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전국 단위의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행보는 뒷말을 낳고 메시지는 불분명하다는 평가다.

반기문 전 총장은 16일 박근혜 대통령과 약 2분 간 통화에서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안타깝다”며 “부디 잘 대처하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이 통화는 반기문 전 총장이 오전 10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이뤄졌다. 귀국 인사를 대신한 통화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귀국 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10년 간 노고가 많았다.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셨다”고 덕담했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4일 오후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 위치한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찾아 요양 중인 할머니에게 죽을 떠 먹여드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부적절한 통화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회 탄핵안이 통과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갖추는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12일 입국 후부터 거의 매일 하나 이상의 구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12일 공항철도 승차권을 발권하면서 자동발매기에 현금 지폐를 겹쳐 넣어 ‘서민 코스프레’라는 구설에 올랐다. 13일 현충원 방문 당시에는 방명록에 미리 작성해 온 쪽지 내용을 베껴쓰는 장면이 포착돼 “방명록 컨닝은 처음 본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14일 충북 음성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방문해서는 본인이 턱받이를 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반기문 전 총장이 꽃동네에서 턱받이를 한 것보다 꽃동네 방문 자체를 비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리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는 “꽃동네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대규모 장애인 생활 시설에 불과하다”며 “2008년 사무총장 시절 ‘장애 관점에 입각한 지속가능한 개발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사무총장 리포트까지 냈던 사람의 행보로서는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AI 방역 현장에서는 홀로 방역복을 입어 주변과 동떨어진 모습을 만들어 내며 ‘보여주기식 현장방문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반기문 전 총장이 내놓은 메시지도 오락가락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14일 기자들 질문에 “기회가 되면 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촛불집회를 참석하겠다는 건지, 기회가 되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또 중앙일보와의 입국 당시 기내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술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랑 뭐가 다른가”, “호전적 평화주의자”, “페미니스트 마초” 등 다양한 패러디로 반기문 전 총장의 화법을 비꼬았다.

반기문 전 총장은 12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새로운 정치세력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듯 했지만 이미 반기문 전 총장을 돕는 캠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참모진이 즐비해 이 역시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의전을 챙기면서도 여론이 쏠린 촛불집회에 '기회가 있으면' 나갈 수 있다는 반응이나 ‘진보적보수주의자’라고 자평했던 것을 보면 반기문 전 총장은 어느 한 쪽 손을 확실히 들지 않는 중간지대에 머물러 있겠다는 포석을 가진 듯하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4일 오후 충북 음성군 맹동면 AI거점소독시설을 방문해 차량 소독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하지만 반기문 전 총장의 이런 행보는 불특정 다수의 입맛을 맞추려다가 결국 어느 누구의 입맛도 맞추지 못한 꼴이 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 반기문 전 총장이 자신을 보수 후보로 명확하게 포지셔닝하지 않으면서 새누리 당세가 강한 부산·울산·경남에서 조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지지율이 밀리고 있다. (관련기사: 반기문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캠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반기문 전 총장이 아직 관료티를 벗지 못한 측면이 크게 보인다”며 “보수 정당 출신들에게 정무적인 보좌를 받겠지만 자기 정치를 보여주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출마 조차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반기문 전 총장이 귀국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는 것 외의 어떤 메시지나 의미 있는 행동은 없었다”고 혹평했다. 

서양호 소장은 “반기문 전 총장은 보수나 여권이 인기가 없다고 차별화부터 했다가는 자신의 지지기반 자체를 잃을 수 있다”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보수후보로 자리매김하고 안철수 후보가 중도 후보로 확실히 자리 잡을 경우 반기문 전 총장은 양쪽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로 지지율 확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의 지지율은 반기문 전 총장이 서구의 선진적인 마인드나 새로운 정치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개인기에 의한 것”이라며 “자신의 입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설 전후로 그 인기마저 떨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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