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준 기자직에 종사하는 이는 2만9018명이며 매체수는 3714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14 기자직 종사자 현황’) 3만 명에 이르는 기자들은 대부분 각자 출입처를 갖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국회라는 한 출입처만 살펴봐도 등록된 출입기자가 1700여명에 이른다. 현실적으로 기자단이 운영되지 않으면 체계적인 취재가 불가능할 정도의 숫자다. 기자단이 ‘카르텔’이라고 불리면서도 해체는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다.

지난 13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 사무실로 들어설 때 연합뉴스TV 기자는 지정된 풀기자가 아님에도 이재용 부회장 앞에 돌진했다. 때문에 사진‧영상 기자들은 부회장의 뒷모습을 찍게 됐고 펜기자들도 질문 할 기회를 놓쳤다. 이후 특검 기자단은 해당 기자에 △특검 브리핑 2주 불참 △현장 풀러 2주 배제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가 타당했느냐 여부를 떠나, 기자단의 기능을 볼 수 있는 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12일 오전 서울 대치동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됐다.ⓒ민중의소리

기자단은 취재현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거나 비상식적 행동을 하는 기자에 징계를 내리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기자단이 하나의 진입장벽으로 유지되면서 기자단이 아닌 기자는 취재가 불가하거나 차별된 정보를 받는 등 부작용도 크다. 기자단에 들어가려면 기존 기자단의 투표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 관행 때문에 수개월에서 수년을 기다려야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출입처와의 유착 문제 역시 여전하다.

 

최순실 재판 취재하려면 ‘당첨’ 돼야한다? “취재응모에 당첨돼 기쁘기도 했지만 씁쓸”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취재가 한창인 서울 대치동 재판 방청석에는 총 45석의 기자석이 있다. 45석 중 42석은 출입 언론사에게, 3석은 외신기자의 몫이다. 45석 중에 출입기자가 아닌 기자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1석도 없는 셈이다.

비출입기자가 재판을 취재하려면 응모를 통해 ‘뽑혀야’ 가능하다. 한 인터넷 언론의 A 기자는 “취재하기도 바쁜데 하루에 2번 있는 응모시간에 맞춰 응모권을 뽑고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취재를 기다렸다”라며 “나 역시 취재에 당첨돼 순간 기쁘기도 했지만 이를 두고 기뻐하는 모습이 씁쓸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A기자는 “기존 법조 출입기자가 아닌 경우 취재가 매우 어렵다”라며 “똑같이 관심이 높았던 사회 사건의 경우 출입처 자체가 없는데도 질서 유지가 잘됐고 취재하는 기자들이 알아서 풀을 짜는데 유독 법이나 검찰 쪽은 비출입기자 배제가 심하다”라고 전했다.

최순실 재판장의 취재석 모두가 출입기자단에 제공된 것에 비출입 기자들은 법원 공보팀에 항의했다. 이후 비출입 매체 기자들에게 돌아온 취재석은 단 1석이었다. 12월부터 특검 취재를 시작한 B기자는 “현재 비출입 기자들이 15~20명인데 1석에서 돌아가면서 취재를 하고 공유하고 있다”라며 “법원이나 검찰의 공보담당들은 기자단만 챙기면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최순실씨 재판 방청 응모권.

출입처와 유착된 기자단, “티타임도 아니고 화기애애한 기자간담회, 어이없다”

 

주요인사가 개최하는 기자간담회의 경우에도 기자단 위주로 취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기자가 돌발 질문을 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기자단은 출입처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해야하기 때문에 출입처에서 중대한 이유없이 엠바고를 요청하더라도 이를 지키는 등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지나친 엠바고 요청은 기자단과 출입처 유착의 대표적 사례다. 16일 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과 기자단의 티타임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날 반기문 측은 ‘오프 더 레코드’(비공식 발언)를 주문했다. 이날 반기문 전 총장은 ‘박연차 23만 달러’ 의혹과 입당 문제 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단이 비공식을 약속했으나 현장에 있던 한 통신사 기자의 정보보고가 속보로 작성돼 기사로 나왔다. 첫 기사가 뜬 이후 기자단의 기자들은 부랴부랴 기사를 작성했고 결국 비공식 발언은 무효가 됐다.

2016년 초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기자간담회를 진행했을 때도 기자단-출입처 유착 사례가 벌어졌다. 당시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국회의장에 시선이 쏠린 상태였다. 국회의장 측은 “접견실이 좁으니 선착순으로 간담회에 참석할 기자를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것은 출입기자단 간담회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한 주간지의 C기자는 “간담회를 신청하고 기다렸는데 출입기자단 아닌 기자는 거의 못 들어간 결과여서 어이가 없었다”라며 “국회방송으로 중계를 보는데 기자들은 마치 티타임처럼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라고 말했다. C기자는 “준비해간 질문들은 쓸모없어졌고, 취재 의욕도 사라졌다”라며 “공식적 행사는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 취재 중인 기자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출입기자단에 속하지 않으면 출입처 일정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기자단에 속한 경우와 아닌 경우 취재의 ‘질’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1년간 국회를 출입한 인터넷언론 D기자는 “출입처 기자단에 속하기 전엔 몰랐지만 속하고 난 이후 그동안 취재를 헛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긴급으로 짜이는 일정 등에서 소외당해 물먹기 일쑤였다”라고 말했다.

 

D기자는 “뒤늦게 긴급일정을 파악하고 워딩을 열심히 치고 있는데, 이미 기사가 나와있는 말들이었다. 기자단에서 사전에 워딩을 배포했던 것”이라며 “미리 내용을 안 기자들은 질문을 짜고 기사 주제도 생각하는 등 취재의 질이 달라진다”라고 전했다.

기자단에 들어가려면 기존 기자단이 ‘승인’해줘야…3년 간 못 들어간 기자도

기자단에 속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자단에 속하려면 기존 기자단 안에서 투표로 승인해줘야 한다. 기자단에 들어가고 싶은 비출입 매체 기자는 투표가 하루 빨리 이뤄지길 기다리지만, 기자단에 속한 기자들 사이에서 투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진행된 통일부 기자단 투표에서 3년 동안 기자단을 가입하지 못했다가 겨우 가입한 매체도 있다. 해당 기자는 이전에 통일부 출입기자였으나 매체를 옮기는 바람에 3년 간 기자단에 끼지 못했다. TV조선의 경우도 2년째 통일부를 출입하고 있으나 기자단 가입을 하지 못했다.

TV조선의 경우 서울시경기자단 가입에도 7번째 퇴짜를 받았다. 2014년 TV조선은 기자단의 거부에 “아무런 이유 없이 타 언론사의 진입을 가로막는 행태는 한국 언론에서 가장 비판받아야할 어두운 구석”이라며 시경기자단을 공개 비판했다. 그러나 TV조선은 여전히 시경기자단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다.

 

▲ 2011년 11월 서울 영등포경찰서 기자실 출입문에 시경출입기자단 소속이 아닌 종편4사 기자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정당 출입을 하는 한 인터넷 언론의 E기자는 “기자단에 들어가지 못해 기자단 간사에게 투표를 요청한 지 세달이 됐는데 투표를 차일피일 미뤘다”라며 “출입한지 4개월 정도 되어서야 기자단에 들어갔는데 왜 이들의 승인을 받아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방송사의 F 기자는 “나는 현재 내 출입처의 기자단에 속해있지만 기자단 카르텔이 심하다고 생각한다”라며 “매번 투표를 하는데 입성 못하는 곳이 나온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증권 분야의 기자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거래소 기자단의 경우 작년에는 한 매체도 기자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현재 한국거래소는 회원 47개 매체와 준회원 10개 매체로 기자단을 나누고 있는데 준회원 매체의 경우 기자실 사용을 위한 회비 월 2만원을 내지만 지정석은 없는 상황이다. 회원매체 투표와 관련해서도 기존 기자단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서 참석한 매체수가 찬성 필요수에 미달돼 아무도 기자단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거래소 홍보팀 측은 “다른 중요 증권관련 기구도 김영란법 이후 기자실 사용에 2만원을 내고 있다. 회비 제도 도입 당시 기자단에서도 기자실 사용에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정서가 생겨서 도입한 것”이라며 “기자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무한정으로 자리를 넓힐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측은 “투표와 관련된 부분은 기자단 내에서 해결해야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 취재 중인 영상 기자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기자단 속해있어도 중소매체 기자 차별…“출입기자 5명 이상이어야 취재가능”

 

출입기자단에 속해있어도 소위 ‘메이저’ 매체가 아닌 규모가 작은 매체들은 취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난 12월6일 열린 1차 ‘최순실 청문회’에서 소규모 매체들은 청문회를 복도에서 지켜봐야 했다. 국회미디어담당관실이 취재요건을 ‘상시출입증을 5개 이상 가진 언론사’로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다. 몇몇 기자들은 복도에서 청문회 생중계를 보며 취재를 해야 했다.

신한슬 시사인 기자는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나 메르스 국정조사 때는 이런 식으로 취재를 제한하지 않았다”며 “국회 측은 취재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매체 차별을 정당화할만한 이유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기자단을 운영하는 홍보팀이나 기자단 간사의 경우 현실적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 미디어담당관은 13일 미디어오늘에 “국회 출입 취재기자만 해도 1000명이 넘고, 자리는 50여석밖에 없어서 기준이 필요했다”라며 “하지만 당시 기준이 논란이 된 이후, 2차 청문회부터는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출입처 기자단의 문제는 하루 이틀의 것은 아니다. 기자수가 많아질수록 체계적 취재환경을 위해 기자단의 필요성이 커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질문을 잃고 똑같은 기사를 쏟아내기도 한다. 기자단이 질서와 특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사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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