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에 직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황창규 KT 회장이 연임에 사실상 성공하자 정치권 안팎에서 “국민을 향한 오만”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수석의 노골적인 인사요구를 수용한 황 회장 행위의 적법성에 대한 특검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소한의 책임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임을 결정한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면, 다수의 KT 구성원이 포함된 KT 노동조합은 황 회장의 연임을 공개지지 선언을 하기도 해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KT 이사회(의장 송도균)는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열어 황창규 현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확정했다. 앞서 KT 사내이사 1인과 사외이사(7명)로 구성된 CEO추천위원회는 26일 KT 임원 및 애널리스트들과 가진 간담회, 면접 심사 결과 등을 토대로 황 회장이 차기 CEO에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단수 후보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 위원회는 황 회장에게 “과감한 신성장 사업 추진과 함께 투명하고 독립적인기업지배구조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KT 이사회는 최순실 게이트의 책임 문제 보다 다른 긍정적 요소를 높게 보고 연임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송도균 KT 이사회 의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황 회장에게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며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평가요소가 많았다. 경영성과와 실적, 미래전략, 비전 등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했다. 부정적 요소가 있다해도 전체적으로 연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KT 인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데 황 회장이 협력했다며 연임에 반대해온 정치권과 KT 내부 일각에서는 이 같은 판단에 대해 후안무치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1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어이없는 일”이라며 “CEO추천위원회라는 것 역시 정관에도 없는 규정을 만들어서 사실상 연임케 한 것도 문제지만, 최순실게이트에 (황 회장이 어떻게 연루됐는지) 특검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연임 결정을 한 것은 KT의 상황인식이 안이하다 못해 국민에 대한 오만함과 방약무도함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지난해 3월22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에서 열린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개소식에서 황창규 KT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홍채인식 금융 보안 솔루션(결제 시스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3월22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에서 열린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개소식에서 황창규 KT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홍채인식 금융 보안 솔루션(결제 시스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의원은 “최순실게이트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순간 황 회장은 자진사퇴하고, 대국민 사과성명을 내도 부족한 판에 연임을 시킨 것은 하나의 ‘KT 게이트’로 규정할 만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이야말로 특검 대상이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 와중에 경영성과는 무슨 성과냐. 할 말을 잊는다.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검 수사에 대해 윤 의원은 “특검에서 (수사를) 정확히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며 “(최순실 주식이 있는 기업인) 플레이그라운드를 광고대행사로 선정하고, 광고대금을 몰아준 것 등은 특검에서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황 회장을 피의자의 범위에 넣는 것이 맞고, 사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의 연장선에서 황 회장을 통한 청와대의 인사개입과 사업 개입의 진실에 대해 분명하게 수사하고 그 책임을 (KT와 황 회장에도) 분명히 물어야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자는 특검 취지에 걸맞는 것”이라며 “국민 기업 케이티 발전 위해서라도 명확히 밝히고 단죄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황 회장 연임 결정은 최순실 게이트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당당하게 ‘난 아니야’라고 국민 앞에 얘기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대변인인 추혜선 정의당 의원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대통령도 탄핵소추가 돼 있고, 다투는 마당에 같은 국정 농단의 범위 안에 연루된 KT의 최고경영자가 다시 연임 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지기는커녕 어떻게 이를 무시하고 간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추 의원은 “나중에 특검에서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이미 ‘CEO리스크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대선시기이니 적당히 그냥 두고 넘어가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추 의원은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재벌의 경우 책임자가 기업의 존립에 대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CEO부터 보위하는데 KT 역시 마찬가지”라며 “이제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KT의 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근본적으로 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KT 새노조의 이해관 대변인은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후안무치한 결정”이라며 “사회를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KT 새노조는 성명을 내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국가적위기 앞에서 황창규가 저지른 국정농단에 대한 적극적 부역이라는 과오를 덮을 만한 실적은 전혀 없다”며 “그가 할 일은 연임이 아니라 특검수사에 성실히 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KT 새노조는 “연임결정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황창규가 KT를 떠나는 날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송도균 KT 이사회 의장은 2일 인터뷰에서 “그런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평가요소가 많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라며 “(특검 수사를 통해) 형사적으로 문제가 될 때는 그 때 생각해볼 일이지 어떤 가정을 해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사회 면면이 황 회장과 같은 이해관계에 있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송 의장은 “그런 비판이 가능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 윤소하 정의당 의원. 사진=포커스뉴스
▲ 윤소하 정의당 의원. 사진=포커스뉴스
KT 내의 다수 노조인 KT 노동조합은 일찌감치 황 회장 연임 지지선언을 하는 등 이번 결정에도 지지한다고 밝혔다. KT 노조는 지난달 10일 발표한 성명에서 “KT를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현 CEO의 강한 열정과 경영능력, 일부 성과창출 및 향후 확대 가능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일부에서는 현재 국정농단 사태로 언론에 거론된 점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정치 이슈를 판단 기준으로 삼기 부적절하며, 현 CEO는 위법이 없었다는 것이 사회 일반의 인식이므로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노동조합은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현 CEO 취임 후 지난 3년간 여러 가지 공과가 있었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KT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고 소기의 성과를 창출한 점은 분명하므로 현 CEO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회사와 조합원 모두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한다”며 “1만8천여 조합원의 전체 뜻을 담아 황창규 현 CEO의 연임을 지지하며, 대내외의 우려와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신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선언했다.

KT 노조의 한 주요 간부는 이번 이사회 결정에 대해 “지지하고 있다”며 청와대의 불법인사개입을 그대로 이행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그런 게 범죄사실로 입증되면 모르지만, 범죄도 아닌데 그런 것을 이유로 연임에 반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추혜선 정의당 의원. 사진=추 의원 사이트
▲ 추혜선 정의당 의원. 사진=추 의원 사이트
특검 수사 결과가 달라질 경우에 대해 그는 “(황 회장의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재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력의 사유화에 하수인 노릇을 한 것이라면 법적 책임을 떠나 독립된 통신사 운영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어떤 민영화된 기업의 숙명이라고 본다”며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독립적 재벌이라면 몰라도 이제까지 정치권력(의 개입)으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낙후된 경영을 보여온 것이 숙명”이라고 답변했다. 이 간부는 “이런 이유 때문에 (회장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면 대책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차은택·최순실·안종범의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차은택의 지인인 이동수 신혜성 등을 KT 임원으로 채용하라는 안종범 전 수석의 요구전화를 받은 황 회장은 그 요구에 따라 두 사람을 채용했다. 또 황 회장은 이들의 보직을 변경해달라는 안 전 수석의 요구전화를 받고 그대로 이행했다. 최순실씨의 주식이 있는 플레이그라운드라는 회사를 KT의 광고대행사로 선정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황 회장은 그대로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그라운드가 결격사유가 있는데도 선정하는 문제가 불거져 KT새노조를 비롯한 시민단체에 의해 이사들이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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