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으로 혼란한 틈을 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구속에서 벗어나 기자들에게 “고생 많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이번에는 구속 100%”라던 특검도, 검찰도 그를 구속시키지 못했다. 물론 영장실질 심사는 판사의 몫이라고 하지만 검찰이 제시한 영장청구서가 가장 중요한 판단자료이기 때문에 법원 탓을 해서는 안된다.

국정농단 사태로 자신이 모신 대통령 실장은 구속 수사를 받고 있고, 대통령은 파면되고 구속됐는데, 그런 일을 막았어야 할 법률 최고 책임자, 민정수석이 불구속 수사를 받는다는 것은 상식의 배반이다. 마치 임금과 주요신하들이 내부의 칼날에 쓰러졌는데, 호위대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활보하는 모습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을까.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인 듯 하지만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않다.

▲ 직권남용·직무유기·국회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4월11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대기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직권남용·직무유기·국회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4월11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대기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면서 내놓은 이유가 무엇인가?

권순호 영장심사 부장판사는 “혐의 내용에 관해 범죄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고,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에 비추어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는 게 충분히 소명되지 않아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이유를 밝혔다.

‘범죄성립 다툼 여지’ ‘증거인멸, 도망염려’ 등의 이유로 기각시키고자 했다면 대통령도, 대통령실장도 다른 장차관들도 모두 구속영장을 기각시켰어야 했다. 논리가 궁하자 당연히 반발의 여론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사유를 면밀히 검토하고, 지금까지 수사상황을 다시 점검해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구속영장 재청구 안하고싶은 게 검찰의 뜻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비슷한 시기에 고영태씨를 긴급체포하는 색다른 카드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특검과 검찰에 여러 차례 성실히 출석했지만 느닷없이 ‘출석 불응 가능성’을 들어 그를 긴급체포한 것이다.

우 전 수석은 수사가 어렵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고 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긴급체포와 구속이었을 지 모르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심지어 어렵게 검찰에 출두한 우 전 수석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우 전 수석은 검찰 사무실에서 팔짱을 끼고 웃으면서 수사관들과 대화를 나눠 ‘황제 소환’ 얘기를 들었고 검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더욱이 지난해 7~10월에 검찰국장과 1000 차례 이상, 검찰총장과 20여 차례 통화한 것으로도 드러나 ‘셀프 수사’ 개탄도 나왔다.

▲ 2016년 11월6일 밤 9시25분 경 횡령·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우병우(왼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중앙지검에서 팔짱을 낀채 검찰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조선일보
▲ 2016년 11월6일 밤 9시25분 경 횡령·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우병우(왼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중앙지검에서 팔짱을 낀채 검찰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조선일보
민정수석이 사실상 주요 사건을 지휘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나왔지만 통화내용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 전 수석은 법정에서 여전히 “최순실의 비위는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검찰이 범죄 혐의의 중대성이나 도주와 증거 인멸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안했기 때문에 구속수사를 받아야 할 인사가 불구속 수사를 받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은 또 다시 우 전 수석에 대해 영장재재청구를 할까. 검찰의 의지가 아닌 여론으로 결정될 것이다. 대선이라는 혼란스런 정국을 틈타 적당히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도록 하는 것이 검찰조직내 우병우 라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우가 될 것이다.

항시 변하는 여론보다 더 확실한 것은 영장재재청구의 독점적 권리를 검찰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는 단단한 전통으로 확립돼 있다. 원래 검사동일체 원칙이란 아래와 같이 정의되고 있다.

“모든 검사는 검찰권의 행사에 관하여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여 피라미드형의 계층적(階層的) 조직체를 형성하여 상하복종관계로 일체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로서 활동한다. 이를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 한다. 이 원칙은 범죄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재판의 집행을 내용으로 하는 검찰권(檢察權)의 행사가 전국적으로 균형을 이루게 하여 검찰권행사(檢察權行使)의 공정을 기하려는 데 주된 이유가 있다.”[檢事同一體- 原則] (법률용어사전, 문북스)

문제는 검찰이 배타적 독점적 구조를 이루며 타조직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의 집행력을 행사하면서도 자신의 식구들에 대해서는 ‘봐주기식’으로 비판받아왔다는 점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특권이 바로 검찰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대범죄로 의심되더라도 수사를 하라(수사개시권) 혹은 수사를 중단하라(수사지휘권) 등의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다. 여기다 기소권도 독점하고 있어 검찰의 조직이 너무 비대해져 동맥경화증에 걸려버렸다. 물론 자정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검찰조직에 대한 불신은 매우 높은 편이다. 검찰개혁은 필연이다.

우 전 수석 구속 여부는 상징적인 사건일 뿐이다. 대통령 등이 모두 구속, 파면되는 징벌을 받고 있는데 가장 큰 법적 책임을 공유해야 할 민정수석이 계속 구속되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검찰내부의 우병우 라인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누가 어떤 구체적 노력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번번이 구속돼야 할 사람이 구속안되는 현실이 그 실체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2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6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2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6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촛불은 왜 들었는가.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통령 단죄하는 것으로 끝내자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바로 이런 특권, 특혜, 불공정, 몰상식을 타파하고 상식과 법치가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아닌가.

검증을 너머 네거티브 선거로 국민의 외면을 받는 사이 검찰의 고질적 내부거래는 “불구속”을 마치 일부 검찰식구에게는 “홈런”이요라는 소리로, 다수 국민은 “파울”이라고 분노하게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