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정보망은 국민연금관리공단, 국정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각 정부기관까지 침투해 있었다. 삼성그룹 임원이 감사원 간부 인선 과정에도 '그 후보는 안된다'며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조력 관계의 언론을 활용해 우호적 여론을 형성했던 정황도 확인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13일 9시간에 걸쳐 진행된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이수형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기획팀장, 김종중 전 미전실 사장,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 이왕익 삼성전자 전무 등이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 및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양재식 특검보는 이와 관련해 "'과연 이런 정보력을 갖고 있는 삼성그룹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해 정말 몰랐느냐'는 점에 대한 간접 자료"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관계자, 사기업에 동향 일일이 보고해줬다

삼성 총수 일가의 남은 경영권 승계 작업 중 핵심으로 지목된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은 지난 2015년 7월10일 삼성물산 대주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합병안에 찬성 입장을 확정하면서 성사됐다. 특검은 이를 위해 삼성 측이 국민연금을 포함해 관련 정부관계자에 '합병 찬성 로비'를 추진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삼성은 국민연금 내부 동향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이수형 전 팀장은 2015년 6월24일 "JSS와 기업지배구조원 모두 찬성의견을 내서 당연히 찬성의결하는 줄 알았는데 의결권전문위원회는 위원 개개인이 판단해 투표하는 구조다. 국민연금이 오늘 오후 늦게 (SK C&C와 SK 주식회사 간 합병 건) 반대쪽 의견으로 보도자료 낸다더라. 삼성물산 합병 건에 대한 시그널일 수 있으니 잘 대처하시라"는 내용을 장충기 사장에게 문자로 보고한다. SK그룹 합병 건은 삼성물산 합병 건과 유사한 사례였다.

이어 이 팀장은 "황영기 선배의 전언"이라며 "삼성물산은 케이스가 달라 내부 의견 정해질 것.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몇 일 후 찬성 입장을 밝힐 거라고 한다. 따라서 삼성은 SK건과 삼성물산이 왜 다른지 디펜스 논리를 정해 언론 대응해라"는 내용을 장 전 사장에게 보고했다. 이 문자엔 "국민연금 압박 기사는 좋지 않으니 수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선배'로 지목된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7월6일 장충기 전 사장에게 문자를 통해 "장 사장,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과 한참 통화했다. '이미 지난 번에 반대 의견을 냈고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데 굳이 반대의견 낼 필요 있냐. 아무에게 도움 안 된다' 했고, 주 사장은 '중요한 사안이고 애널리스트가 쓰겠다는데 굳이 말릴 수 없다. 삼성은 주주총회까지 가지 말고 지금 철수하는게 방법'이라고 말했다"며 "'가정을 가지고 불필요한 소란 만들지 말라'고 강하게 말했다. (주 사장은) '직원과 깊이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접을 가능성이 30%다. 큰 도움 못 돼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은 국내 22개 투자자문사 중 유일하게 삼성물산 측의 합병안에 반대 의견을 냈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삼성 관계자 대신' 설득작업에 나선 정황도 확인됐다. 이 전 팀장은 "홍완선이 원아무개 박사와 김성민 교수를 만나 얘기했다고 한다. 홍완선이 열심히 설득했는데 김 교수는 '삼성 논리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며 "몇차례 더 만나야 할 것 같다"고 장 전 사장에게 보고했다. 장 전 사장은 이에 "그럼 홍이 책임지면 됨"이라고 답했다. 김성민 교수는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이었다.

삼성은 국정원 정보관의 정보보고도 파악했다. 이 전 팀장은 7월3일 "국정원 그룹 출입 IO 김아무개 얘기"라면서 "국민연금공단의 주주의결권 행사 관련 국내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금일 오후 합병 추진에 대해 반대의견을 연금공단에 통보했다"고 보고했다.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개입, '메르스 솜방망이 처벌' 때문인가

국정원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 개입 정황' 건에서도 등장했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장 전 사장은 '이아무개가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적합하냐'는 이아무개 국정원 기조실장의 물음에 "이 친구가 사무총장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고, 그건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장 사장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이아무개씨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세평만 얘기해줬다"며 "인사에 개입한 게 아니라 고향선배가 세평을 물어봐서 이야기해준 것"이라 해명했다.

이 통화내용이 뇌물공여 등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다는 변호인 측 주장에 양재식 특검보는 "감사원 사무총장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2015년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솜방망이 처벌'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적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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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감찰국장 출신의 박의명 삼성증권 고문은 2015년 7월 장 전 사장에게 "사회복지 감사국장 만났는데, BH 전염성 질환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요구가 있어, 메르스가 진정된 후 삼성의료원 감사 실시 예정이라고 한다. 가능한 감사 시기 늦춰 주고, 착수 전 미리 얘기해달라 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메르스 감사 건은 아직 특별한 문제점 발견하지 못한 거 같다" "신아무개 국장 면담결과, 고발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돼 있었으나 ,의료법 등 관계법령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내용 수정했다고 한다. 감염병 관리법(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의료법 위반이 되면 행정조치가 가능하다. 감사 발표는 목요일 오후 2시다" 등의 동향보고를 연이어 보냈다.

감염병 관리법 위반이 적용되면 형사상 고소·고발조치가 가능하다. 의료법 위반의 경우 행정제재만 가능하다.

장 전 사장 측 변호인은 "삼성증권 고문으로 일했던 사람으로 당시 고문 계약이 끝나는 지위에 있었다"며 "그렇기에 메르스 관련해 자기가 역할을 한 것과 같은 문자를 계속 보내온 것"이라 반박했다.

양재식 특검보는 감사원 사무총장 인사 개입과 관련해 "단순히 세평만 얘기했다고 하는데, 세평만 얘기한 건지, 인사에 깊숙이 관여한 건지에 대해서는 녹취록 전부와 녹음파일을 전부 증거로 내겠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삼성 정보망, 공정위까지 지배?

이광익 전무는 2015년 12월20일 오전 9시37분경 장 전 사장에게 "사장님, 순환 출자 해소 관련해 BH 인민호 과장을 만나서 서류를 전달하고 설명을 했습니다. 소멸 존속의 구분에 따른 차이는 공정위 입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공정위 최초 보고도 신규가 아니라 강화였다고 합니다. 윗선에서 본 건을 검토하라고 할 경우 회사 입장이 전달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청와대가 구체적인 내용을 지시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는 했습니다. 황창식 배상"이라는 문자를 전달했다. 황씨는 김앤장 소속 변호사로 당시 삼성 측 법률대리인으로서 공정위에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삼성은 공정위에 원만한 승계 작업을 위해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현안 해결을 청탁했다는 혐의를 사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생긴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내부 계열사 지분 정리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애초 공정위는 삼성물산에 대한 삼성SDI의 500만 주, 삼성전기의 500만 주, 총 1000만 주가 처분돼야 한다고 정했다. 이 결정은 2015년 12월23일 '삼성SDI 500만 주 처분'으로 바뀌어 결재됐다.

언론, 삼성 언론플레이에 조력

주요 언론사가 삼성 관계자에게 '합병 축하' 인사를 한 정황, 삼성입장 기획기사를 함께 준비한 정황 등도 드러났다.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에서 삼성물산 합병건 동의안을 의결한 7월10일, 이 전 팀장은 장 전 사장에게 "매일경제 손아무개 편집국장이 오후 8시 홍완선과 통화했다" "'톱 나간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매일경제는 다음날인 7월11일 1면 톱 기사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국민연금 '찬성'"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전 팀장은 7월10일 동아일보 편집국 관계자가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에게 '축하한다. 최대고비를 넘겼다'는 내용의 인사를 전달했다는 내용도 장 전 사장에게 문자로 보고했다.

▲ 2015년 7월11일 매일경제 1면 ‘삼성물산·제일모직 국민연금 ‘찬성’’
▲ 2015년 7월11일 매일경제 1면 ‘삼성물산·제일모직 국민연금 ‘찬성’’

7월8일 경 황영기 회장이 장 전 사장에게 보낸 문자에는 "밖에서 삼성 돕는 사람들이 많다. 연합뉴스 이아무개 편집국장도 있다"며 "소액주주 표에 도움되는 기사를 실어달라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기획기사 조력' 정황도 확인됐다. 손병두 당시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2015년 6~7월 경 '언론을 통해 6월 초 엘리엇(삼성물산 주주인 헤지펀드사) 등에 대한 경영권 방어 제도가 필요하다는 자료를 기자들에게 제공해라' '언론과의 기획기사를 통해 저희 의견을 전달해왔다.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를 장 전 사장에게 보냈다. 손병두 전 부회장은 현 호암재단 이사장이다.

손 전 부회장은 "다음 주 화요일에 간단한 기자 세미나가 있다. 이럴 때 전경련이 목소리를 내고 삼성을 도와야할 것 아니냐"는 내용도 장 전사장에게 문자로 전달했다.

장 전 사장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손병두 부회장은 호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니, 자발적으로 우리 회사를 위해 힘써줬다"고 해명했다.

‘이재용 등 5인의 삼성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2회 공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의 심리로 1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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