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8일 갑작스레 중앙일보·JTBC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홍석현 회장의 행보가 최근 알려진 것처럼 대권출마와는 전혀 관계없는 결정일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홍 전 회장과 특수 관계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을 전후로 홍 전 회장의 누나인 홍라희(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를 비롯한 삼성家에서 중앙일보·JTBC보도에 서운함을 드러냈고, 홍 회장이 가족 간 불화를 수습하고자 책임지는 모양새를 냈다는 내용이다.

시사저널은 이번 주 발행된 최신호에서 “탄핵 정국 초기 삼성 주변에서는 중앙일보·JTBC쪽의 보도 공세에 분노한 이재용 부회장이 외가에 서운함을 느낀 나머지 모친인 홍라희 전 관장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 이런 상황에서 22년간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을 이끌어왔던 홍라희 전 관장이 3월6일 돌연 사퇴했다. 이틀 뒤인 8일에는 홍 전 관장 여동생인 홍라영 총괄부관장마저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시사저널은 “두 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 소속이며 이사장은 이재용이다. 구도 상으로 아들이 어머니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라고 썼다. 실제 이재용이 사퇴를 종용했다기보다 홍라희가 스스로 물러나며 남동생이 소유한 언론사 보도에 대한 아들의 서운함을 달래는 한편, 남동생에게 간접적인 압력을 넣기 위한 행동에 나섰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2월17일 구속되며 홍석현 회장과 삼성은 매우 불편한 관계로 치달았을 가능성이 높다.

▲ 1월2일부터 1월25일까지 16일간 월~목 '뉴스룸'에서 다룬 삼성 관련 아이템 방송화면 갈무리.
▲ 1월2일부터 1월25일까지 16일간 월~목 '뉴스룸'에서 다룬 삼성 관련 아이템 방송화면 갈무리.
삼성은 충분히 홍석현 회장에게 서운함을 가질 만 했다. JTBC는 2013년 삼성 무노조 전략 문건을 단독보도하고 삼성직업병 피해자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인터뷰했으며 메르스사태 당시 강남삼성병원의 대응문제를 지적했다. 또 지난해 말 국정조사 당시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불성실한 답변을 강하게 비판했다. JTBC는 12월8일자 보도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와 관계없다는 이 부회장 발언에 대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도했으며 “이재용 부회장은 대부분의 질문에 ‘잘못했다, 열심히 하겠다, 송구스럽다’로 답해 동문서답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손석희 사장은 이날 이재용 부회장의 답변을 가리켜 “최순실씨 딸 정유라 특혜 지원 의혹에 대해선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고 부인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청와대 특혜 의혹 역시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으며 의혹만 키웠다”고 비판했다. JTBC는 이날 국정조사에서 “삼성이 자사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했을 때는 고작 500만원을 보상하더니 정유라 등 재단에는 수백 억 원을 지원했다는 비판도 나왔다”고도 보도했다. 이날 ‘뉴스룸’ 시청률은 10%(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기준)를 넘기며 지상파 메인뉴스를 압도했고,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십·수백만 촛불은 ‘박근혜 퇴진’과 함께 ‘이재용 구속’을 강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삼성은 홍석현 회장과 갈등설에 대해 공식블로그를 통해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일축했으나 현실은 달랐던 것 같다. 중앙일보 고위직 출신 인사는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이 어머니에게 ‘외삼촌을 좀 말려 달라’, ‘어쩌자고 문제를 키우는거냐’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 사정에 밝은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도 “삼성 안에서는 2016년 10월 이후 JTBC가 삼성-최순실씨 간 특혜거래를 계속 보도할 때부터 이재용 부회장이 홍석현 회장 등 외가에 대해 크게 서운해 한 것으로 알려진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같은 보도에 따르면 이재용 구속을 전후로 ‘이재용-홍라희’ 갈등과 ‘홍라희-홍석현’ 갈등, 두 개의 층위에서 갈등이 고조됐고, 그 결과 홍라희-홍석현의 사퇴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홍석현 중앙일보·JTBC 전 회장. ⓒ중앙일보
▲ 홍석현 중앙일보·JTBC 전 회장.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3월18일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홍라희가 미술관장직을 사퇴한지 12일 뒤의 일이었다. 익명의 중앙일보 관계자는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홍석현 사퇴 2주 전부터 삼성家에서 중앙일보 쪽을 향해 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당시 삼성에서는 이 부회장이 법적 책임을 진만큼,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온 중앙일보도 성의 있는 행동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으며 홍 회장 사퇴는 그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 주장했다.

즉 아들이 구속되자 홍라희가 직을 내려놓았고, 홍라희를 비롯해 삼성과의 관계파탄을 막기 위해 홍석현이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을 내쫓는 대신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홍석현 회장은 3월19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에서 홍라희가 이재용 부회장 구속 후 홍석현과 함께 삼성의 실권을 쥘 것이란 일부 보도에 대해 “사람 심리를 몰라서 그러는데 아들은 후계자이기 때문에 더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이 회장도 홍 여사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끔찍하다”고 말한 뒤 “그런데 나는 왜 등장시켰는지, 유명세라고 봐야겠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당시 인터뷰에서 이재용 부회장 구속 건을 두고 “피가 통한 조카인데 당연히 가슴이 아프지. (청와대의) 강요가 됐건 아니건 거절하기는 한국 문화와,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 등 여태까지 풍토에서 힘들지 않았을까”라며 조카를 적극적으로 감쌌다. 이 같은 메시지는 홍라희를 비롯한 삼성家를 향한 화해의 메시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맥락에서 비춰보면 홍석현 대선출마설은 그간 그의 정치적 행보를 최근의 사퇴와 엮어 확대 해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홍석현 사퇴는 현재의 중앙일보·JTBC 보도논조를 지키면서 동시에 삼성과의 관계회복에 나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소속 고위관계자는 중앙일보와 JTBC가 정운찬의 발언 등 홍석현 출마설 관련 보도를 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홍석현 회장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거 없는 주장을 보도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홍석현 회장은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대선출마설에 대해 “평소 나라 걱정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까 대선 출마설까지 나온 게 아닐까”라고 답하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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