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 전 더블루K 상무이사가 법정 증인 진술을 통해 최순실씨(61·구속기소)의 ‘국정농단’ 혐의를 구체화했다. 최씨가 고씨의 과거 전력을 근거로 흠집잡기에 나선 가운데 고 전 상무는 일관된 진술로 법정에 임했다.

고 전 상무는 지난 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K스포츠재단(이하 K재단) 및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 더블루K의 실운영자가 최씨이며 청와대가 최씨의 사업을 지원했다는 근거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 고영태 전 더블루K 상무이사가 2월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 고영태 전 더블루K 상무이사가 2월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최순실 대통령 옷 제작 사실, '빼도박도' 못해

최씨의 ‘대통령 의상실(샘플실)’ 운영은 고 전 상무의 제보에 따른 지난해 10월 TV조선 보도로 확인됐다. 고 전 상무는 최씨가 해당 의상실 보증금과 운영비를 모두 지급했다고 다시 확인했다. 2012년부터 대통령 가방을 만들어 온 고 전 상무는 2013년 중순부터 2014년 말경 까지 최씨 측의 요구로 대통령 옷 제작을 맡게 됐다. 최씨가 총괄 지시와 자금 지원을 맡으면 고 전 상무는 지시에 따른 관리감독을 맡았다는 주장이다.

고 전 상무는 이 과정에서 윤전추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으로부터 대통령의 신체 사이즈 등 정보를 전달받아왔다고 밝혔다. 의상 제작에 대해 그는 “(디자인 확인을 위해) 백화점을 돌아서 의상 샘플을 수거하고 이영선·윤전추 행정관을 통해 대통령에 보내면, 그걸 대통령이 입어보고 ‘이 디자인 괜찮다, 저 디자인 괜찮다’고 확인한다”며 “패턴을 따고 다시 백화점에 반납해서 환불받는, 그걸 내가 맡아서 했다”고 말했다.

의상실을 임대한 임차인 명의가 고씨라는 최씨 측 문제제기에 대해 그는 “보증금 회수하는 날, 이영선 행정관이 와서 그의 아내 이름으로 돌려받은 걸로 알고 있다”며 “이영선 비서가 가져온 계좌번호로 받아간 걸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 사진=TV조선 '뉴스쇼 판' 보도 캡쳐
▲ 사진=TV조선 '뉴스쇼 판' 보도 캡쳐

그가 의상실을 그만 둔 이유는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고 전 상무는 “예를 들어 최순실이 차은택에게 국가브랜드 그런 일들을 지시하면서 ‘장관 자리가 비어있는데 장관을 추천해라’ 내지는 ‘콘텐츠진흥원장 비었으니 추천해달라’고 했고 그게 (말대로) 이뤄지는 걸 보고”라며 “그리고 예산을 짜기 시작했는데 그대로 반영되는 걸 봤을 때 그런게 겁이 났다”고 설명했다.

의상실 운영 자금이 최씨의 수중에서 나온 것이 확인된다면 최씨는 뇌물죄 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

K스포츠, 박근혜·안종범·최순실 조직적 설립·운영

고 전 상무는 최씨가 K재단 설립을 미리부터 준비해왔고 재단의 설립·운영을 통틀어 청와대 측의 적극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최씨의 사업 아이디어의 상당수는 같은 시기 대외비 정부 문건에서 확인됐고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도 추진 계획이 수차례 확인됐다.

고 전 상무에 따르면 최씨는 2015년 7월경부터 고 전 상무에게 ‘청와대 문건’으로 보이는 한 장짜리 보고서를 주며 “재단 설립 방안을 알아보라” 지시했다. 최씨는 2013년 초부터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등과 함께 체육 관련 사단법인 설립을 논의했고 2014년 2~3월 경엔 실제로 설립을 추진한 바 있다. ‘종합형 스포츠클럽’ 운영을 맡기 위해서 법인이 필요하다는 김 전 차관 지적에서였다. 종합형 스포츠클럽 운영은 향후 K재단의 목표사업이 된 것이다. 고 전 상무가 확인한 문건은 김건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최종 작성한 ‘문화체육분야 비영리재단 법인 설립 방안 문건’과 대동소이했다. 재단 별로 10개 기업이 30억 씩 출연해 각각 300억씩, 총 600억 규모의 재단을 만든다는 계획서였다.

K재단의 사업 ‘종합형 K스포츠클럽 활성화 방안’과 관련, 2015년 12월1일 문체부 체육진흥과가 작성한 ‘종합형 스포츠클럽 운영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 대외비 문건은 2016년 1월 박헌영 K재단 과장이 작성한 ‘K스포츠클럽 활성화방안 제안서’에 골자 그대로 담겼다. 최씨가 박 과장에게 ‘이 문서는 조심해야 한다’면서 관련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당시 최씨가 김종으로부터 받은 문건이라고 말했냐’는 검사 질의에 고 전 상무는 “네. 그렇게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사업이 선정될 시 재단은 정부로부터 연간 8억여 원을 지원받게 될 예정이었다. 최씨가 주재한 회의록 등에 따르면 이 사업 관련한 컨설팅 사업 계약은 더블루K가 맺게 될 예정이었다. 2016년 1월23일자 안 전 수석 수첩에는 상단에 ‘대통령 지시’라는 의미인 ‘VIP’가 적혀있고 아래에 스포츠클럽, 문체부 김종 차관, K스포츠 인재 양성 거점 기업 등이 기재돼있다. K재단은 2016년 1월13일 설립됐다.

▲ 고영태 전 더블루K 상무이사가 2월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 고영태 전 더블루K 상무이사가 2월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도 마찬가지다. K재단은 사업 일환으로 하남시 부지를 장기임대 할 계획을 세웠고 대한체육회 소유 하남 부지를 목표로 했다. 고 전 상무는 “최씨가 김종으로부터 ‘저런 부지가 있다’ ‘저 부지에 누슬리(건설사)를 통해 체육관 시설 설립해 스포츠클럽 5대 거점 중 하나로 잡아 지원받자’ 등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K재단이 롯데로부터 추가 출연 받은 ‘70억원’엔 최씨와 청와대의 깊숙한 입김이 확인됐다. 고 전 상무에 따르면 최씨는 70억원을 받으라는 지시, 돌려주라는 지시 모두를 K재단 임원에게 직접 했다. 정현식 전 K재단 사무총장과 박 과장은 최씨 지시롤 받고 롯데 관계자는 만났고 2016년 5월25~31일에 걸쳐 70억 원을 받았다. 2016년 3월17일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박 대통령 간 독대 내용이 기재된 안 전 수석 수첩에는 ‘14~16’, ‘VIP’, ‘올림픽 아세안 인재양성 5대 거점’, ‘하남시 시설 25억’, ‘스위스 누슬리-케이스포츠’ 등이 기재돼있다.

70억 반환 지시도 최씨에 의해 이뤄졌다. 고 전 상무는 당시 상황에 대해 “노승일(K재단 부장)로부터 연락이 와서 ‘안종범이 전화와서 70억원을 반환하라는데 어떤 내용인지 회장(최순실 지칭)에게 확인해봐라’ 했다”며 “최씨에게 확인했더니 ‘롯데에 문제가 많은 거 같으니 빨리 돌려줘라’고 해서 다시 노승일에게 돌려주라는 지시가 왔다. ‘빨리 돌려주란다’ 해서 줬다”고 말했다.

자회사 격으로 K재단과 업무상 긴밀히 연관된 더블루K 사업에도 최씨의 총괄 지시 정황은 확인됐다. 더블루K가 포스코와 진행한 펜싱팀 창단 추진에 대해 고 전 상무는 “최순실씨가 ‘포스코와 얘기다 됐으니 가봐라’ 해서 갔다”고 지적했다. 고 전 상무는 그랜드코리아레저와 추진한 장애인펜싱팀 창단과 관련해 ‘최순실이 박헌영에게 창단 계획서 작성 방향을 알려주고 용역 단가를 구체적으로 지시했느냐’, ‘수차례 계획서 수정을 지시했느냐’는 검사측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K재단 인사권자, 최순실이 맞다”

고 전 상무에 따르면 최씨는 K재단 임직원 인사권을 휘둘렀다. 그는 “최씨가 회의를 하면 항상 K재단 이사장, 사무총장과 동석했는데 그때 정현식 사무총장이나 정동춘 이사장이 재단 임직원을 구할 때 모든 이력서를 최순실에게 확인받고 검증받았던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 전 상무가 추천한 노승일 부장, 박헌영 과장도 최씨와의 면접 과정을 거쳤다.

고 전 상무는 정현식 사무총장, 정동구 전 이사장의 해임도 “최순실이 다 했다”고 밝혔다.

더블루K는 ‘K재단 자금 빼먹는’ 차명회사 용도

최씨는 더블루K 회의실에 집무실을 두고 거의 매번 더블루K 직원과 K재단 직원을 함께 불러 회의를 주재했다. 고 전 상무는 “회의실엔 금고도 있었고 본인 책상도 있었고 회의할 수 있는 6인 테이블도 있었다”면서 최순실을 중심으로 한 쪽은 K재단 직원, 다른 쪽은 더블루K 직원이 앉은 채 회의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최씨가 주재한 회의록엔 더블루K 직원이 K재단 사업 담당자로 지정되거나 K재단 직원이 더블루K 사업 담당자로 지정되는 등 업무가 비원칙적으로 혼용된 점도 확인됐다. 회의록에 기재된 ‘재단과 더블루K 업무를 연결시킬 수 있는 인력 충원’ 안건에 대해 고 전 상무는 “더블루K 직원이 부족해 재단 직원이 와서 일하니 더블루K 측 직원을 보강하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최씨가 더블루K와 K재단을 한꺼번에 운영했다는 정황 근거다.

고 전 상무는 ‘최순실은 K재단 사업과 더블루K를 업무상 연계해서 더블루K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했었던 것이죠’란 질의에 “네. 그렇다”고 답했다.

‘임대업자’ 최순실, 연설문도 수정하고 관세청 인사도 앉히고?

고 전 상무는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는 상황을 실제로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더블루K 사무실 내) 회장님 방에 개인 노트북, 개인 프린터기가 있는데 프린터기가 안된다 해서 들어가봤더니 노트북 화면에 그런(수정 중인) 연설문이 떠 있었다”면서 같은 회사 전아무개 경리직원도 함께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2015년 12월 경 고 전 상무에게 ‘세관장 앉힐 만한 사람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도 내렸다. 고 전 상무는 친구인 류상영 더운트(더블루K 후신) 부장에게 부탁했고 류 부장이 이력서를 받고 최씨에게 전달했다. 류 부장의 추천대로 인선된 인사는 2016년 1월 임명된 김대섭 인천본부세관장이다.

최씨는 고 전 상무에게 관세청 차장과 인사국장 등 고위 간부 직 인사 추천도 지시했다. 류 부장 휴대전화에서 압수한 파일 중 3장 분량의 '관세청 관련 보고' 문건에 대해 고 전 상무는 “기존 인사에 문제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고 (최씨가) 그 자리 맞는 사람이 누가 들어가면 되는지 알아보라 해서 관세청 세관에서 일하고 있는 이아무개 과장을 통해, 류상영이 정보를 취합해 우리에게 줘서 내가 최에게 줬다”고 밝혔다. 검사는 인사는 해당 문건에 기재된 대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고 전 상무는 “최씨가 청와대 들어가야 할 때 내가 낙원상가 앞이나 반대편인 효자동 쪽에 데려다주면 이영선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면서 “이영선 비서가 픽업해서 데려갈 때마다 최씨는 짜증을 많이 냈다. ‘피곤한데 청와대 가야된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부른다. 피곤한데 스트레스 받는다’ 그런 얘길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롯데에 70억원 추가 출연을 요구한 강요 혐의와 관련해 ‘증인도 공범’이라는 이경재 변호사 측 신문에 고 전 상무는 “처벌받을 게 있으면 처벌받겠다”고 답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6일 고 전 상무가 참여한 추가 출연금 요구 등이 최씨의 강요·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진술을 이끄는 신문 전략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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