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된 문재인

‘1대 4 토론’, ‘사실상 문재인 청문회’라는 평가도 나왔다. 20일 KBS가 주최한 19대 대통령 선거 5당 후보들의 TV토론에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선거가 가까워 오면서 후보 간 질문의 수위도 과열됐다. 해묵은 대북송금 특검 논쟁으로 상당 시간을 허비하는가 하면 ‘북한이 주적이냐’는 색깔론도 나왔다.

중앙일보가 상대의 질문을 받아 토론한 시간을 후보별로 측정한 결과 90분의 시간 중 각 후보가 상대에게 지명을 받아 토론에 참여한 시간은 문재인-안철수-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 순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45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30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9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5분이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상대방의 지명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시간뿐 아니라 질문을 받은 수도 양상은 비슷했다. 문 후보는 18개, 안 후보는 14개, 홍 후보는 9개, 유 후보는 3개, 심 후보는 0개의 질문을 받았다.

‘양강’ 구도의 대선 판세를 반영하듯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나머지 세 후보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특히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는 안보 이슈로 문재인 후보를 몰아붙였다. 중앙일보는 “이 때문에 문 후보는 주어진 18분의 시간 중 상대를 지목해 선공에 쓴 시간이 8분이 채 안 됐다”며 “안 후보는 첫 주제에선 사실상 선공을 거의 못하다가 두 번째 주제에선 공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먼저 질문을 던져 공세를 취한 것은 모두 6분이 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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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도 “사실상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안보관을 겨냥한 나머지 주자들의 협공이 펼쳐졌다”면서 “문 후보는 ‘안보 우클릭’ 시도로 보수 후보인 홍준표 후보, 유승민 후보와 진보 후보인 심상정 후보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문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놓고도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홍 후보는 문 후보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던 일을 문제 삼자 문 후보는 “(17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7조에 있는 찬양·고무 조항을 폐지하는 쪽으로 여야 간 의견이 모아졌는데 당시 못했던 걸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심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보법을 박물관에 보낼 구시대 유물이라고 했는데 왜 폐지하지 않겠다고 하느냐”고 따졌고, 문 후보는 “정치는 타협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해묵은 색깔론 또 등장

원고도 없이 120분간 서서 ‘난상토론’이 이뤄진 이날 토론회에 대해 한국일보는 “외교안보와 경제ㆍ복지를 주제로 다뤘지만 한낱 말싸움 수준에 그쳤다”고 혹평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위협이 고조되는 엄중한 한반도 정세와는 아랑곳없이 색깔론을 들먹였고, 해묵은 대북송금 특검과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문제를 끄집어내며 시간만 낭비하는 말꼬리 잡기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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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외교안보 분야 토론에서는 홍준표, 유승민 두 보수진영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과거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지원한 대북송금 특검을 물고 늘어지면서 토론은 시작부터 변질됐다”면서 “이외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군 복무기간 단축이 테이블에 올랐지만 기존에 후보들이 밝힌 입장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홍준표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유승민 후보는 ‘주적’ 문제를 언급하며 토론회를 ‘사상 검증’ 분위기로 몰아갔다고 꼬집었다. 유승민 후보는 문 후보에게 “북한이 주적인가”라고 물었다. 문 후보는 “‘주적’ 같은 표현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며 “국방부는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유 후보는 “왜 주적에게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냐”고 계속 따졌다.

정치·외교·안보 분야 토론이 보수진영 후보들의 주도로 대북송금 특검과 햇볕정책에 대한 공방으로 쏠리자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정리에 나섰다. 심 후보는 “대선후보들이 언제 적 대북송금 특검만 갖고 얘기할 건가”라고 일침을 놓았고 그제서야 공방을 벌이던 4명의 후보들은 다른 주제로 토론을 이어갔다.

심 후보는 “대북 송금이 도대체 몇 년 지난 이야기냐. 선거 때마다 대북송금을 아직도 우려먹느냐”면서 “앞으로 대통령 되면 무엇을 할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후보도 홍 후보를 향해 “나라를 그렇게 망쳐놓고 언제까지 색깔론으로 선거를 치르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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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뒤 후보들도 ‘스탠딩 토론’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문 후보는 “스탠딩 토론이라면 자유롭게 움직인다거나 왔다갔다해야 의미가 있는데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문답을 하니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토론에서 자신에게 질문이 집중된 것에 대해선 “한 후보에게 질문이 집중되면 충분히 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답변 시간도 공평하게 부여해주는 룰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유 후보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안보가 얼마나 불안한 후보인지를 꼭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시간 안에 충분히 얘기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심 후보는 “5명이 스탠딩 토론 하기엔 숫자가 많은 것 같다. 앉아서 하나 서서 하나 큰 차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 후보도 “체력장 테스트도 아니고 두 시간 동안 세워 놓으니 무릎이 아프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반면, 안 후보는 “(스탠딩 토론이) 처음 시도하는 형식인데 괜찮은 것 같다. 다음부터는 후보들이 더 자신감 있게 실력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이재용도 “박근혜, JTBC 언짢아했다”

박근혜씨가 대통령 재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 JTBC를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는 증언이 법정에서도 나왔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공개했다. 조서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 당시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JTBC가 왜 그렇게 정부를 비판하냐’며 외삼촌인 홍 전 회장에 대한 불만을 10분가량 내게 말한 적이 있다”며 “면담을 마치고 홍 전 회장에게 ‘대통령이 언짢아하신다’고 전했다”고 진술했다.

앞서 홍 전 회장도 최근 자신이 홈페이지 동영상을 통해 “손석희 사장 교체 등 JTBC에 관한 외압을 5∼6차례 받았는데 그 가운데 2번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외압을 받아서 (손석희)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다”고 폭로해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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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20일자 사설을 통해 “대통령이 방송사 사주를 향해 한 번도 아니고 두 차례나 특정 앵커의 교체를 요구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관련 기업의 오너를 통해 우회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광고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니 스스로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였음을 부정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민영방송에까지 이렇게 개입했다면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다. 세계일보 사장 교체도 청와대 작품일 가능성이 농후해졌다”면서 “두 정부의 언론 개입 전모를 밝혀내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일로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문제가 더 이상 지체될 수 없는 과제임이 새삼 확인됐다. 언론개혁을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재인 후보는 최근 홍 전 회장과도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홍 전 회장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 후보가 지난 12일 집으로 찾아와 점심을 함께한 자리에서 ‘외교·통일과 관련된 내각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하지만 내가 장관으로 내각에 참여할 군번은 아니지 않느냐”며 “만약 평양특사나 미국특사 제안이 온다면 그런 것은 도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 후보 측은 홍 전 회장과 만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내각 참여 제안에 대해선 부인했다. 민주당 선대위 박광온 공보단장은 19일 “내각 참여와 같은 구체적인 자리에 대한 얘기는 이뤄지지 않았다”면서도 “외교·안보 분야에서 홍 전 회장이 인적 네트워크나 식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새 정부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에 얘기가 상당히 일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칼빈슨호 ‘거짓말’로 한반도 농락

북한에 대한 핵실험 등을 억지하겠다던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항로 변경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공습과 맞물려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을 부추기며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칼빈슨는 그동안 정반대 방향인 인도양 쪽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연합훈련을 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18일(현지시각) 일제히 미 해군이 공개한 훈련 사진을 근거로 칼빈슨호가 지난 주말인 15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자바 섬 사이의 순다해협을 지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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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싱가포르를 출발한 칼빈슨호는 애초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반대 경로인 남쪽으로 움직였다. 한반도의 긴급 상황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연합훈련을 급박하게 취소한 것처럼 공개됐으나 이는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앞서 미 태평양 사령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칼빈슨호의 항로 변경이 “이 지역 최고의 위협”과 연관돼 있다며 북한이 “무모하고 무책임하고 불안정한 미사일 시험 계획과 핵무기 능력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북한 ‘태양절’(15일)을 앞두고,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미군의 ‘무력시위’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라며 “뒤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외교안보 고위관계자들까지 나서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무력시위가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으로까지 비화되는 등 열흘가량 한반도는 ‘칼빈슨발 위기’로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당국자는 ‘칼빈슨호가 오스트레일리아와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동맹 차원에서 공유한다”고 인지 사실을 밝혔다. 한겨레는 “국방부가 한반도에서 위기감이 증폭되고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알면서도 이를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결국 미국은 시점을 생략한 채 항공모함이 이동하고 있다고 밝혀, 열흘 가까이 한반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셈”이라며 “국방부와 백악관 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상황을 부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공모함 전개를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그리 높게 판단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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