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 "최순실은 나쁘지만 그래도 문재인은 안돼"

B씨 "맞아요.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불안해서 어떻게 살아. 문재인이 미국하고 등지면 안보 책임질거야!"

A씨 "그러니까. 그래도 박근혜가 안보는 잘했잖아"

B씨 "전작권도 환수 받으면 안되지. 미국한테 밉보이면 어떻게"

A씨 "사드도 빨리 배치해야지. 핵무장도 해야돼. 박근혜가 최순실한테 놀아났지만 그래도 안보는 튼튼했어"

인천 부평의 한 식당에서 60대 A씨와 B씨가 소주를 마시며 나눈 대화 내용이다. 둘의 대화는 보수 정당이 줄곧 제기한 문재인 등 야권 후보 안보 불안 프레임이 어떻게 먹혀들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보가 삐걱거리고, 안보가 불안하면 경제가 무너지고 삶이 파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보만큼은 박근혜 정부를 인정해야 하고,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는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문재인 안보 불안 프레임'의 배경에는 박근혜 정권이 안보정책에선 민주화 정부보다 강했고 잘했다는 평가가 자리잡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이 나고 사법처리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박근혜는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안보의 화신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박근혜가 안보는 잘했어'라는 평가는 정말 맞는 것일까. 박근혜 정부는 안보를 강화해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줬을까.

몇 가지 사례만 들어도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안보 정책은 완전히 실패로 드러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A씨와 B씨의 대화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박근혜는 2013년 2월 취임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가치가 안보에 있음을 강조했다. 박씨는 "우리 앞에 지금 글로벌 경제위기와 북한의 핵무장 위협과 같은 안보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놓은 정책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선언 등이다.

대표적인 안보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튼튼한 안보를 내세워 남북 간 신뢰를 형성해나간다는 그럴 듯한 전략이었지만 실상은 선핵폐기론에 가까웠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도 심지어 감지하지도 못하면서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월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은 북한 핵 위협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분석한 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1월 6일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며 4차 핵실험을 단행했지만 정부는 핵실험 징후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김종대 단장은 북한 풍계리 지하 핵실험 갱도가 매우 깊어져 외부에서 탐지하기 어려운 내부공간을 확보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전 감시망 체계만으로도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고 장담했고, 결국 북이 핵실험을 단행하고서야 뒤늦게 이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서 내놓은 대책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배치, 대북전단살포 허용 등이다.

지난해 9월 박근혜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의 핵개발과 관련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다섯 번의 북한 핵실험 중 핵 능력이 고도화 된 네 번의 핵실험은 이명박 정부와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것"이라며 "핵은 동결이 우선이고 멈추게 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할리 없고 대화가 절대 불가능 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위협에 놓인 국민의 생명을 생각한다면 대화를 통해 먼저 동결하자고 하는 게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북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된 시기를 보면 남북 대화가 단절된 때인데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남북정책이 파탄나면서 북의 핵실험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보수진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대북지원금을 줘서 북한이 핵개발 자금으로 썼다는 논리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을 뿐 정작 박근혜 정부 하에서 북한의 핵실험이 이뤄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일각에서 보수정부 무능론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핵무기 개발 자금줄을 끊겠다며 개성공단을 폐쇄시켰지만 곧바로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이는 임금(1억 달러)이 중국 대외무역으로 벌어들이는 자본(80억 달러)의 80분의 1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나왔다.

보수 지지층은 박근혜 정부가 북에 강력히 맞서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실상을 보면 2013년 이후 북의 핵무장을 막지도 못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도 없어 북핵 폐기 노선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말로만 "확고한 안보태세"를 강조했을 뿐 한반도 전쟁 위기를 몰아간 것도 박근혜 정부였다.

지난 2015년 8월 국민들은 외출을 자제하며 뉴스를 지켜봐야했다. 당시 비무장지대에서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이에 반발해 북은 서부전선에 포격을 가하고, 정부도 휴전선 비무장지대 내 북측 지역에 자주포를 발사했다. 

북은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48시간 안에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타격하겠다고 밝혀 군사 충돌 직전까지 갔다. 겨우 합의를 봤지만 다음해 1월 북은 수소폭탄 시험을 단행했다. 확고한 안보태세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북 응징 대책으로 일각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됐던 핵무장론도 허구에 가깝다.

핵무장론은 지난해 9월 서울신문이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청와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전술핵을 재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핵무장론은 전혀 현실성도 없고 전작권 환수문제와 모순된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 여론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원유철 의원은 "핵무장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대한민국과 국민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핵무장론을 본격 주장하기 시작했다. 원 의원은 ‘핵유철’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핵무장론을 적극 주장했고 대선 후보까지 나왔다.

하지만 핵무장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정된 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르면 비군사적 목적의 독자적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는 금지돼 있다. 독자적 핵무장을 하게 되면 오히려 미국의 제재가 예상되고 핵우산을 포기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전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 노선이 바뀌지 않았는데 북한에 핵폐기를 요구하면서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

만약 핵무장을 하게 되면 북한의 핵무장력을 강화시키는 명분을 제공하고 미국도 대북 군사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쟁을 막는 게 아니라 전쟁을 가속화시키는 게 핵무장론이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적 핵무장은 불가능하고 실효성도 없는 상황이다. 핵무장 뒤 실제 위협을 갖기 위해선 미국에 넘어가 있는 전시작전권 환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근혜는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때 "전시작전통제권을 예정대로 전환받겠다"고 공약했지만 공언에 그쳤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겠다고 노무현 정부가 2012년 약속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 재검토를 지시했고, 박근혜 정부는 전작권을 2020년대 중반으로 연기하기로 미국 측과 합의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5년 8월 21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3군 사령부를 방문,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5년 8월 21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3군 사령부를 방문,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전시작전권 환수를 공약한 뒤 파기했는데 보수층은 핵무장론을 주장하면서 핵의 위협을 가능케하는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면 안된다는 모순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안보 정책에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다. 최순실 자택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청와대 문건만 119건이다. 이 가운데 30건은 개발이익을 볼 수 있는 부동산 문건을 포함해 대통령 주간 일정과 국정원장 등 고위직 인선,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한 3급 비밀 등이 포함돼 있다.

사인(私人)인 최순실에게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 문건이 넘어간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근혜 정부의 안보는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박근혜 정부 초기 이미 이 같은 상황을 예견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지난 2013년 5월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현 정부의 정책 결정이 공적인 과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적 개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해당 부처의 실무적 의견이 중시되지 않고 부처 간 협의와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다 불쑥 대통령이 개입해서 결정을 내린다. 혼선이 불가피하고 해당 부처는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정부 안의 관료들도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을 신뢰가 없는 상대가 믿을 수 있을까.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때 스스로 신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한반도평화포럼, 우리사회연구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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