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일. 햇수로는 5년. 공영방송 MBC의 시계는 지난 2012년 1월30일에 멈춰 있다. 닷새 전 MBC 기자협회의 제작거부 선언 후 ‘공정방송 쟁취’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작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파업은 170일간 이어졌다.

파업 후 노조 간부들이 줄줄이 해고됐다. 당시 이용마 언론노조 MBC본부 홍부국장(1795일)부터 시작해 정영하 본부장(1766일), 강지웅 사무처장(1766일), 박성호 MBC 기자협회장(1709일), 노조 집행부도 아니었던 최승호 PD(1688일)와 박성제 기자(1688일)까지 아직 복직을 못 하고 있다.

법원은 이들이 벌인 파업이 정당한 근로조건을 위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1심에 이어 지난 2015년 4월 항소심에서도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 않고 있다.

▲ MBC 파업 중 해고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왼쪽부터) 강지웅 전 사무처장·정영하 전 본부장과 박성제·이용마 기자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출근 투쟁을 벌이는 모습.
▲ MBC 파업 중 해고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왼쪽부터) 강지웅 전 사무처장·정영하 전 본부장과 박성제·이용마 기자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출근 투쟁을 벌이는 모습. ⓒ이치열 기자 
누군가는 이 같은 상황을 ‘지체된 정의’라고 불렀고 파업에 참가했던 한 MBC 기자는 ‘유예된 저널리즘’이라고 규정했다. 후배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김재철 전 사장은 “죽을 때까지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지난 1800여 일 동안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만든 장본인 중 누구도 책임진 사람이 없다.

촛불집회에서 조롱받으며 쫓겨나고 반성문을 쓰고도 욕먹는 건 되레 MBC를 이렇게 망가뜨린(망가지도록 방관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구성원들의 몫이 됐다.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싸울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지만 5년 전,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된 싸움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5년이 지났지만 바뀐 건 없다고 생각한다. 계속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취지에서 계속 이어가고 있는 거다.” 왕종명 신임 MBC기자협회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또다시 피켓을 들었다.

MBC 구성원들은 두 달 가까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청와대 방송’ 중단과 보도 책임자 사퇴를 촉구하는 피케팅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MBC 경영진과 보도 책임자들은 ‘MBC 뉴스가 중심을 잘 잡고 있다’며 눈과 귀를 닫고 있는 상황이다. 피켓 시위자들을 향한 여러 대의 카메라와 CCTV만이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왕종명 회장은 MBC에서의 지난 5년에 대해 “뉴스가 그때보다 더 망가졌으면 망가졌지 나아진 게 없다”며 “인력 구성도 굉장히 왜곡돼 있는 상황이 안타깝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MBC 구성원들에겐 5년 전의 파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5년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정영하 전 본부장은 “돌아보려면 정확히 규정되고 종결돼야 그 일에 대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데 5년 내내 MBC의 상황은 진행형이었다”며 “밖에서 시청자들이 볼 때 순치된 거 아니냐, 끝난 거 아니냐고 해도 우리가 파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5년 동안 하나도 정리가 안 되고 계속됐다”고 말했다.

“막말로 누가 저항을 하다 장렬히 전사해서, 그게 어떤 또 다른 분노의 기폭제가 되고, 다른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면 모르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이건 그냥 개죽음인 거야. 남은 사람들은 더 위축되지. 분연히 분노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역시 해봐야 안 돼. 해봐야 저렇게 될 뿐이야 하는 학습효과만 강해져.”

지난달 31일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MBC 구성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사진=강성원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MBC 구성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사진=강성원 기자
최근 임명현 MBC 기자는 그의 연구 논문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MBC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MBC 기자들이 파업 이후 모멸감과 공포, 수치심과 무력감 속에서 ‘잉여적 존재’로서 ‘죽은 노동’을 수행하면서 왜 저널리즘 실천을 유예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기록했다.(관련기사 : 170일 파업 이후 MBC 기자들은 어떻게 죽어갔나)

정영하 전 본부장은 국민의 냉소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는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공영방송이 공정성을 지키지 않으면 공정성 또한 상업성이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에 국민은 JTBC 등 다른 대안 매체를 찾고 있지만, 이 역시 공영방송이라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전 본부장은 “공영방송이라는 기둥이 있을 때 주변 다른 민영방송 등도 이 기둥이 지탱하는 역할에서 크게 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지금은 기둥을 뽑아놓은 상황에서 다른 매체가 그 역할 대신하고 있지만 언제든 지속성을 잃을 수 있고 공정성이 사익을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 언론은 망가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 정영하(왼쪽)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강지웅 전 사무처장. 사진=강성원 기자
▲ 정영하(왼쪽)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과 강지웅 전 사무처장. 사진=강성원 기자
“언론도 공범이다”고 외치는 촛불 정국 속에서 우리 국민은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공정방송’의 중요성을 배웠다.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들이 활개 치며 국정을 농단하던 시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그때 공영방송이 이렇게까지 무기력하지 않았다면, 권력의 ‘입노릇’에 충성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전 국민이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MBC 구성원들이 싸우는 이유도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 전 위원장은 “다시 복직을 한다면 우리가 5년 동안 이렇게 싸운 게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버티고 저항한 게 의미 없지 아니었음을 보면서 느끼고 싶다”며 “차후에 또 이런 상황 안 벌어지리란 법이 없다. 그땐 지금의 경험이 제대로 버티고 세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건 (이)용마가 아픈 거다. 작년에 암 판정을 받았다는 걸 안 이후 매우 힘들었다.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면서도 용마의 건강한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며 “언론자유를 제대로 구가하고 싶은 과정에 그런 일을 겪은 건데 MBC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더라도 살아 있어야 뭘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잘 버텨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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