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채널네트워크)은 여전히 생소하다. “MCM 가방 짝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의미가 모바일 콘텐츠 전반으로 확대되고,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수익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한 행사에서 “MCN 금이냐 꽝이냐”는 주제로 대담을 연 이유다. 그럼에도 척박한 시장을 개척하는 사업자와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MCN의 콘텐츠·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고민과 노하우를 듣는다. (관련기사 모음)

“자네 인터넷 전용 콘텐츠를 만들어보지 않겠나.”

고찬수 MCN사업팀장은 회사에서 소문난 IT‘덕후’였다. 90년대 후반 예능 PD로 KBS에 입사했다. 당시 버라이어티 열풍에 “나까지 동참해야 하나”라는 회의를 느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인터넷 방송이 그를 ‘입문’하게 만들었다. IT관련 책을 많이 읽고 모임에도 나갔다. 이후 사내게시판에 IT관련 글을 자주 올렸다. ‘방송과 IT의 융합’이 주된 주제였다.

2014년 KBS가 그를 콘텐츠사업국 N스크린사업팀으로 발령 낸 배경이다. 인터넷 콘텐츠가 각광받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니 사내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아재’스러운 방송사 KBS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있는 고찬수 팀장을 지난달 20일 KBS 별관에서 만났다.

“잘 모르겠지만 웹드라마 일단 해보자”

2014년 10월, 그는 N스크린사업팀 소속이 됐다. 팀장이었지만 팀원은 없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시장조사도 해야 하고, 감이 안 잡혀 12월까지 시간을 달라고 회사에 얘기했다. 그런데 국장은 ‘웹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했다.”

“웹드라마는 수익모델이 없다.” 당시만 해도 고찬수 팀장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때만 해도 가장 잘 된 웹드라마가 ‘후유증’인데 제작비에 1억5000만 원이 들었다. 그런데 번 돈은 500만 원 정도다. 클릭당 1원씩 벌기 때문에 대박을 쳐도 돈을 벌기 힘든 구조였다.” 설상가상으로 배정된 예산이 비현실적이었다. KBS의 경우 수신료 기반으로 운영돼 까다로운 감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선제적인 투자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 고찬수 KBS MCN사업팀장. 사진=금준경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 고찬수 KBS MCN사업팀장. 사진=금준경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우선, 드라마국 차원에서 기존 콘텐츠를 가공하는 시도부터 시작했다. 홍길동 이야기를 다룬 KBS 단막극 ‘간서치열전’을 웹드라마로 내보냈다. 영상을 10분 단위로 잘라 네이버에 올린 것이다. “나름의 ‘장치’를 마련했다. 다른 건 네이버에 먼저 올렸지만 마지막회는 네이버에 공개하지 않았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지막회는 TV에 먼저 틀었다. 아쉽게도 어느 정도 화제성이 생기긴 했지만 결과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업자들을 만나며 시장상황을 파악했다. “웹드라마 제작사 대표들은 공통적으로 네이버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더라.” ‘우리는 모든 걸 걸고 만든 콘텐츠인데 네이버는 양질의 콘텐츠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홀대한다’는 불만이었다. 지금 네이버는 MCN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다행히도 서로가 원하는 접점이 있었다. KBS는 막강한 브랜드가 있고, 웹드라마 제작사에는 웹드라마 제작경험과 콘텐츠가 있었다. “KBS가 웹드라마를 하면서 구축한 ‘마이K’라는 모바일 플랫폼이 있었다. KBS와 제작사가 협의체를 만들고 우리 플랫폼에 이들 콘텐츠를 넣게 하고 TV에도 내보내면서 우리 콘텐츠가 풍성해졌다. 그리고 이들 콘텐츠를 포털에 계약할 때 KBS 협의체 이름을 달고 진행하니 브랜드 제고 효과가 있었다.” 고찬수 팀장의 말이다. 이후 KBS는 웹드라마 ‘연애탐정 셜록K’ ‘프린스의 왕자’, ‘빨간 목도리’ 등을 TV에도 편성했다.

웹시트콤 ‘마음의 소리’, 광고완판 ‘대박’

고찬수 팀장은 “KBS가 웹드라마를 만들면서 낡은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지속가능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단막극이 왜 돈이 안 되는지 아는가. 최소한 미니시리즈처럼 회차가 16부작 이상이 돼야 광고가 들어오고 협찬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런데 웹드라마는 앞뒤 광고를 붙일 수 없는 데다 단막극처럼 짧기 때문에 광고자체를 붙이기 힘들다.”

그래서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고 고찬수 팀장은 말했다. “지금은 ‘수익구조’를 찾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TV와 인터넷 양쪽에 내보내는 콘텐츠를 만들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가장 성공한 웹콘텐츠는 최근 방영된 ‘마음의 소리’다.” ‘마음의 소리’는 동명의 인기 네이버 웹툰을 시트콤으로 만든 것이다. 이 콘텐츠는 네이버에 먼저 내보내고 이후 KBS에 편성하는 전략을 택했다.

▲ KBS 웹시트콤 '마음의 소리'
▲ KBS 웹시트콤 '마음의 소리'

“사실 네이버 입장에서는 네이버TV캐스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방송보다 네이버에 먼저 내보내길 원했다. 우리가 양보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익이 됐다. 네이버에 먼저 나와 화제가 되니 광고주들이 몰려 TV 광고가 완판 됐다.” 지상파 방송광고 시장에서 채널별로 주말 메인예능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광고가 완판 되는 경우는 드물다.

투자 규모를 늘려 웹드라마 ‘대작’도 제작하고 있다. 웹드라마 ‘안단테’는 30억 원 규모의 제작비가 들었다. 통상 웹드라마 예산규모가 1억~3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과감하다. 대신, TV 콘텐츠에서 성공한 ‘사전판매’ 전략을 택했다. “이번에는 TV드라마가 돈을 버는 방법을 그대로 도입해봤다. 엑소의 카이와 같은 유명 아이돌을 내세우고 일본, 홍콩, 동남아 등 사전판매를 해 제작 중인 현재 제작비 상당 부분을 이미 회수했다.”

아프리카TV와 지상파 줄타기, 예띠 스튜디오의 시행착오

고찬수 팀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 MCN 사업이다. 그는 처음 팀에 배정됐을 때부터 “MCN을 하고 싶다”고 요구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다행히 운이 좋게 2015년부터 MCN이라는 단어가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다행히 ‘한번 해보라’는 결재가 떨어졌다.”

이후 KBS는 ‘예띠스튜디오’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크리에이터를 뽑기 위한 오디션을 시작했다. 현재는 MCN이 웹드라마 등 모바일 콘텐츠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으로도 쓰이지만 본래 의미는 크리에이터가 매니지먼트를 받으며 방송을 제작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1인 크리에이터’를 뽑습니다.” KBS가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지만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워낙 산업이 생소했다. KBS가 하는 인터넷방송의 진행자를 뽑는다고 하니 아나운서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더라.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대거 몰렸다.” 우여곡절 끝에 먹방, 헬스 등 크리에이터 12팀의 콘텐츠를 비롯해 개그우먼 오나미의 ‘뷰티채널’, K팝 신인 아이돌의 콘텐츠인 ‘넥스트K팝’ 등을 만들게 됐다.

‘인터넷 방송’과 ‘지상파 방송’ 사이의 줄타기가 이어졌다. 예띠스튜디오가 1주일에 1번씩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하기 시작했는데 ‘혼돈’의 연속이었다. “KBS가 이런 콘텐츠 만들어도 되나 싶었다. 방송에 내보낼 수 없을 정도로 두서없는 토크가 됐다. 모니터를 했는데 너무 재미없었다.”

좀 더 형식을 갖추자는 지적이 나왔다. 큐시트를 만들고 기본적인 대본을 짰다. 출연자가 말문이 막히면 ‘이런 얘기하라’고 판넬에 써서 들었다. 고찬수 팀장은 “우리는 방송했던 버릇이 있다 보니 개선을 할수록 그냥 방송과 같아졌다.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퀄리티가 떨어지는 방송’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돌파구를 모색하던 도중 인터넷 방송을 TV에 편성해보는 전략까지 나왔다. KBS 편성팀에서 예띠스튜디오의 콘텐츠를 편집해 새벽 시간대에 내보내자고 제안한 것이다. “TV는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찬수 팀장은 제안을 받아 들였다. “다만, 지금 스타일은 안 될 것 같아 트레저헌터에 연락해 유명 크리에이터인 양띵과 악어를 MC로 섭외했다.”

▲ KBS에 방영됐던 '미래스타스쿨 예띠TV' 화면 갈무리.
▲ KBS에 방영됐던 '미래스타스쿨 예띠TV' 화면 갈무리.

반응은 어땠을까. “시청률이 엄청 잘 나왔다. 그 시간대가 0%대인데 1%를 넘겼다.” 고찬수 팀장에 따르면 본부장이 직접 축하한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반응이 좋아지니 대우도 좋아져 TV스튜디오로 옮겨 진행하게 됐다. “스튜디오에 오니까 또 다시 TV프로그램과 똑같아진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4회 접어드니까 시청률이 다시 떨어졌다. 재기발랄하다고 생각해 본 건데 TV와 같은 콘텐츠인 데다 연예인이 아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진행하니 매력이 사라진 거다.”

다음 전략은 ‘아프리카TV’스타일로 가자는 것이었다.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도전하게 됐다. 크리에이터들 4팀이 30분씩 방송을 진행한 후 동시접속자수 대결로 1등을 뽑는 방식으로 아프리카TV 등에서 생중계로 방송한 뒤 재편집해 내보냈다. 마이리틀텔레비전과 유사한 방식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품위유지, 가학적 묘사 등 방송심의 규정을 위반했다며 제재를 내렸다. 당시 여당 고대석 심의위원은 “종편도 아니고 KBS에서 왜 이런 프로그램을 했을까. 안타깝다”는 말을 남겼다. 고찬수 팀장은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역시나 심의제재를 받고, 시청자위원회에서도 얘기가 나왔다. 시청률도 잘 안 나왔다. 결국 5개월 정도 하고 폐지됐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이후 예띠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건재하다.” 고찬수 팀장은 “물론, 시장의 흐름이 1인 크리에이터 콘텐츠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넘어가면서 우리가 예띠에 신경을 덜 쓰게 됐다. 이탈하는 멤버들도 있었다.하지만 SK텔레콤의 ‘옥수수’와 논의를 통해 ‘아이돌 인턴왕’콘텐츠를 만드는 등 제작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찬수 팀장은 “처음 이 팀에 와서 돈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KBS의 이미지를 젊게 만든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다고 본다. KBS가 더는 방송에 묶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이미지를 준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성공하는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