석 선물'을 받아 장씨에게 일부를 나눠줬다.

9월14일엔 삼성이 최씨 소유의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에 승마훈련 비용 지원 명목으로 10억8687만 원 대금을 지급한 바 있다.

23일 새벽, 장씨는 최씨에게 파일철로 머리 부위를 맞는 등 호된 질책을 당한다. 영재센터가 삼성 측으로부터 후원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아 최씨가 장씨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장씨는 이날 새벽 3시경 이 전 이사에게 '나 오늘 미쓰 사표내고 지금껏 얘기하다 왔어. 오빠까지 문제되겠어. 사단법인에서 벌써 돈을 삼성에서 스폰받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벌써 미쓰 귀에 들어가고, 떠벌리고 다니다고 나 귀방망이 맞고 울고 불고 매달렸다' '우리 돈 주다간 삼이 조사받겠어' 라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지난 24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삼성 430억대 뇌물 등 혐의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지난 24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삼성 430억대 뇌물 등 혐의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어 25일 장씨는 이 전 이사에게 '삼 상대로 하려면 다들 징역가게 생겼어' ''기획도 이런 식으로 가다간 문책하고 검찰 조사받고 이건 아니지. 그렇잖아'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송했다.

이 같은 메시지가 오고 간 9월25일, 삼성전자의 신원일 사장은 영재센터 직원 김소율씨에게 "시간 절약을 위해 계약서를 저희가 작성했다"며 계약서 초안을 첨부해 보냈다. 신 사장은 "수정 필요없으면 도장 찍어 퀵으로 발송 부탁드린다"며 시급한 처리를 요청했다.

9월25일과 30일 사이 삼성전자와 영재센터 간 후원계약서가 작성됐다. 계약체결일 10월2일부터 2016년 12월30일까지 삼성전자가 영재센터 에 5억원을 지원한다는 계약서였다.

그리고 10월2일 삼성전자가 부가가치세 5천만 원이 포함된 회사자금 5억5천만 원을 영재센터에 송금했다.

제일기획의 일을 왜 삼성전자 회사자금에서… 삼성 해명 필요

장 전 사장이 이영국 제일기획 상무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미전실의 인지 여부 때문이다.

'금전 지급 과정을 알지 못했다'는 삼성 측 반론이 받아들여질 경우 영재센터에 1차로 지급된 5억5천만원에 대해서는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되지 않을 여지가 있다.

삼성 측 변호인은 제일기획이 요청받은 후원금을 삼성전자가 지급한 경위에 대해 "관계사 협조 차 요청한 것"이라면서 "이영국은 제일기획 상무로 자신이 삼성전자 후원금을 바로 나가게 할 순 없고, 이청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지원 요청을 해 이 상무가 다시 전자 내부에서 사업계획서 전달받아서 검토를 거친 결과 후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이어 "삼성전자의 의사결정이 결코 피고인 장충기 지시에 의한 게 아니라 제일기획 협조 요청을 통한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입증할 것"이라 말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2016년 3월3일 '2차 후원' 계약이 상당히 급하게 이뤄진 점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당시 후원계약 체결을 위해 영재센터 측이 2016년 2월 작성한 '영재센터 종합형 스포츠클럽 꿈나무 드림팀 육성 계획안'을 보면 비문과 오기가 수차례 발견된다.

박주성 검사는 '현재 영재센터의 영재선수는 초등학생이라는 정해진 규율에 있어 올림픽 선수 발굴하기엔 사뭇 어렵다' '체력 훈련의 구분과 배율을 알차게 하여' '(캐나다 캘거리에 대해) 세계정상권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으로써' 등의 비문 표현을 지적했다.

문건을 작성한 장씨는 지난 24일 최순실씨의 뇌물 수수 사건 공판에서 "저희도 그날 급하게 짜맞추기 해서 보낸 것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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