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2009년 3월24일 참모들과 대화에서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 “‘노동의 유연화, 그것도 우린 할 수 있어’하고 놔 버린 게 진보주의의 제일 아픈 곳”, 같은달 17일엔 “빈부 격차의 원인은 노동의 유연화가 굉장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등 수차례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참여정부의 실책을 반성했다.

참여정부에서 두 차례 민정수석비서관, 한 차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선 공약 중 노동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민주정부 3기는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 2007년 1월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 2007년 1월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노동회의소, 제2의 노사정위원회?

참여정부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선 비정규직 전면 확대로 노동의 협상력을 약화했던 것을 복원해야 한다. 문재인 캠프가 검토하고 있는 해법 중 하나는 노동회의소 설치다.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를 위해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위원회’로 개칭하겠다는 지난 대선 공약을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회의소는 모든 노동자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 사용자를 대변하는 대한상공회의소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는 법정상설기구다. 노조 가입률이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비조직 노동자들의 법정노동단체를 구성하겠다는 발상이다. 1918년 노동회의소를 설립한 오스트리아는 노동회의소와 노동조합이 노동자 측, 경제회의소와 농업회의소가 사용자 측으로 국가 주요 현안에 참여하는 노사정 사회협약모델을 따른다. 독일은 브레멘 등 일부지역에서 노동회의소를 운영한다.

이는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는 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제안했다. 문재인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지난달 토론회에서 이호근 전북대 교수는 “노동회의소 총회와 대의원 대표자 선출권을 실질적으로 노조가 갖고 있어 노조와 노동회의소의 관계가 긴밀하다”며 노조 조직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선 정부가 협상력이 강한 사측을 대변하지 않아야 하고, 타협을 할 때 서둘러선 안 된다. 기존 노사정위원회가 한계를 보인 건 노조 조직률이 낮아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참여할수록 뭔가를 더 빼앗기겠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실제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이 마련됐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 노사정 대화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을 밀어붙인 사건이다. 끝내 한국노총이 뒤통수를 맞고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10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해외방문 때 재계 총수들을 데리고 다니고 ‘노’는 무시한다”며 “이런 편향된 생각이 노사관계를 망쳤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이 바뀌지 않으니까 ‘사’를 못 바꾸고 ‘노’도 못 바꿨다”며 “경제위기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니까 노사정위원회를 이용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국과 같이 노사의 힘이 불균형한 곳에선 정부가 노측에 무게를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 2004년 6월 노무현 정부는 3개월짜리 임시기구인 노사정지도자 회의를 만들었다. 노동계를 하나로 묶을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대표를 추가해 5자회의를 할지부터 논란이 일었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은 논의도 못했다. 이듬해 11월30일 국회는 비정규직법안을 통과시켰고 2007년 7월부터 300인이상 사업장에 적용됐다. 기업민원을 정부가 수행하기 이전에 거치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모델을 보면 주요 노조간부들이 노동회의소에 참여한다. 노조 조직률이 높고 노조협상력이 강한 상황에서 노동회의소는 노조와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노총은 “노조와 노동회의소가 상호보완적 역할을 한다”며 환영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실제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노사협의회가 사용자측의 의사를 관철하는 어용기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논란이 있는 가운데 문 후보의 의지는 노조 가입을 방해하고 있는 노동3권을 얼마나 보장하는지로 판단할 수 있다.

노조가입률 높일 실질적인 계획은?

노동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만들 권리를 갖는다는 단결권, 개인이 아니라 함께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단체교섭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경제적 손실을 발생할 권리를 갖는다는 단체행동권 등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게 노조가입률을 실질적으로 높이고 노동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 노사정 합의 폐기를 요구하며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등 관련단체 참가자들이 2015년 9월19일 오후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을 출발해 도심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노사정 합의 폐기를 요구하며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등 관련단체 참가자들이 2015년 9월19일 오후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을 출발해 도심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민주노총은 노동회의소 설치에 대해 “편법으로는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노동3권 보장문제를 우회하고는 노동문제를 풀 수 없다는 뜻이다.

노동권 특히 파업권의 대표적인 장애물은 ‘필수유지업무제’다. 2008년 정부는 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고 이 제도를 도입했다. 파업참가자의 50%까지 외부 대체인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파업효과를 줄이는 제도다. 필수공익업무의 범위를 줄이고, 필수유지업무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국제기구는 교사와 공무원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하는 노동법 개정을 요구했고, 국제노동기구는 한국 정부에 소방관과 교도관들에게도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것을 수차례 권고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이에 대한 구체적 비전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동기본권과 노사관계 관련 공약은 아예 발표하지 않았다. 특수고용직에 대해서만 노동3권 보장을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를 환영하면서 “입법 이전에라도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특수고용직을) 노동자로 보고 노조설립 신고 수리, 산재보험 부과 등 행정조치가 추가·보완돼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중소기업임금 지원의 전제조건

양극화의 또 다른 원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다. 현재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약 60%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문 후보는 ‘중소기업 임금을 대기업의 80% 수준까지 올리겠다’는 이른바 공정임금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부작용도 예상된다. 정부에서 대기업의 80%까지 채워준다면 중소기업은 임금을 물가상승률에 비례해 올리지 않거나 심지어 깎을 가능성이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캠프가 이런 문제를 인지했지만 아직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재벌의 경제력 제한 등 불공정한 경쟁을 막는 것과 중소기업에 영향이 큰 최저임금 1만원과 노동시간 줄이기 등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열악한 일자리를 개선하기 위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 후보의 재벌개혁 정책은 구체적인 편이다. 대주주 전횡 견제를 위해 집중투표제와 전자·서면 투표 의무화, 지주회사 요건 강화, 10대 재벌로 한정했지만 노동자 추천 이사도입, 재벌 업종확대 제한, 금산분리 강화 등을 내놓았다. 다만 초과이윤 사회환수나 법인세 인상 등 재벌의 사회경제적 책임을 묻는 정책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횡포에 맞서 스스로 보호할 법적 장치에 대한 고민이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축소 의지다. 문 후보는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엔 동의했다. 하지만 인상 목표와 시기가 구체적이지 않다.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임기 말인 2022년까지 단계적 인상을 하겠다고 밝혔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2020년까지 매년 15%이상의 구체적 인상안을 제시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역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과 함께 최저임금 하한선 법제화를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정임금제를 시행할 경우 중소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성장 정책포럼'에 참석해 '일자리 국민성장의 맥박'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성장 정책포럼'에 참석해 '일자리 국민성장의 맥박'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노동시간 축소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 후보는 주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법정노동시간을 준수해 5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를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주장했지만 근로기준법 제50조에 따른 ‘1주간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수준을 넘지 못한 정책이다. 현재 심상정 후보만이 임기 내 ‘주 35시간 노동’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 양질의 일자리 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지난 대선공약과 판박이

현재까지 발표된 문 후보의 대선공약은 2012년 대선공약과 거의 비슷하다. 위에서 지적한 노동회의소 공약은 기존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위원회’ 개칭하겠다는 지난 대선 공약을 수정한 것이다.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최저임금 현실화,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하며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설치 등은 지난 대선과 같은 공약이다.

문 후보의 지난 대선 중소기업 지원공약에는 중견기업 4000개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국가 소유 R&D 성과의 중소기업 무료 이전 등이 있었다.

지난 대선 때 임기 내 공공부문 일자리 40만개 확대와 노동시간 주 52시간 준수로 70만개 일자리 창출하겠다고 한 약속은 이번 대선 때 각각 81만개, 50만개로 일자리 수만 수정했다.

지난 대선 때 발표한 IT·융합기술 등 창조산업에서 일자리 50만개, 청년 벤처 1만개 양성 및 모태펀드 2조원 조성 등과 비슷한 분야의 공약은 4차 산업혁명으로 신성장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이다. 임기 내 전 산업 비정규직의 절반의 정규직 전환과 공공부문 상시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역시 이번 대선 공약과 내용이 거의 같다.

준비된 대통령?

문 후보는 아직 노동공약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양대노총 정책질의에 제때 응답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교사·공무원 노동권을 일부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이 분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있었다. 문재인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인 송영길 의원이 지난 2월 초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공약에 대해 “일자리 메시지가 잘못 나갔다”며 “국가 예산과 세금으로 나눠주는 것을 누가 못하느냐”고 부인했다. 당시 문 후보는 “후보는 접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 후보는 해당 공약 수정 가능성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 이후 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도 구체적인 예산과 실천계획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개혁은 가능한가?

문 후보에겐 시대교체·적폐청산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라는 과제가 놓였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명확한 지적과 대안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법으로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끌어내리는 데 집중했다. 온도차는 있지만 문 후보의 해법에도 우려의 시선이 있다.

문 후보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제시하며 이를 경제민주화라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도 제안했던 지역별 노사민정 협의 활성화 공약이다. 광주시가 주도한 이 모델 역시 박근혜 정부의 진단처럼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임금 전략이 노동시장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본다. 원인진단이 같으면 해결책도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노사정이 모여 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되 임금을 1차 협력업체 수준으로 낮춘 뒤 3교대제나 탄력근무제 등을 도입해 노동 유연성을 높이면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광주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낮아진 임금을 ‘적정임금’으로 부르고 있다. 노동의 하향평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4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사진=문재인 캠프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4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사진=문재인 캠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경우 서민들이 바라던 개혁은 가능할까?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는 관료주의에 포획됐나’라는 주제의 대화에서 노동정책 실패도 관료주의에 포획된 연장선으로 다뤘다. 노 전 대통령은 노동부 장관이 주로 학자·노동계 출신이었고 노동부가 관료조직에서 힘이 조금 밀려 자신이 힘을 실어줬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랜드 사건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아웃소싱을 불법용역으로 볼 수 없느냐’고 했지만 아무도 이에 동의해 주지 않은 사실을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은 “관료들이 법인세 감세안을 가지고 와 밀어붙이는데 청와대에서도 국회에서도 아무도 방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경제정책을 제어할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점을 관료주의에 휘둘린 핵심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지금 생각해보면 색연필 들고 쫙 그어버렸어야 되는 건데”라며 아쉬워했다. 좀 더 과감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 참고문헌

노무현, 진보의 미래
민주노총, 대선 후보 공약 비교 분석
문재인 후보 18대 대선 정책종합발표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회의소(AK) 조직과 운영실태-독일 오스트리아 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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