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열전편찬위)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열전 수록 가능성이 큰 집중검토 대상자 405명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 중 언론자유 침해 관련자 20명을 발표했다. 해당 명단에는 독재자 박정희·전두환, 홍진기 중앙일보 초대회장, ‘5공실세’ 허문도 전 국토통일부 장관 등이 포함됐다.

열전편찬위는 언론탄압 분야에서 경향신문 폐간, 민족일보 사건,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 신동아 필화사건 등 8건에 대해 조사했다. 열전편찬위는 “1960년대 들어서서는 직접적인 물리력보다 사법적 처벌의 형태를 띤 억압으로 고도화됐다”며 “거칠고 야만적인 탄압에도 버텨오던 언론은 1960년대 후반 세련된 방식의 탄압 앞에 굴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언론자유를 침해한 반헌법행위 대상자. 자료=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제공
▲ 언론자유를 침해한 반헌법행위 대상자. 자료=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제공

경향신문 폐간사건, 홍진기 등 4명

열전편찬위는 1958년 12월24일 국가보안법개정안(신국가보안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첫 번째로 중대했던 사건을 ‘경향신문 폐간 사건’으로 뽑았다. 이승만 정권은 1959년 4월30일 야당지 성격이고 가톨릭 후원을 받는 경향신문에 대해 군정법령 제88호를 적용해 폐간명령을 내렸다. 같은해 1월11일자 사설 “정부와 여당의 지리멸렬상”이 허위사실을 보도했고, 2월5일 칼럼 ‘여적’을 통해 폭동을 선동했으며 2월16일 한 사단의 유류부정사건을 허위보도했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었다.

▲ 홍진기 중앙일보 초대회장, 일제강점기 판사, 이승만 정권 법무부 장관 등을 지냈다.
▲ 홍진기 중앙일보 초대회장, 일제강점기 판사, 이승만 정권 법무부 장관 등을 지냈다.

경향신문은 소송을 제기했다. 열전편찬위는 “국회의장 이기붕이 국회의원 임철호를, 임철호 의원은 법무장관 홍진기를 압박해 정부승소로 결정나도록 압력을 가했다”며 이 세명을 반헌법행위 대상자로 뽑았다. 그러나 6월26일 서울고등법원이 “경향신문 발행허가를 취소한 행정처분의 집행을 정지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기사를 쓰고 윤전기를 돌리는데 공보실로부터 정간처분 통지가 갔다. 열전편찬위는 당시 공보실장 전성천도 반헌법행위 대상자로 뽑았다.

보도지침 사건

5공화국 전두환 정권에 대해 열전편찬위가 꼽은 키워드는 “땡전뉴스”, “언론통폐합”, “1도1지(一道一紙)”, “보도지침” 등이었다. 1980년 11월에는 언론통폐합, 12월 언론기본법 제정했고, 언론통제 목적으로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홍보조정실(이후 홍보정책실)이 신설됐다. 열전편찬위는 “이곳에서 보도지침을 통해 언로는 차단됐고 여론은 통제됐으며 대중은 조작됐다”고 했다.

열전편찬위에 따르면 보도지침에는 ‘가’, ‘불가’, 절대불가‘ 등을 구분해 보도여부와 제목·내용·편집방향 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해 통보했다. 또한 “이 기사는 1단으로 쓸 것”, “이 기사는 3단 이상 쓰지 말 것”이란 식으로 보도를 통제했다.

열전편찬위는 “언론 통제의 첨병은 ‘전두환 정권의 괴벨스’로 불린 청와대 정무비서관 허문도가 맡았다”며 “쓰리허(3허, 허삼수·허화평)로 보도지침 작성을 지시한 것은 물론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해직을 주도했다”고 했다. 열전편찬위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허문도를 반헌법행위 대상자로 지목했다.

문공부장관 이원홍 역시 보도지침을 지휘한 인물로 반헌법행위 대상자로 꼽았다. 그는 ‘땡전뉴스’를 내보냈던 KBS 4·5대(1980년 7월~1985년 2월)사장을 역임한 뒤 문공부장관이 됐다. 또한 당시 문공부 홍보조정실장을 맡았던 이경식 역시 반헌법행위 대상자로 꼽았는데 보도지침을 작성하고 배포한 혐의다. 이경식은 안전기획부 언론특보, 공보처차관 등도 역임했다.

보도지침사건은 해직 언론인들이 1986년 9월6일 만든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가 만든 ‘말’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보도지침 584건을 민언협에 제공했다. 이 사건으로 김 기자와 말지 발행인 김태홍, 민언협 실행위원 신홍범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은 1995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또한 열전편찬위는 ‘민족일보 폐간 및 조용수 사형’ 혐의로 혁명검찰부장 박창암, ‘부산일보 등 강탈사건(5·16장학회 사건)’에서 황용주(부산일보 주필), 박용기(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 박정희(최고회의 의장), 신직수(최고회의 의장 고문) 등 4명,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에서 방준모(중정 감찰실장), 박정희(대통령), 김형욱(중정부장), 최대현(서울지검 검사) 등 4명을 반헌법행위 대상자로 지목했다.

▲ 동아일보 언론인들은 1974년 10월24일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 동아일보 언론인들은 1974년 10월24일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신동아 필화 사건에서는 김형욱(중정부장), 이후락(대통령비서실장), 김성곤(공화당 재정위원장) 등 3명, 동아일보 광고탄압 및 기자 대량해직 사건에서는 양두원(중정 보안차장보), 박정희(대통령), 신직수(중앙정보부장) 등 3명, 언론통폐합 사건에서는 허문도(국보위 문공분과이위원), 이상재(보안사 언론검열단 보좌관), 전두환(대통령) 등 3명을 반헌법행위 대상자로 선정했다.

지난해 7월13일 열전편찬위는 학살, 내란, 고문 및 간첩조작, 부정 선거 등 4개 분야 15개 사건에 대해 검토해 반헌법행위자 1차 명단 99명을 발표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고문기술자’ 이근안, 김구 암살범 안두희 등에 대해 국가권력을 이용해 내란, 고문과 간첩조작 등 반헌법행위를 저지른 인물로 뽑았다.

이번 명단발표에서 열전편찬위는 “기존 4개 분야 외에도 언론·문화·노동분야를 포함해야 한다는 각계 요구가 있었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언론탄압 영역 밖에는 포함하지 못해 대단히 안타깝다”고 밝혔다.

열전편찬위는 “아직 명단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이의신청과 반대자료 제공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알렸다. 또한 “헌법학자·정치학자·변호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신중한 심사를 거쳐 수록대상자를 확정할 것”이라며 “선정기준을 확립하기 위해 공개토론회도 여러차례 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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