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하청노조 말려죽이기'를 멈추기 위해 고가도로 위에 올랐다. 울산 현대중공업 자회사 '현대미포조선' 사상공 전영수씨(42)와 이성호씨(47)가 11일 새벽5시 현대미포조선 공장을 들어서는 길목의 성내고가도로에 올라 '하청노동자 노동권 사수'를 위한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회사가 폐업공고를 낸 후 전씨와 이씨는 구직을 위해 한 달 동안 조선소·중공업 내 40군데 하청업체 문을 두드렸다. 건조부 숙련공임에도 도장, 선행의장 등 다른 부서의 업체까지 찾아다녔다. 한 군데도 받아주지 않았다. 이력서를 내면서 "하청노조는 아니죠?"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현대중공업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정말 큰 마음 가지고 올라왔고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해볼 겁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조 블랙리스트' 표적인 전씨는 현재 본인과 같은 고통을 겪는 동료가 이씨 외에도 10명이 더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발밑엔 '블랙리스트 분쇄' '하청 노동기본권 보장' '대량해고 구조조정 중단'이 쓰인 현수막이 길게 걸려있다. 미디어오늘은 11일 오후 고공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직부장 전영수씨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 4월11일 새벽5시 울산 성내고가도로 아래 고공농성에 돌입한 전영수씨와 이성호씨. 사진=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 4월11일 새벽5시 울산 성내고가도로 아래 고공농성에 돌입한 전영수씨와 이성호씨. 사진=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현대중공업 자회사 "하청노조 조합원이냐" 검열 횡행

전씨와 이씨의 전 직장인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 '동양산업개발'은 지난 9일 폐업했다. 현대중공업 및 계열사에서는 하청업체의 '기습 폐업'이 공공연히 이뤄져 왔으나 불법 사유가 부각되면서 '한 달 전 폐업공고'가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동양산업개발도 지난 달 9일 미리 폐업 공고를 했다. 계약기간은 오는 6월까지였음에도 대표이사 건강 문제를 이유로 급하게 폐업됐다.

전체 직원 60여 명 중 타 업체로 고용승계가 되지 않은 노동자는, 개인사유로 일을 그만둔 직원 서너 명을 제외하면 고공농성자들과 김아무개씨, 오아무개씨 등 네 명밖에 없다. 모두 사내하청노조 조합원이다. 조합원이었던 오씨는 고용배제 문제가 발생하면서 노조를 탈퇴했다.

블랙리스트를 우려해 미리부터 '고용승계' 요구를 원청 측에 전달해 온 전씨는 당시 현대중공업 측 실무자로부터 '타 업체 소개해줄 테니 블랙리스트만 운운하지 말고 스스로 구직활동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 달 간 40여 군데에 이력서를 넣거나 전화연락·방문 등을 통해 구직 의사를 밝혔다. 전씨는 "현대미포조선 안에 사람 구한다는 곳은 다 가봤다"면서 "한 도장부 하청업체 관리자는 '하청노조 아니죠?'라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왜 그러시냐"고 묻는 전씨에게 그는 "굉장히 민감하다"고 답했다.

"일감 너무 많다" 했던 업체가 한 시간 뒤 "일감 없어. 오지마"

전씨는 한 달 여 간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하청노조 말려죽이기'를 겪어왔다. 3월 중순 경 울산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연결된 한 하청업체의 태도가 단적인 예였다.

▲ 노란색으로 표시된 사람은 2017년 3월28일 기준 고용승계된 직원, 흰색으로 표시된 사람은 고용승계 되지 않은 직원이다. 이들 9명 중 3명은 아예 다른 곳으로 이직했고 2명은 타업체로 이관됐다.
▲ 노란색으로 표시된 사람은 2017년 3월28일 기준 고용승계된 직원, 흰색으로 표시된 사람은 고용승계 되지 않은 직원이다. 이들 9명 중 3명은 아예 다른 곳으로 이직했고 2명은 타업체로 이관됐다.

전씨, 이씨, 김씨 등 조합원 3인은 울산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연결된 한 하청업체 총무와 면담을 했다. 총무는 '업체에 일이 굉장히 많아 작업시간도 긴데 다들 일할 수 있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전씨 등은 "오래 일할 수 있고, 자녀 학자금 문제 등으로 근속이 중요해서 문제없다"고 답했다. 총무는 '좋다. 필요한 서류 준비만해서 오라'고 한 뒤 이들 이력서를 받아갔다.

총무는 한 시간 후 갑자기 전화를 걸어 '갑자기 일감이 줄어서 고용을 못하겠다'고 전달했다. 조금 전만 해도 일감이 많아 잔업이 힘들 것이라 강조했던 업체였다. 전씨는 "하청노조 조합원이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고용을 거부하는 업체들로부터 "일감이 없다" "조선소가 요새 힘들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고 했다. 전씨의 전 회사 물량팀(하청업체 재하청 계약직) 37명은 대부분 타 업체에 재취업했다. 조합원 3인을 제외한 '본공(사내하청업체 상용직·기간제)' 20여 명도 대부분 타 업체로 고용이 승계됐다. 전씨는 "일이 없다면서 물량팀은 왜 받느냐"는 항의에 제대로 된 답을 하는 업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2016년 단식·2017년 고공농성, 사내하청 낭떠러지로 내모나

전씨가 겪고 있는 표적 탄압은 사내하청노조 조합원들이 겪어 온 무수한 사례 중 하나다. '위장폐업' '고용배제' 등은 2003년 8월24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설립신고가 접수되면서부터 반복돼왔다. 구조조정이 시작된 2014년 하반기엔 15개, 2015년엔 57개 하청업체가 폐업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태산테크의 최도섭씨와 최성광씨도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지난해 8월 단식농성까지 감행한 적이 있다.

당시 최성광씨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모아놓은 게 있습니까. 다들 20년 돈 벌어도 집 하나 사놓는 게 전부지 대책이 있습니까. 여기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택시운전을 할 겁니까 뭘 할 겁니까”라면서“조선소 뿐만 아니라 철강, 석유 등지에도 노조 조합원 블랙리스트가 다 뿌려져 있을 것”이라고 답답함을 표했다.

▲ 2015년 7월22일 현대중공업 단지 내 대조립1부 공장 옆 농성장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인 최도섭씨(왼쪽)와 최성광씨가 앉아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2015년 7월22일 현대중공업 단지 내 대조립1부 공장 옆 농성장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인 최도섭씨(왼쪽)와 최성광씨가 앉아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최성광씨와 최도섭씨는 아직 복직되지 못했다. '표적 해고'된 사내하청노동자는 이들을 포함해 현대중공업에만 8명, 현대미포조선에만 4명이다. 사내하청노조는 이들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250여 일 동안 현대중공업 정문 앞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청노조는 이 같은 노무관리 뒤엔 원청기업이자 모회사인 현대중공업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전씨는 "현대중공업은 '미포조선 사람들을 우리가 왜 책임지느냐'고 하고 있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현대중공업이 미포조선 등 자회사를 다 같이 노무관리 하는 건 옛날부터 현장 노동자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씨는 '큰 집 따라간다'는 공장 내 '관용어구'를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은 연말 성과급, 임금단체협상 등의 사안이 있을 때 현대중공업에서 같은 사안이 결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씨는 업체 관계자들이 곧잘 '큰 집 따라가잖아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하청업체'의 의사결정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씨와 이씨가 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하청노동자 대량해고 구조조정 중단 △노조활동 보장, 블랙리스트 폐지 △총 12명 하청조합원 고용승계 복직이다.

전씨는 "대량해고 저지, 노조활동 보장, 블랙리스트 철폐, 이건 대한민국 사업장 어디든 공공연히 자행돼 왔다"며 "조금이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올랐다"고 말했다.

현재 사내하청노조 조직부장인 전씨는 STX조선, 현대미포조선 6개 업체에서 11년 간 사상공으로 근무한 조선소 노동자다. 하청노조 대의원인 이씨는 현대중공업 및 현대미포조선에서만 14년 간 근무한 사상공 노동자다.

지난해 여름 최도섭씨와 최성광씨가 노숙을 한 농성장에는 “노조 가입, 헌법에 보장된 권리”, “태산테크 폐업 원청이 책임져라”, “폐업 침묵하면 다 죽습니다” 등이 적힌 피켓이 진열돼 있다. 1년 후엔 똑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고공에 걸리게 됐다. 지난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단식까지 몰고 갔던 현대중공업은 올해는 이들을 고공으로 올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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