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정유라 승마 지원은 모두 최지성 부회장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은 삼성그룹 컨트롤타워격인 ‘미래전략실’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뇌물 공여 과정에 개입한 적이 없다’는 방어막을 친 것으로, 특검은 확보된 증거로 재판부를 설득해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부회장의 진술은 지난 19일 오후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4회 공판에서 확인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증거조사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2회 참고인 진술조서, 5회 피의자 신문조서를 공개했다.

“이재용은 미래전략실과 관계 없다”

특검은 미래전략실이 삼성그룹 대주주(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를 다루면서 전 계열사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총수(이재용 부회장) 일가→미래전략실→삼성그룹 계열사’ 지시체계는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규명하는데 필요한 근거다. 이 관계가 인정되면 이 부회장이 미전실에, 미전실은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금전 지급 및 경영권 승계 작업 추진을 지시한 선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이 삼성전자 부회장 지위일 뿐 “미전실 소속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종결정권은 최지성 미전실 실장이 갖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미전실에 대해 “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는 조직이지 나를 보좌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회장이 쓰러진 후 최 실장이 나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 주고 의견을 물어본다”고 말했다.

▲ 2월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에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2월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에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피고인 최지성이 최종결정하는 거라면 왜 최지성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의견을 묻느냐’는 특검 질문에 이 부회장은 “필요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2014~2016년 동안 대통령과의 독대자리에 삼성그룹 총수로서 나간 것에 대해 그는 “청와대에서 총수로서 오라고 해서 간거지 내가 정한 게 아니”라고 답했다.

이 부회장과 변호인의 주장을 종합하면 미전실은 삼성그룹 계열사 간 사업·투자 등 업무를 조정하고 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는 조직이다. 이 부회장은 조직체계상 미전실 내 어떤 권한과 지위도 없다. 변호인단은 “인적구성만 보더라도 미전실 임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임명하거나 함께 일 한 사람이 아니”라면서 “최지성은 이재용의 지시를 받을 위치가 아니라 멘토역할을 했다. 최지성이 삼성그룹 2인자”라고 지적했다.

“정유라 213억 원, 미르·K 205억 원, 최지성이 결정했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씨와 최순실씨 측에 공여한 뇌물은 △정유라 승마지원 213억 원(실지급액 약 78억 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5억 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16억 원 등으로 나뉜다. 이 부회장은 최지성 미전실장으로부터 제한적으로 보고받았을 뿐 과정도 알지 못하고 지시를 내린 적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은 ‘2014년 9월15일 이후 대통령 지시를 어떻게 이행했느냐’는 특검 신문에 “최지성 미전실장에게 대통령의 말을 전달하고 전혀 챙겨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후의 일은 모두 최지성 실장 등 관계 임원들이 도맡았다는 주장이다.

2015년 7월25일 독대 이후 경우에도 이 부회장은 같은 입장을 취했다. 대통령은 7월25일 독대에서 ‘한화(승마협회 전 회장사)보다 못하다’고 질책했고 삼성은 한 달 여후 최순실의 독일회사 코어스포츠와 승마선수 훈련지원 명목으로 213억 원 규모의 용역 계약을 맺는다. 이 부회장은 “(7월27일) 이후 전혀 승마관련 보고를 받지 않았다”면서 “삼성 스타일은 믿고 맡기는 것이다. 회사 스타일이 그러하다. 최지성 실장이 알아서 할 거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중간에 전혀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게 말이 되냐’는 특검 측 질문에 이 부회장은 “그 해 가을 쯤 승마 지원 문제가 생각나서 최지성 실장에게 물어봤으나 최 실장이 ‘잘 되고 있으니 나에게 믿고 맡겨라’고 해서 신경 안 썼다”고 진술했다.

▲ 2016년 11월18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특혜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2016년 11월18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특혜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2015년 11월 미르재단 125억 원 출연 경위, 2016년 2월 K스포츠재단 79억 원 출연 경위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 원 지원금 납부에 대해 2016년 2월15일 대통령 독대 이후 “지원과 관련된 보고 받은 적 없다”고 진술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25일 두 번째 독대를 둘러싸고 연달아 열린 네 차례 긴급회의도 모두 “최지성 실장 주재 회의였다”고 말했다. 회의는 독대 일정이 잡힌 7월23일, 독대 직후인 7월25일, 7월27일, 8월3일 열렸다. 25일은 대통령으로부터 ‘올림픽을 대비해 승마 선수에게 좋은 말을 사주고 해외 전지훈련을 도와야 한다’는 질책을 듣고 이 부회장이 긴박하게 대책을 마련했을 때다.

특검은 이에 “상식적으로 피고인 이재용이 독대 당사자이자 요청 받은 사람인데, 피고인 최지성이 주재하는 회의에 수동적으로 참석했다는 말보다 최지성의 진술이 더 맞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첫 회의가 열리기 전날인 7월22일 이 부회장으로부터 승마협회 관련 진행 상황을 알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박상진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호출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 “그 말은 이재용이”, 이재용 “그런 말 한 적 없어”

홍완선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이 부회장이 ‘이번 합병(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반드시 성사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밝혔으나 이 부회장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 입장을 정하기 3일 전인 2015년 7월7일 이 부회장은 최지성 실장, 김종중 미전실 전략팀장 등 삼성그룹 임원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한 국민연금 관계자 서너명과 삼성전자 서초사옥 회의실에서 만났다.

동석한 정아무개 국민연금 투자팀장 진술서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플랜B는 없다. 이번에 반드시 성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 전 본부장은 “이 부회장이 합병 비율을 조정할 수 없는 이유, 신규 순환출자 고리 개선, 합병 후 비전 등을 우리에게 직접 설명했다”며 “그러면서 바이오산업 육성, 합병 시너지 효과 등을 말하며 이번 합병 반드시 성사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이는 ‘CEO면담내용’이란 메모에서도 확인된다. 본 메모는 채아무개 국민연금 리서치팀장이 이재용 부회장의 말을 정리해 홍 전 본부장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CEO는 이재용 부회장을 칭한다.

이 부회장은 “나는 얘기하지 않았다. 김종중 사장이 얘기했다”면서 “합병 비율, 지주회사 이런 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등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등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삼성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지배적인 평가에 “두 회사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때문이지 경영권 승계 관련이 아니”라고 수차례 진술했다.

금융위원회 공무원의 진술과 모순되는 점도 있다. 2016년 1월 삼성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금융위원회에 의뢰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가 작성한 보고서엔 ‘이재용 부회장의 추진 의지가 강해서 우리도 어쩔 수 없다’ ‘금융위원회에서 반대하더라도 삼성에서는 원안대로 전환계획 승인신청을 강행하겠다’ 등의 내용이 적시돼있다.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경영권 승계 작업 중 하나로 지목된다. 금융위는 그해 3월 삼성 봐주기 논란 및 비난 여론에 대한 우려로 최종 불승인 입장을 삼성 및 청와대 경제수석비서실에 전달했다.

이 부회장은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이 내용은 잘 모른다”면서 추진 강행에 대해 “그런적 없다. 중간 상황도 보고 받은 적 없고 전환하지 않기로 한 것만 들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 대통령 독대에서 삼성그룹 현안을 부정청탁한 혐의도 일관되게 부인했다. 부정청탁과 관련된 이 부회장의 답은 모두 “전혀 없었다”였다.

뇌물 혐의 당사자들이 입을 다문 상황에서 특검은 안종범 전 정책수석의 업무수첩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수첩 2016년 2월15일 자엔 삼성을 뜻하는 ‘ss’가 적혀있고 그 아래에 ‘금융 지주회사, 금산분리, 미르·케이스포츠, 중국 1조, 빙상 승마, jtbc’가 적혀있다. 외국투자기업 세제혜택, 싱가폴 아일랜드, 글로벌 제약회사 유치, 환경규제, 바이오 클러스터 센터 등 삼성 바이오로직스 공장에 필요해보이는 민원사항도 수첩에 기재돼있다.

한편 이 부회장은 진술을 번복한 전례가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검찰 특수본에서 ‘2014년 9월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있냐’는 물음에 “없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독대 때 승마, 빙상 관련 지원 요청이 있었냐’는 취지의 물음에도 “전혀 없었다” “아니다”라는 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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