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이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이하 도깨비)의 1회부터 16회까지 모든 방송분을 확인한 결과 270개의 PPL(간접광고) 장면을 잡아냈다. 시청자들은 1회 방송분을 시청할 때마다 약 17건의 PPL장면을 본 셈이다. 5회의 경우 무려 33차례의 PPL장면이 노출되기도 했다. ‘도깨비’는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마지막회 20.5%)을 기록하며 시청자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동시에 노골적인 ‘PPL드라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tvN 드라마 '도깨비'의 PPL. 확인된 것만 270 장면이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극 중 도깨비만큼 유명했던 상품이 가구브랜드 일룸을 비롯해 카누, BBQ, 하루야채, 토레타 등이다. 극중 치킨집 냉장고는 물론 가정용 냉장고에서도 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빽빽하게 가득 찬 음료수 페트병이 비현실적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술을 마시고 말다툼을 하고 간식을 먹을 때도 옆엔 항상 음료수가 있었다. 4회에서 유인나는 음료수를 직접 들고 “보여 내 노력이? 피부 생각해 매일 마시는 거?”라고 말하며 간접적으로 해당 음료의 효능까지 설명했다.

극 중 김고은은 향초부터 라이터, 성냥에 이르기까지 각종 불을 꺼가며 공유를 소환했다. 역시 광고였다. 향초는 고급 호텔에도 즐비해 있었고 주방 천장에도 수없이 배열되어 있었다. 집안 곳곳에서도 향초는 빠질 수 없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등장했다. 2회에서 김고은이 버스정류장에 쓸쓸하게 앉아 있는 장면은 배우의 감정 선보다 향초브랜드의 전광판에 더 눈길을 끌게 만들었다.

▲ 삼성 갤럭시 S7 edge가 등장하는 '도깨비'의 한 장면.
5회에서는 공유와 김고은이 쇼핑을 하던 와중에 “5.5인치 QHD 디스플레이에, 엑시노트 8890, 옥타코어 프로세서로 램4기가바이트, 강화유리 소재로 더 가볍고 슬림한 바디를 자랑하는”이라며 갑자기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S7edge의 기능을 읊는 뜬금없는 장면도 등장했다. 김고은과 이동욱이 거실 소파에 앉아 수건을 개는 장면에선 “전 이 집 수건이 참 좋아요. 보송보송하고 고급지고 폭폭하니”라고 수건 칭찬을 했다. 모두 광고였다.

10회에서 육성재는 자신이 근무하는 가구회사에 배치되어 있는 책상버튼을 작동하며 “오 올라 가 올라 가~오 내려 가 내려 가~오 꺾여~”라는 대사를 통해 책상 기능을 홍보했다. 12회에서는 유인나가 저승사자들에 치킨을 공짜로 주며 “서비스에요. 신메뉴 나와서”라고 말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15회에서는 육성재와 이동욱이 식사를 준비하던 중 육성재가 이동욱의 시계를 가리키며 “삼촌, 그 시계 뭐에요?”라고 묻자 “직업상 시간이 정확해야 해서. 저승사자는 시크한 블랙이지”라고 대답했다. 역시 광고다.

이 밖에도 김고은이 시계를 구입하며 손목이 예쁜 사람이라 시곗줄이 얇은 시계를 택하겠다는 장면, 여자들이 좋아하는 향이라고 향수 소개를 하는 장면, 공유가 육성재에 숙취를 풀기 위해 숙취 해소제를 마시길 권장하는 장면, 채식을 선호하는 저승사자 이동욱은 야채음료만 마셔댄 장면 모두 특정 상품을 광고하는 PPL이었다.

▲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등장하는 '도깨비'의 한 장면.
‘도깨비’는 PPL에 맞춰 스토리를 입혔다. 예컨대 김고은은 굳이 아르바이트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부유해진 뒤에도 BBQ에서 일을 했고 수능이 끝나고선 뜬금없이 강원도에 위치한 리조트까지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유는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는 황당한 장면도 찍어야 했다. 김고은이 대학입학선물로 받은 캐논 카메라는 김고은의 졸업식 장면에서 수도 없이 등장하며 카메라 광고를 방불케 했다.

시청자들은 ‘도깨비’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과도한 PPL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했다. 20대 시청자 노아무개씨는 “15회 방송에서 김고은의 감정연기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침대 머리 부분이 내려가는 기능이 연출되면서 마치 요양병원을 연상시켰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시청자 최아무개씨는 “9회 방송에서 집을 나간 김고은이 리조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갑자기 곤돌라를 타는가 하면 느닷없이 스키장 한복판에서 재회하는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며 특정 리조트 광고가 과했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PPL장면은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16회 동안 ‘도깨비’는 극의 흐름과 무관한 정보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상품의 기능을 직접 설명해주는 장면, 심지어는 상품의 로고를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등 과도한 연출방식으로 PPL에 집중했다. 반면 기업은 웃었다. 숙취해소 음료 PPL을 넣었던 정관장369는 최근 보도 자료를 통해 “PPL 협찬으로 효과를 많이 봤다”고 밝히기도 했다.

▲ 디스커버리 외투 착용이 눈에 띄는 '도깨비'의 한 장면.
방송가에 따르면 ‘도깨비’는 김은숙 작가와 공유 등 배우의 인지도를 활용해 제작단계 초반부터 PPL을 끌어왔고, PPL수익은 7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22일 진행된 ‘도깨비’ 제작발표회에서 육성재는 “이번 드라마 협찬이 너무 좋다. 진짜 장난 아니다. 특히 자동차가 뚜껑이 열리고, 소리가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는 모두가 PPL없이는 드라마를 제작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고 있다.

드라마는 점점 수많은 PPL을 담아내기 위해 정교하게 짜여 지는 신개념 광고 스토리텔링 드라마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PD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PD의 89%는 “협찬과 간접광고가 방송프로그램의 내용과 품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지상파의 한 드라마PD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올랐다. 유명 작가가 회당 1억을 넘게 받는 상황에서 PPL제안은 거부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드라마PD는 “요즘 모든 가족드라마를 보면 가족 중 한 명은 의류회사에 다니고 또 다른 한 명은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한다. 다 PPL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전했다. 과도한 PPL에 따른 불편함은 오롯이 시청자의 몫이다. ‘도깨비’의 성공에 마냥 웃고 있을 수많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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