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와 눈발 속에서도 촛불은 타올랐다.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3차 범국민행동에서 32만(주최측 추산, 연인원) 시민들은 젖은 바닥에 앉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촛불을 들었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박근혜 정권을 향했던 민심의 분노는 삼성과 재벌을 향했다. “재벌총수 구속하라”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퍼졌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김기춘과 조윤선이 구속됐지만 430억 원의 뇌물을 준 이재용은 구속되지 않았다”면서 “진짜 비선실세는 재벌총수다. 이대로는 재벌천국 헬조선은 바뀌지 않는다. 재벌의 책임을 묻고 재벌공화국을 해체해야 촛불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21일 오후 광화문 일대에 32만 명(주최측 추산, 연인원)이 집결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김상은 퇴진행동 법률팀 변호사는 “삼성이 재벌과 최순실에게 지원한 430억 원이 뇌물이었다는 상식을 왜 판사만 모른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를 비롯한 법률가 67명은 법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을 규탄하며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부족한 건 구속사유가 아니라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라고 꼬집었다. 그는 “430억 원 중 횡령액이 90억 원이 넘는다. 횡령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징역형에 해당하고, 당연히 도주가 우려돼 영장을 발부하는 게 상식인데 왜 이재용에게는 적용이 안 되나”라며 “최순실 게이트는 그동안 재벌에 대해 관대했던 사법부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 노동자들도 촛불을 들었다. 이우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은 “삼성은 일주일 사이에 또 다른 면죄부를 받았다”고 말했다. 12일 법원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근로지위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조합원은 “우리는 삼성에서 면접보고 교육을 받았다. 삼성이 준 옷을 입고, 삼성이 가라는 집에서 삼성 제품을 수리하고 삼성 영수증을 끊어줬는데 왜 우리가 삼성 직원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 조합원은 “그러나 구속영장 기각과 근로자지위확인 패소 두 면죄부 모두 시한부라고 생각한다”면서 “이재용을 구속해서 뇌물 면죄부를 무효로 만들어야 한다. 저도 불법파견 면죄부를 무효로 만들 거다. 지지를 보내달라”고 말했고 격려의 박수가 이어졌다.

▲ 이날 시민들은 소공동 롯데호텔, 롯데백화점 앞에서 신동빈 회장을 구속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은 롯데백화점 앞을 지키는 경찰들. 사진=금준경 기자.

독립영화 배급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무대에 올라 “오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장관이 체포됐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다. 박 대통령도 블랙리스트 작성과 문화예술 탄압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네마달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독립영화 ‘다이빙벨’을 배급한 이후 김영한 비망록에 ‘내사’가 언급되는 등 탄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명이 촛불조명이더라. 앞으로도 촛불이 있는 곳에 항상 카메라가 따라 다니겠다“고 덧붙였다.
▲ 이날 퇴진행동과 시민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벌총수를 구속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광화문 구치소. 사진=금준경 기자
▲ 삼성건설이 만들고 삼성증권이 입주한 종로타워 앞에서 시민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광화문 구치소. 사진=금준경 기자

본무대가 끝난 후 오후 8시부터 시민들은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방향 외에도 종각방향으로 행진했다. 삼성건설이 시공하고 삼성증권이 위치한 종로타워, 소공동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 SK서린빌딩 등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재벌 소유의 빌딩으로 향한 것이다. 

이 곳에서 시민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뇌물죄를 비롯해 골목상권 장악, 노동탄압 등의 이유로 체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시민들은 “유전무죄 웬말이냐” “범죄자는 감옥으로” 등의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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