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나치 선전장관으로 익숙한 요제프 괴벨스(1897-1945)는 1927년 신문 <공격>을 창간해 베를린 경찰청 부청장 베른하르트 바이스를 모욕하는 사설을 계속 썼다. 바이스가 총괄했던 정치국이 베를린에서의 나치당 활동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었다. 괴벨스는 나치를 위해 바이스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괴벨스는 유대인이었던 바이스에게 경멸적인 별명을 붙여 부르는가 하면 얼음판 위의 당나귀로 묘사했으며, “비겁함과 위선으로 일그러진 얼굴”이라고 비난했다. 그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거짓선동이 이어졌다. 참다못한 바이스가 모욕혐의로 괴벨스를 형사고발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치 돌격대원들과 베를린 시내에서 행진과 시위를 벌였고, 유대인을 모욕하는 셔츠를 입고 다녔다. 이듬해에는 비열한 논설과 만평만을 모아 책을 펴냈다. 결국 베를린 경찰청은 11개월 만에 나치당 금지령을 해제했다.

한국에선 90년 전 괴벨스만큼 악랄한 선전선동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10월24일 JTBC가 최순실이 사용했던 태블릿PC를 입수해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시로 받아보고 심지어 수정까지 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이후 100일 동안 국가(청와대+국정원)-자본(전경련+대기업)-관제단체(극우조직+새누리당)는 조직적으로 JTBC 흔들기에 나섰다. 집회→형사고발→인신공격→농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도를 넘어선 선전선동으로서, 정부권력을 비판한 언론을 탄압하는 대통령 박근혜의 마지막 악수惡手다.

▲ 변희재씨가 12월2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039;대통령 탄핵 사유에 관한 국민 대공청회&#039;에서 JTBC의 태블릿PC 조작과 관련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김유리 기자
▲ 변희재씨가 12월2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사유에 관한 국민 대공청회'에서 JTBC의 태블릿PC 조작과 관련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김유리 기자
JTBC 태블릿PC보도 이틀 뒤인 10월26일, 여야의 특검 합의로 대통령 박근혜는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반격에 나섰다.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비리 의혹을 매우 구체적으로 폭로하며 조선일보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친박 돌격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포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10월27일(목)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최순실 태블릿PC는 다른 사람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농단 핵심증거를 부정하는 프레임이었다. 이 프레임은 훗날 최순실의 것으로 밝혀진다.

최순실은 같은 날 K스포츠재단 부장이었던 노승일씨와 통화에서 “걔네들(JTBC)이 이게 완전 조작품이고 얘네들이 이거를 저기 훔쳐가지고 이렇게 했다는 것을 몰아야 되고…”라며 사건 은폐 지시를 내렸다. 최순실이 만든 프레임은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언론에 전파되며 어버이연합·박사모·엄마부대 등 박근혜 지지단체에 일종의 임무를 부여했다. 이들 친박·극우성향 단체는 당장 10월31일(월)부터 11월9일까지 상암동 JTBC사옥 앞에 집회를 신고하고 태블릿PC보도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 JTBC 보도화면.
▲ JTBC 보도화면.
11월4일, 검찰이 태블릿PC가 최씨의 것이라고 파악했다는 보도가 쏟아졌음에도 도발은 계속됐다. 이들 단체는 JTBC를 자극하기 위해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과 JTBC 기자가 죄수복을 입은 합성이미지를 제작해 유포하는가하면 JTBC기자가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한 프레스센터 행사장까지 쫓아가 압력을 행사했다. 11월10일에는 어버이연합 등이 JTBC의 태블릿PC입수 경위를 검찰이 수사해달라며 손석희 사장을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했다.

최순실 태블릿PC에 대한 증거능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과 최순실 측이 조직적인 공모를 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당시 고영태씨는 12월13일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15일 국조특위에서 새누리당 의원과 최순실측 인사가 태블릿PC는 고영태 것이라고 증언할 것”이라 예고했고 실제로 유사한 증언이 등장했다. 노승일씨는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태블릿PC는 고영태 것으로 보이게 하자, 또 JTBC가 이걸 절도한 것으로 몰고 가자고 정동춘 이사장에게 제안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어버이연합이 11월10일 서울중앙지검에 JTBC 고발장을 제출하는 모습. ⓒ연합뉴스
▲ 어버이연합이 11월10일 서울중앙지검에 JTBC 고발장을 제출하는 모습. ⓒ연합뉴스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친박·극우성향 단체는 “JTBC 태블릿PC 조작이 없었다면 탄핵은 불가능했다”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새누리당은 당내 태블릿PC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린다며 호들갑을 떨며 프레임에 동조했다. 1월10일에는 박사모·엄마부대·자유총연맹·어버이연합 등이 ‘태블릿PC조작진상규명위원회’라는 결사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가 공동대표를 맡고 변희재 한국자유총연맹 사회특보 등이 집행위원을 맡았다.

이들은 일주일 뒤인 1월17일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치한 방송회관 1층 로비를 점거하고 JTBC 심의제재를 주장하며 17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1월23일 농성장을 지지방문하며 청와대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엄마부대 회원들을 향해 “대한민국의 편파보도에 싸우는 강한 여자들”이라고 치켜세웠다. 김문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도 1월31일 박효종 방심위원장을 만난 뒤 “태블릿PC 조작여부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TBC 태블릿PC조작’ 프레임은 ‘여당과 시민단체의 의혹제기’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일부 극우성향 인터넷매체와 주류언론의 호응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 태블릿PC진상규명위는 “제대로 취재하는 곳은 MBC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MBC는 주류언론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태블릿PC 의혹을 보도했다. (관련기사=MBC ‘태블릿PC 흔들기’, 기자들 “어쩌다 이 지경 됐나”)

▲ MBC 보도화면.
▲ MBC 보도화면.
그러나 태블릿PC는 시비 거리가 아니다. 검찰은 JTBC가 제출한 태블릿PC의 인터넷망을 추적해 태블릿PC 이동경로와 최씨의 동선이 겹친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태블릿PC가 최씨의 것이라고 결론 냈다. 특검은 지난 1월초 최씨 조카 장시호씨가 제출한 제2의 ‘최순실태블릿PC’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JTBC가 입수했던 태블릿PC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말씀자료’를 비롯해 (최씨가) 삼성으로부터 받은 지원금과 관련한 이메일 등이 다수 들어있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태블릿PC에 대한 증거능력 의혹제기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국정농단 증거는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당장 내부자들이었던 안종범·정호성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손석희 사장은 1월31일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애초부터 성립이 안 되는 비상식으로 점철된 각종 음모론과 조작설들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선명하게 드러난 국정농단의 증거들을 흐트러뜨리고 헌법재판소 결정을 지연시키고 어떻게든 지금의 국면을 반전시키고 싶은 잿빛 의도”라고 지적했다.

1월2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농성장 모습. ⓒ김준호 대학생 명예기자
1월2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농성장 모습. ⓒ김준호 대학생 명예기자
그럼에도 친박·극우성향 단체들은 도발을 멈추지 않고 손석희 사장에 대한 집요한 공격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은 1월18일 손석희 사장을 모해증거 위조죄 혐의로 고발했으며 “최종적으로 손석희·홍정도를 국가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변희재)고 주장했다. 권력의 국정농단을 밝혀내며 시청률과 신뢰도가 급상승한 언론사를 향해 국가내란죄를 주장하는 ‘궤변’의 중심에는 각종 근거 없는 주장과 막말로 소송에 휘말려온 변희재씨가 있다.

최순실측 변호인단이 지난 1월9일 변희재씨를 태블릿PC전문가로서 재판에 증인 신청하며 변씨는 JTBC 공격의 중심인물이 됐다.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에서도 섭외할 의향이 거의 없는 변씨를 박근혜·최순실이 일종의 ‘키맨’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박근혜·최순실이 벼랑 끝에 몰려있다는 반증이다. 1월26일 JTBC가 변희재씨 등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하자 변씨는 “JTBC가 검찰에 SOS를 친 것”이라 주장하며 “태블릿PC조작설 백서를 내겠다”고 받아쳤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들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월26일 서울역 광장에서 귀성객을 상대로 탄핵 반대 입장을 알리려고 자체 제작한 신문을 배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들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월26일 서울역 광장에서 귀성객을 상대로 탄핵 반대 입장을 알리려고 자체 제작한 신문을 배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태블릿PC가 조작됐다고 생각하는 건 자유다.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단체의 ‘목적’과 ‘배후’다. 한겨레는 1월31일 청와대가 대기업 돈을 받아 어버이연합·엄마부대 등 극우성향단체들의 관제데모를 지원해왔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 등 4대 기업에서 지난 3년간 극우성향단체로 흘러간 돈은 70억 원 수준이었다. 특검은 최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으로부터 “청와대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10여 곳을 찍어 구체적으로 금액까지 못 박아서 지원을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들 단체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반대 집회, 국정교과서 도입 찬성 집회 등을 주도해왔으며 현재는 탄핵 기각과 태블릿PC조작을 주장하고 있다. 뉴시스는 1월23일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과 자유총연맹 고위관계자가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청와대가 보수단체에 관제데모를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황에서도 관제데모 지시가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박근혜는 변희재로 손석희를 공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의혹제기를 가장한 언론탄압이다.

▲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JTBC
▲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JTBC
JTBC는 1월26일 친박·극우성향 단체가 탄핵반대 대규모 집회 참가자를 돈으로 동원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통상 참가자들에게 주는 일당은 2만 원이지만 날이 추우면 6만원으로 올라가고 젊은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참석하면 15만원까지 일당을 준다. 이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청와대-기업) 지원금의 잔액이 쓰인 게 아닌지 의심 된다”고 밝혔다. 친박·극우성향 단체의 조직적 움직임은 향후 특검의 수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 JTBC 보도화면.
▲ JTBC 보도화면.
박근혜정부 들어 어버이연합이 신고한 집회만 3000회가 넘는다. 시사인에 따르면 국정원 전직 간부는 “박근혜 정부 들어 집회를 열면 돈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됐다”고 밝혔다. 만약 사실이라면 국가-자본 주도의 여론조작으로, 민주주의사회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손석희 사장은 1월31일 앵커브리핑에서 “어떤 정치적 선전이 횡행한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깨어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실패한 선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패한 선전’은 반복되고 있다. 태블릿PC조작진상규명위원회 출범식 축사를 맡았던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은 1월26일 “어제(25일) 박 대통령에게 ‘탄핵이 기각된다면 검찰이나 언론의 과잉되고 잘못된 것에 대해 정리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묻자마자 대통령은 ‘국민의 힘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괴벨스와 히틀러의 비극적인 최후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