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채널네트워크)은 여전히 생소하다. “MCM 가방 짝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의미가 모바일 콘텐츠 전반으로 확대되고,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수익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한 행사에서 “MCN 금이냐 꽝이냐”는 주제로 대담을 연 이유다. 그럼에도 척박한 시장을 개척하는 사업자와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MCN의 콘텐츠·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고민과 노하우를 듣는다. (관련기사 모음)

“다 큰 성인이 애도 아니고 장난감을 갖고 노냐.” 한때 제룡(안은찬)씨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건프라’(건담프라모델) 조립이라는 취미 때문이다. 키덜트가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게 된 현재, 그는 국내에서 ‘건프라 리뷰방송’을 진행하는 전무후무한 크리에이터가 됐다.

음식을 먹고, 화장을 하고, 어린이 장난감을 보여주고. MCN 시장이 규모가 커지고 성공한 콘텐츠의 ‘룰’이 생기면서 오히려 비슷비슷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제룡의 콘텐츠는 돋보인다. 그를 지난 9일 오전 홍대 다이아TV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 제룡씨와 그가 최근 조립한 프라모델. 사진=금준경 기자.
▲ 제룡씨와 그가 최근 조립한 프라모델. 사진=금준경 기자.


건프라샵 아르바이트에서 크리에이터까지

“처음에는 매장에서 건프라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건프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직접 조립하고 전시까지 했다. 이런 알바생은 흔하지 않다보니 사장님이 좋아했다.” 당시 제룡씨는 취미삼아 ‘마비노기’ 인터넷 게임방송도 진행하고 있었다. 그를 눈여겨 본 한 단골고객이 “사업을 같이 시작해보자”며 건프라 방송을 제안했다.

단골은 2013년 취미전문 콘텐츠회사 원티비넷을 설립했고, 제룡은 대표 크리에이터가 됐다. 이때 개설한 ‘건담홀릭’채널에 지금까지 4000여개의 동영상을 올렸고 구독자는 7만5000명에 달한다. 그의 닉네임인 ‘제룡’은 한 카드게임에 나오는 ‘혼돈제룡’카드에서 따 왔다. 그에 따르면 “궁극의, 최강의 카드”다.

제룡씨는 어릴 때부터 모형 조립을 좋아했다. “처음부터 건담을 만들었던 건 아니다. 어릴 때는 ‘미니카’가 유행이었다. 그때 조립을 처음 시작해 내가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흥분된다는 걸 알았다. 7살 때 문방구에서 건프라를 처음 보면서 빠져들게 됐다. 직접 잡지까지 사볼 정도였다. 중고등학교 때도 쉬지 않고 건프라를 계속 조립했다.” 어머니가 말리지 않았냐고 묻자 “오히려 어머니가 지지해주셨다.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되 사고만 치지 말라는 주의였다”고 제룡씨는 말했다.

▲ 제룡씨가 최근 조립한 프라모델. 사진=금준경 기자.
▲ 제룡씨가 최근 조립한 프라모델. 사진=금준경 기자.

건담의 매력은 무엇일까. 수십종류에 달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일본에서 유명하다. 선악구도가 아니라 전쟁과 이념갈등 문제를 만화에 녹였다는 점이 독특하고, 로봇도 실제 전쟁무기처럼 현실적으로 구동돼 ‘리얼로봇’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접한 이 같은 설정의 애니메이션에 빠져 들었다.탱크나 헬기 등 밀리터리 콘셉트의 모형은 세세하고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반면 건프라는 본드 없이 조립이 가능한 점도 좋았다.

제룡씨는 21년째 건프라를 만들고 있고 그 사이 사회의 시선이 변화하고 있다. “요즘은 ‘키덜트’라고 부른다. 이 말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과거에는 ‘히키코모리’나 ‘방구석 폐인’이미지의 ‘오타쿠’였는데 지금은 고급 취미로 인식하는 것이다.” 제룡씨의 지적이다.

그는 ‘취미’가 ‘직업’이 된 독특한 경우다. 유튜버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케이스다. 친구들에게 그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룡씨는 “취미도 일이 되면 힘들다”고 답했다. “취미는 여가시간을 보내는 수단인데, 직업이 되면 매일 꾸준한 양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 사무실로 향한다. 점심 전까지는 아이디어를 정하고 촬영준비를 끝낸다. 오후에는 촬영과 편집, 업로드, 독자 반응 리뷰가 이어진다. 주말에는 강남, 용산 등 각지에 프라모델 시장조사를 하러 다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조립을 해야 한다. “특히 조립이 고된 일이다. 완성까지 2~3일 걸리는 프라모델도 있다. 기체 조립하는 데 하루, 300여개에 달하는 습식 스티커 붙이는 데 하루가 또 걸린다. 먹선(모형에서 입체감을 주기위해 검은선을 칠하는 작업)도 넣고 보강작업도 해야 한다.”

▲ 크리에이터 제룡. 사진=금준경 기자.
▲ 크리에이터 제룡. 사진=금준경 기자.

제룡씨는 “그런데 정작 다른 일을 해보면 건프라를 만드는 것만큼 재미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힘들지만 보람이 남다르다는 의미다. 그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를 남들에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고 자부심도 든다”면서 “크리에이터가 직업이 될 수 있냐는 의문이 있지만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최상급 인기 채널에 비하면 많이 못 벌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없을 정도다. 그들에게 밀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남들이 ‘사진’리뷰할 때 ‘동영상’에 도전

“가슴부분이 좀 심심한 디자인입니다.” “문제는 이게 조금 헐거워요. 고관절을 조립을 해서 끼우잖아요. 끼울 때 축이 틀어지면서 부러질 수가 있습니다. 저도 좀 위험했습니다.”

제룡의 간판 콘텐츠는 ‘건프라 리뷰’다. 신제품이나 화제의 제품을 구입해 직접 조립을 하고 20여분 동안 리뷰를 한다. 외형을 설명하고, 조립할 때 유의사항을 알려주고 관절이나 무기는 세세하게 어떻게 움직이는지, 포즈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제룡씨는 “리뷰에 협찬을 받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주관적인 내 시선이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이외의 입김을 차단하는 거다. 잘 부러지거나 색이 이상한 경우가 분명 있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리뷰의 신뢰성도 올라간다.”

그동안의 건프라 리뷰는 ‘사진’ 콘텐츠가 일반적이었다. 제룡씨는 “사진은 프라모델의 디테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움직여봐야만 알 수 있는 건프라의 관절, 변신, 무기사용 같은 건 사진리뷰로는 이해할 수 없다. 조립할 때 헷갈리기도 한다. 이 점을 영상이 채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제룡의 프라모델 리뷰 '프리덤 건담 2.0'편.
▲ 제룡의 프라모델 리뷰 '프리덤 건담 2.0'편.

“지나가다 영상 봤는데 멋있어서 저도 샀어요.” 건담홀릭의 주요 타깃은 ‘초보’다. 건프라가 인기를 끌면서 ‘입문’은 하고 싶은데 어려워 보여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채널을 만들면서 중점으로 다루겠다고 생각한 게 초보자들이 따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프라모델 고수들은 매뉴얼에 없는 도색을 하거나 변형을 주는 ‘커스터마이징’을 많이 하지만 제룡씨는 대부분 정석대로 조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콘텐츠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신규유입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보자들이 쉽고 가볍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자 피드백 반영, ‘포즈잡기’ 성공

“생각보다 포즈를 잡는 데 힘겨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제룡씨가 리뷰 영상 외에 별도로 ‘포즈잡는 영상’을 만든 이유다. “이상하게 포장지에 나온 포즈는 멋진데, 내가 만들어보니 엉거주춤하다”는 독자 반응이 많았다. ‘건프라 멋있게 세우는 방법’이나 ‘도전 액션포즈’같은 콘텐츠도 있다.

핵심 콘텐츠는 여전히 ‘리뷰’지만 다양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탑5’ ‘기체정보’ ‘건담용어 알아보기’ ‘건프라 추천’ 등이 있다. 제룡의 ‘탑5’는 랭킹쇼 형식을 접목했다. 주목할만한 신제품 랭킹을 만들거나 ‘색깔이 이상한’ 제품 순위를 만드는 식이다. 최근에는 ‘신제품 소개’를 생방송으로 선보이고 있고, ‘가을과 어울리는 건프라’ ‘여름바다처럼 푸른색의 건프라’ 등 다양한 콘셉트의 소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실험적인 콘텐츠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제룡이 간다’다. 제룡씨가 건프라나 피규어를 테마로 한 장소를 직접 찾아가는 내용이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 강릉의 한 건담 테마카페에 다녀왔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그 지역에 사는 분들도 ‘이런 게 있는지 몰랐다’면서 좋아하셨다.”

다양한 시도를 한다고 해서 늘 성공했던 건 아니다. “뼈 아픈 콘텐츠가 있다. 바로 ‘명장면 명대사’다.” 제룡씨는 웃으며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콘텐츠”라고 소개했다. 건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명장면을 제룡을 비롯해 회사의 다른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더빙해 연기를 하는 콘텐츠였다. 시도는 신선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연기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제룡씨는 “건담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강화하려고 한다. “지금도 사람들을 초청해 건담 관련 퀴즈쇼는 열고 있는데, 이런 방송을 늘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건담홀릭’만의 오프라인 행사를 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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