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동지의 명에 따라 적화통일의 횃불을 들었습네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인 서석구 변호사가 지난달 5일 헌법재판소 변론에서 노동신문 기사를 근거로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종북에 놀아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누리꾼이 만든 가짜뉴스였다. 박사모 카페에는 영국의 아크튜러스 맹스크 교수가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비판했다는 내용의 기사캡쳐가 올라왔다. 맹스크는 전략시뮬레이션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가 논란이 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단속에 나섰다. 선관위는 지난달 2일 ‘비방흑색선거 전담TF팀’을 꾸리고 주요업무 중 하나로 가짜뉴스 확산방지 활동을 시작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언론사의 기사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기사처럼 흉내 낸 게시물이 대상”이라며 “신중하게 검토한 후 사실이 아닌 뉴스를 삭제하고, 심각한 경우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짜뉴스는 얼핏 보면 진짜 뉴스와 같은 구성을 하고 있지만 조작된 내용을 담고 있다. 여론조작이 목적인 경우도 있지만, 트래픽을 노리거나 장난삼아 만드는 경우도 많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교황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는 가짜뉴스는 대선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누리꾼이 만든 가짜뉴스.
▲ 누리꾼이 만든 가짜뉴스.

선관위는 가짜뉴스 툴을 제공하는 사업자들부터 관리에 나섰다. 대표적인 제작툴 앱인 페이크뉴스는 결국 앱을 자진삭제했다. 유사한 서비스인 데일리파닥은 사이트에 “대통령 선거 관련 후보(예정)자와 그 가족에 대한 비방/흑색선전/허위사실유포 등의 행위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문구를 넣었다. 

가짜뉴스의 SNS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도 시작됐다. 1월12일 선관위는 가짜뉴스가 나오면 페이스북이 신속하게 게시물을 삭제하고 관련자료를 제출하는 내용의 협의를 마쳤다. 선관위는 구글, 트위터 등 사업자와도 협의를 할 계획이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적극적인 대응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단속하고 처벌하는 건 ‘정부 주도의 검열’이라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논란이 첨예하게 불거진 의혹제기의 경우 자칫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총선 당시 선관위 산하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나경원 당시 새누리당 후보 자녀의 부정입학 논란보도에 제재를 내려 논란이 된 바 있다. 

민중의소리가 쓴 “‘섹스 스폰서’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의 ‘철판’ 행보”기사는 섹스 스폰서 의혹은 무혐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단정적인 표현을 써선 안 된다며 선관위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기소를 하지 않은 것으로 성접대에 대한 판단을 한 바 없다. 선관위가 팩트체크에 부실해 실수하거나 또는 특정 정치세력의 입맛에 맞는 공정성 심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는 선관위가 민원을 넣은 후보자의 평판관리위원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총선 기간 선관위는 유승민 당시 후보의 얼굴을 내시에 합성한 이미지가 후보자 성별비하라는 이유로 삭제했다. 커뮤니티 MLB파크의 한 댓글은 “‘우리엄마가 나경원이야’(라고 나경원 의원의 딸이 면접 중 발언한 것) 말고도 관련된 의혹은 더 있다”고 밝혔을 뿐인데 허위사실을 썼다는 이유로 삭제되기도 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요청한 유승민 의원 비방 트윗.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요청한 유승민 의원 비방 트윗.

무엇보다 선관위 중심의 대응이 제대로 된 대응으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가짜뉴스는 페이스북 등 SNS에서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문제를 인지하고 제재에 나선다고 해도 이미 다수에게 퍼진 후다. 트래픽 장사를 목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드는 경우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한 뒤 글을 삭제하는 ‘게릴라전술’을 펼치는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에서 온라인에 대한 통제 권한이 과도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게시글에 대한 포털사이트의 임시조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명예훼손 게시물 통신심의가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선거기간이 되면 선관위가 직접 삭제에 나서고 있다. 

독일에서 페이스북이 가짜뉴스를 방치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국내에서 규제론의 근거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한국과 달리 인터넷 게시글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내란음모, 혐오, 나치찬양 등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과 달리 일상적인 심의를 하지않는다. 더욱이 독일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가짜 뉴스처럼 보이는 뉴스를 팩트체크를 위한 비영리기구인 ’코렉티브’(Correctiv)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는 정부기관 주도의 한국과는 전혀 다른 매커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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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먼저 가짜뉴스가 논란이 된 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팩트체크 강화’를 대책으로 꼽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이용자들이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영국의 자선단체인 풀팩트는 자동으로 팩트를 체크하는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 르몽드는 팩트 체킹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거짓을 걸러내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로 했다. 페이스북은 가짜뉴스로 판별될 경우 관련 문구를 게시글에 넣는 필터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조만간 독일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한국도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비영리기관을 중심으로 팩트체크를 체계화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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