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전 청와대 비서관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한) 상부 결정에 대해 전력을 다해 저항하지 못한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관은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제1회 공판기일에서 이 같이 말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몸통 대부분이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나온 ‘소수의견’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소영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의 법률대리인 손경식 변호사는 6일 공판 과정에서 “이 사건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도 일관되게 유지됐던 문화·예술정책 기조 ‘지원은 하나 간섭은 안한다’가 현저히 무너졌음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이 사건이 헌법과 법률에 비춰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 지(를 밝혀내는 것)가 재판이 열리는 목적이다. 피고인 김소영은 이 목적의 필요성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서 절차에 협조하고 객관적 진실 발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를 받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를 받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김 전 비서관은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통틀어 유일하게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표적 지원 배제 행위를 범죄로 인정하고 있다.

손 변호사는 변호인 모두발언에서 “어떤 정권도 자기 입장에 맞춰 특정 단체나 개인에 지원을 적게 하거나 많이 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은)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했다”면서 “심각해진 변곡점을 보면 2014년 4월경이다. ‘민간단체보조금 TF’가 구성되고 관련 문건이 작성된 건 공소장으로도 명백하다”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특히 김 전 비서관이 “TF 문건(지원배제 명단 중 하나)의 130명에 대해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 비판, 문재인 지지자,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은 본인이 보기에도 부끄러워 이 사유를 삭제하고 이름만 문체부에 갖다줬다”면서 “그것이 ‘우리 법 몇 조 몇 항을 위배한다’ 까진 생각하지 못했을지언정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고 부끄러워서 차마 그대로 전달 못하고 사유를 지워서 보내줬다”고 밝혔다.

김 전 비서관은 피고인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떨리는 목소리로 “상부 결정에 대해 전력을 다해 저항하지 못한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관은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이 누구에게 있었는지에 따라 법적 책임을 가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 변호사는 “다만 피고인이 왜 이 자리에 섰을까. 특검 공소요지 발언 자료를 보면, 정무수석실 산하에 국민소통 비서관 2명, 김상률 교문수석 밑에 피고인 비서관이 있는 구조조직도가 제시됐다”며 “김소영 비서관이 자신의 밑에 있는 선임행정관, 정부부처 국장들을 통솔·지휘·감독하고 보고받는 지위에 있었는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이는 특검의 방대한 수사에 상세히 규명돼있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피고인 3인이 이 사건은 법리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에 선 반면 손 변호사는 “블랙리스트 관련해서는 사실관계가 있었음이 넉넉히 추단된다고 판단한다”면서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본다면 사실관계와 행위가 있었냐, 그것이 위법하냐, 위법하면 누가 책임져야 하냐는 단계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변호사는 또한 특검이 정치적 기소·수사에 임했다는 김기춘 전 실장 측 변호인 입장에 대해 “특검도 대한민국 헌법, 형법, 형사소송법에 입각해 공소를 제기했고, 여기서도 헌법, 법률에 따라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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