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갈렸다고 한다. ‘태극기 대 촛불’로 나눠졌다고 한다. ‘양 측이 팽팽히 맞섰다’느니 ‘국민이 갈렸다’느니, 심지어 ‘두 동강이 났다’느니 하는 표현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야말로 양 측이 ‘극단의 대립’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몇몇 언론에선 난리가 났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나라가 ‘사단이 날 것 같다’고 한다. 때문에 양 측을 향해 “자제하라”로 촉구하고 있다. 물론 국민이 분열되고 국가가 사실상의 내전상태로 돌입하기 바라는 언론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는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일지도 모른다. ‘극단의 대립’이 사실이라면.

▲ 조선일보 3월2일자. 1면.
▲ 조선일보 3월2일자. 1면.
‘50대 50’의 전제는 틀렸다

하지만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두 동강’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가장 최근 여론조사인 한국갤럽의 3월1주차 정례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은 77%였고, 탄핵 반대는 18%였다. 이 수치는 2월2주 여론조사에서도(탄핵 찬성 79%, 탄핵 반대 15%) 비슷했고 지난해 국회의 탄핵 가결 직전 여론조사(탄핵 찬성 81%, 탄핵 반대 14%)와도 비슷하다.

여전히 압도적인 국민들이 탄핵을 찬성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미 쏟아진 언론보도와 특검의 수사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돼야 하고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만 본다면, 마치 탄핵 찬성과 반대가 50대 50인 것처럼 보인다.

▲ 지난해 11월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해 11월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조선일보 2일자 1면 톱기사 제목은 ‘낮엔 반탄(탄핵 반대), 밤엔 찬탄(탄핵 찬성)’이다.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다”느니 “차벽 바깥의 태극기 집회 측이 ‘특검을 구속하라’고 외치면, 차벽 안쪽의 촛불 측은 ‘박 대통령부터 구속하라’고 맞받았다”느니 보도했다. 양 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며 대립이 극대화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사설 ‘촛불·태극기, 앞으로 열흘만이라도 집회 중단을’을 통해 “헌재 결정까지 앞으로 열흘은 우리 사회에 중대한 갈림길이 될 수 있다”며 “열흘 동안만이라도 모든 집회를 중단하고 헌재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탄핵반대 집회는 물론, 촛불집회까지 중단하라는 것이다.

‘극단의 대립’도 틀렸다

하지만 두 번째 전제도 잘못됐다. 양 측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전제가 그렇다. 극단의 행위를 표출하는 곳은 탄핵반대 세력이다. 이들 중 일부는 박영수 특별검사의 집에 몰려가 야구방망이를 들었으며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집 주소 등을 공유하며 위협을 가했다. 이들은 취재하던 기자들을 폭행하고 탄핵 찬성 집회한 사람에게 집단 린치를 가했다.

▲ 지난 1월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의 특검 빌딩 앞에서 열린 '특검 규탄 집회'에 참석한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 1월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의 특검 빌딩 앞에서 열린 '특검 규탄 집회'에 참석한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반면 촛불집회는 평화롭게 진행 중이다. 어떤 의도였든 조선일보조차 지난해 11월13일, 민중총궐기를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칭찬했다. 촛불 시민들이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거나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자택 앞으로 몰려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그들의 신체에 위협을 가한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기껏 비교하는 것이 ‘18원 후원금 폭탄’이다. 그 후원금을 받는 당사자 입장에서야 이것이 불쾌할 수는 있으나, 극단의 방식으로 칭하기는 과도해 보인다. 게다가 친박 인사들의 야구방망이에 비교할 바는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탄핵 반대 집회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에 공권력은 이를 묵인·방조하거나 충돌만을 뜯어말리는데 급급하고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득달같이 감옥에 보냈던 이 정권은 계엄령 선포를 운운하고 타인의 자택 앞에서 주민들을 위협하는 행위에는 눈을 감고 있다.

즉, 지금의 상황은 양 측의 ‘극단적 대립’이라기보다 일방의 폭력성이 극단으로 드러나는 형태고 이를 공권력이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양 측에 자제를 당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방의 ‘자제’를 당부하거나 극단적 상황을 막기 위해 공권력에 ‘자제를 시키라’고 주문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지금까지 이들 언론이 각종 시위에 대해 ‘법치’만을 강조했지 양비론을 편 적이 없지 않았던가?

조선일보가 강조하는 두 가지

그렇다면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왜 자꾸 작금의 상황을 탄핵 반대 세력에 더해 탄핵 찬성 촛불집회까지 묶어서 ‘탓’을 하고 있을까?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를 보면 특히 강조하는 두 가지 지점이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 결정 승복’과 ‘집회 중단’이다.

첫째, 헌법재판소 결정 승복은 2월 경부터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야기다. 조속한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곧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승복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승복을 하냐 안하냐 서명을 받는 일이 중요한 일도 아니다. 그런 확인은 헌재 판결이 나온 이후에 물어도 늦지 않다. 또한 국민의 상당수가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탄핵 인용을 바라고 있고 정치인은 그 민의를 대변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 등은 지속적으로, 특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끈질기게 ‘승복 프레임’을 들이밀고 있다. 이 ‘승복’을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인은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종종하고 있다. 이 기세에 어떤 정치인은 승복을, 어떤 정치인은 불복을 말해버렸다.

▲ 조선일보 3월1일자. 사설.
▲ 조선일보 3월1일자. 사설.
그러면서 이들 정치인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수차례 비판하고 반대했다. 1일자 사설 ‘70년 전 좌·우 따로 삼일절이 지금 재현되다니’에서 조선일보는 “우리 정치권은 국난 상황에서조차 이해득실에 따라 군중집회를 키우기 위해 선동을 거듭해왔다”며 “아무리 자중을 촉구하고 호소해도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집회 중단이다. 조선일보의 ‘열흘만 중단하자’는 목소리는 꽤나 절박해 보인다. 조선일보는 해당 사설에서 “이러다 결국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일부 탄핵 반대 세력들의 폭력사태를 제외하고는 집회에서 양 측의 충돌이 일어난 적이 없다.

▲ 조선일보 3월2일자. 사설.
▲ 조선일보 3월2일자. 사설.
조선일보가 원하는 것은 혹시?

이런 주장은 몇 가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첫째. 유력 야권 대선후보에 대한 폄훼다. 촛불과 탄핵반대 집회를 등치시키고 야권 대선후보들을 친박 정치인들과 함께 극단에 위치시킨다. 문재인·이재명의 이름 뒤에는 늘 김진태·김문수 등의 이름이 따라 나온다.

둘째 촛불의 의미 폄훼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촛불을 든 많은 시민들은 한국사회에 누적된 적폐를 청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이를 비교함으로서 촛불을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빨리 조기대선을 치르려는 의도로 대조시킨다. ‘이해득실’, ‘선동’ 등의 용어가 사용되는 이유다.

촛불의 적폐 청산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의 퇴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경유착과 권언유착 등 사회 기득권 연결고리를 파괴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한국사회를 재구축하려는데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전 대표나 더불어민주당 등 특정 정치세력과 정치인들의 요구로 광장에 나온 것이 아니다.

결국 조선일보의 주장은 촛불집회를 탄핵반대집회와 대조시켜 양 측을 ‘극단’으로 몰고 헌재결정에 대한 승복 약속을 받아 낸 뒤,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쫓겨나면 다른 적폐청산에 대한 의지를 차단하려는 것 아닌가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적폐의 한 가운데, 이명박근혜 정부 동안 ‘형광등 100개를 켰던’ 기성언론들 역시 포함된다.

물론 국민들 간 충돌과 유혈사태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조선일보의 이 과도한 대조법도 ‘선의’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탄핵 반대 측의 내란선동과 협박, 폭력에 대해 비판하면 될 일을 촛불과 야당 정치인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다.

이미 일부 언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을 당시 일제히 특검을 비판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분명한 것은 촛불 시민들이 원하는 적폐청산을 조선일보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2017년 2월28일과 3월2일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한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2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www.nesdc.g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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