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청와대, 국민연금관리공단, 일성신약 부회장 등 ‘삼성물산 합병안’ 이해관계자를 만나러 다닐 때, 언론은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며 이 작업을 뒷받침했다. 특히 국민연금의 합병안 의결 시점에는 외국계 투기자본의 한국 기업 경영권 침해 문제를 집중 조명하며 ‘국민연금 백기사론’ 확대에 총력을 집중했다. 이러한 조력은 일부분 삼성그룹과의 교감을 통해 이뤄졌다.

매일경제는 가장 적극적으로 조력한 언론 가운데 하나다. 매일경제는 2015년 7월6일부터 10일까지 관련기사만 총 22개, 하루 평균 4꼭지를 5일 연속 게재했다. 9개 일간지 및 10개 경제지 중 가장 많은 수다.

골자는 헤지펀드 엘리엇 등을 포함한 외국계 투자자들의 투기 공세가 한국 대기업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제도가 필요하며 합병 찬반에 대한 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뒤따랐다. 즉 ‘외국계 투자자 경영권 위협→방어 제도 부실→방어권 제도 강화 과제→합병 찬성 국민연금 책임론 대두’의 흐름이다.

7일자 4면 “제2 엘리엇 막을 방패가 없다… 판 깔아준 투기자본 놀이터” 기사는 “…(전략)… 최근 삼성그룹에 대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은 2차 공세로 볼 수 있다”며 “10년 전 학습효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공격목표가 되고 있는 것은 투기 자본에 맞설 수 있는 제도적인 경영권 방어 장치가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8일 “투기자본 맞서 핵심기업 누가 지키나… 국민연금 역할론 대두” 기사에선 ‘국민연금 책임’을 직접 거론한다. 기사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삼성물산 공격에 이어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삼성정밀화학 지분을 매집하는 등 해외 투기 자본의 국내 기업 공습이 잇따르며 국민연금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장치가 취약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공공성’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사한 내용이 9일 “국민연금의 고민”(1면 보도) “국민연금 찬성해야 합병 가능”, 10일 “삼성합병 찬반 직접 결정하는게 국민연금의 의무”(1면 보도) 등의 기사로 연이어 보도됐다.

매일경제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임원이 주고받은 메시지에 ‘조력 언론’으로 언급된 매체 중 하나다. 이수형 전 미전실 기획팀장은 7월10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 ‘매일경제 손아무개 편집국장이 오후 8시 홍완선(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불구속 기소)과 통화했다’ ‘전문위원회로 안 넘긴다고 한다. 톱 나간다’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실제로 매일경제는 11일 1면 톱기사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국민연금 ‘찬성’”을 싣는다.

7월10일이 중요한 이유는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 11.21%)이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입장을 정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7월17일 합병안이 최종결정될 주주총회를 앞두고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의 입장이 결정적인 때였다.

▲ 지난 4월13일 ‘삼성 뇌물공여 사건’ 공판에서 삼성그룹 임직원 간 주고받은 문자 내역이 공개됐다. 문자에 등장한 언론사들은 모두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에 우호적인 논조를 보였다.
▲ 지난 4월13일 ‘삼성 뇌물공여 사건’ 공판에서 삼성그룹 임직원 간 주고받은 문자 내역이 공개됐다. 문자에 등장한 언론사들은 모두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에 우호적인 논조를 보였다.
동아일보와 연합뉴스도 ‘조력 언론’으로 언급됐다. 이 전 팀장은 7월10일 장 전 차장에게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가 최치원 삼성물산 사장에게 ‘축하한다. 최대 고비를 넘겼다’고 보낸 문자 내용을 전했다.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7월8일 장 전 차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밖에서 삼성을 돕는 사람들이 많다. 연합뉴스 이아무개 편집국장도 있다’ ‘소액주주 표에 도움되는 기사를 실어달라고 했다’ 고 적었다.

이들의 보도 논조 및 흐름도 매일경제 보도와 유사하다. 동아는 8~9일 이틀 간 ‘경영권 방패 없는 한국기업’ 기획기사를 실었다. 연합뉴스는 6일 “SK에서 삼성까지…‘벌처펀드 안전지대 없다’” “‘제2 엘리엇 나올텐데’…경영 보호장치 도입론 ‘고개’” 등의 기사로 삼성물산 합병안에 반대하는 외국계 투자자에게 ‘국부유출’ 프레임을 씌웠다.

‘ISS를 믿을 수 없다’는 해석도 나왔다. ISS가 제일모직 주식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에게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고 권고했고 삼성물산 주주대상 보고서엔 “합병 비율 산정 시기에 문제가 있다”고 쓴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로 삼성 측 합병안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라는 이유로 합병안에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외 언론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제는 6일 삼성물산 입장문을 토대로 “삼성 ‘ISS보고서 앞뒤 안맞아 … 국내법상 불가능한 합병비율 제시’”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서울경제, 파이낸셜뉴스, 머니투데이 등 경제지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조선일보는 9일 “헤지펀드 ‘먹잇감된 한국기업’ 일단 공격당하면 경영 올스톱” 기사를 1면에, 10일 “‘헤지펀드 막아라’… 美기업마다 모의훈련, 長期 투자자는 株總 연대” 기사를 6면에 올리는 등 ‘투기자본에 흔들리는 한국’ 심층 기획보도를 냈다.

‘먹튀론’에 가려진 원칙론 및 후진적 재벌체제론

동아일보는 7월9일 “국민연금 의결권, 외부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결정해야” 기사는 원칙과 다른 분석을 내렸다. 삼성물산 합병안의 경우 전례와 원칙에 따를 때 내부 투자위원회가 아닌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했음에도 외부 민간위원이 배제된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결권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의 장기적·안정적 이익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결권을 공정하게 행사하기 위해 2006년부터 만들어진 기구다. 투자위원회는 내부 임직원들로 구성된 반면 의결권위원회는 노·사 단체, 지역가입자단체 등 가입자 대표들이 추천한 민간위원 9명(교수 3명, 관계전문가 3명, 변호사 2명, 연구원 1명)으로 구성된다.

삼성물산 합병안과 유사한 ‘SK C&C 및 SK주식회사 간 합병’ 건은 의결권위원회가 합병 반대를 의결한 바 있다. 삼성물산 합병안을 이례적으로 다뤄야 한다면 ‘공정하고 투명한 판단을 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구성된’ 의결권위원회에서 왜 다뤄지면 안되는지, 본 합병안이 의결권위원회가 다룬 과거 사례와 얼마나 다른지 등이 충분히 검토됐어야 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점도 지배적인 분석이다. 삼성 측이 제시한 ‘1(제일모직) : 0.35(삼성물산)’ 안은 ISS,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미국 의결권 자문사 글라스루이스,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등으로부터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반대 권고를 받았다.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위원들조차 국민연금에게 손해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한겨레는 7월10일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도하며 합병에 찬성한 채준규 국민연금 리서치팀장 조차 “우리가 산출한 양사의 적정 가치에 기초해 합병 비율을 구해보면 1 대 0.46으로, 삼성이 제시한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에 다소 불리하다”고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합병 반대 의견을 비친 내부 위원도 있었다. 또한 회의록 별첨자료인 ‘(삼성물산 합병이) 기금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영향’은 “삼성물산 합병 비율을 높일수록 제일모직 지분율이 높은 최대주주(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낮아지는 반면 국민연금 지분율은 높아져 국민연금 전체로 (+) 효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SK그룹 합병 안건 전례와 합병 적정비율이 ‘1:0.46’이라는 내부 판단에 따라 삼성물산 합병안을 의결권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보건복지부에 통보한 바도 있었다.

즉 이들 보도는 절차적 투명성과 주식 의결에 대한 원리원칙을 간과하면서 삼성 측을 옹호하는 논조를 보였다. 삼성물산 합병 찬성이란 결론 자체는 ‘재벌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 체제’에 대한 가치판단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독자는 이들 보도만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절차 및 원칙을 위배하면서까지 합병안을 찬성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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