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현대그룹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의 현대증권 경영 관여 여부에 관한 명예훼손 재판에서 검찰이 돌연 고소장을 증거자료에서 철회하겠다고 밝혀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피고의 변호인은 검찰이 고소장을 증거에서 취소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황두연 대표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움직임과 관련해 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는 등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 허미숙 판사 주재로 열린 민경윤 전 현대증권 노조위원장(해고)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사건에서 검사가 고소인인 윤경은 전 현대증권 사장(현 KB증권 합병법인의 각자대표)을 증인에서 철회하고, 고소장도 의견서 형태의 참고자료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고 재판에 참석한 이들이 24일 전했다. 고소인도 증인에서 빼고, 고소장을 증거자료에서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현대증권이 지난 2013년 3월 설립한 헤지펀드 자산운용사인 ‘Asia Quant Group’(싱가포르 법인)에 대해 노조가 반대하면서 불거졌다. 이 헤지펀드의 초기 설립 자금은 1억 달러(약 1140억원)로, 조세피난처인 케이만군도를 통해 자금이 나갔다. 당시 현대증권 노조는 현대그룹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가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지휘했을 뿐 아니라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해 1억 달러를 투자한 이유 역시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황 대표의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윤경은 사장은 황 대표의 지휘 등 노조의 주장이 허위라며 2014년 1월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2년 만인 지난해 1월 검찰이 민 전 위원장을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24일 민 전 위원장의 변호인인 이규호 변호사(법무법인 선해)에 따르면, 재판에서 공판 검사는 고소장 증거취소 사유에 대해 △고소장의 작성자가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들로 돼 있어 윤경은 사장이 작성했다고 봐야 하는지 불투명하고 △고소 이후 진술을 사내 변호사인 이근희씨가 했는데 이 역시 증거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검사는 고소장을 (증거신청 항목에서 빼는 대신) 의견서 형태의 참고자료로 제출하고, 윤경은 사장이 직접 작성한 글이 첨부서류에 없기 때문에 윤 사장에 대해서도 증인에서 철회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 참석자가 전했다.

▲ 검찰 깃발. 사진=연합뉴스
피고측인 이규호 변호사가 이날 재판에서 “고소장은 변호사가 다 작성하는 것이고, 고소장이 증거의 시발점인데, 이를 변호사가 작성했다고 하면 변호인을 불러다 신문하자는 것이냐. 이치에 안 맞는 것 아니냐”며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가 작성했다는 얘기가 왜 나오느냐”고 말했다고 24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밝혔다.

그는 특히 자신이 “현재 특검에서 황두연 대표에 대해 조사하는 움직임과 관련해서 검찰이 뭔가 피하려는 것 아니냐”며 “고의적으로 재판 지연하려는 것 아니냐, 윤경은 사장을 증인에서 철회하면 우리가 불러내서라도 묻겠다”고 밝혔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검찰은 특검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며 고소인이 나오는 것을 꺼려서 그런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남부지검 공판부 고위관계자는 2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공소장에 있는 것 외에 우리가 아는 것은 없다. 특검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 내용이 조사된 것도 없다”며 “재판이 1년간 진행이 됐는데, 고소인(윤경은 사장) 측이 출석을 안하고 있는 상황이다. 출석을 꺼리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검찰측 증인이기 때문에 고소장의 진정성립(증거능력 인정-기자주)이 없더라도 고소대리인이 (대신) 수사기관과 법정에 나와서 진술했다”며 “굳이 고소장이 없더라도 고소내용에 대한 진술이 돼 있고, 관련 증거가 있어서 공소유지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고소인과 고소장을 증인과 증거에서 배제하는 것은 증거의 출발부터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피해 내용이 명예훼손이기 때문에 인터넷 출력물이 증거로 제출됐으며 당사자 대신 사내변호사의 진술내용으로도 피해내용 입증된다고 봤다”며 “안나오는 증인 붙들고 재판 지리하게 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윤경은 사장의 고소장 내용과 황두연 대표에 대한 특검 수사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우려 때문에 고소장을 증거에 뺀 것 아니냐는 질의에 이 관계자는 “특검에서 뭘 수사하는지도 모른다”며 “한참 전 2012년, 2013년에 있었던 사안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으로, 현재(특검수사)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여의도 현대증권. 2014년 3월14일 촬영. 사진=연합뉴스
이에 반해 최근 특검이 황두연 대표를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기사가 여럿 실리기도 했다. 황두연 대표는 현대그룹 그림자 실세로 불려왔다. 황 대표는 2013년 현대 비자금 조성 의혹 등으로 고발됐으나 검찰은 황 대표 자신의 기업에 대한 ‘100억원대 횡령’ 사건만 기소했다. 이후 황 대표는 지난 2014년 7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특히 당시 검찰 수사단계인 2013년 11월19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황 대표 사건에 대한 변호사 선임계를 낸 사실이 밝혀졌다. 우 전 수석이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지 두달 뒤 법원에서 판결이 났다. 판결 이후 검찰은 항소하지 않아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22일 최순실 국정조사 5차 청문회에서 우 전 수석이 황 대표로부터 얼마의 수임료를 받았느냐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의 추궁을 받았으나 그는 수임액을 밝히지 않았다.

내일신문도 지난 13일자 기사에서 “특검은 의혹을 밝힐 단서를 찾기 위해 황두연 전 아이에스엠지(ISMG)코리아 대표 측 관계자들과 접촉해 관련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황 대표의 아들이 승마를 하면서 최순실씨의 측근 장시호씨와 친분을 유지했다는 기사(한국일보)가 보도되기도 했다. 황 대표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는 미 위스콘신대 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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