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미디어 분야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독자가 기사를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기사를 선별해 원하는 기사를 직접 갖다주고, 설명해주고, 해설해주는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신문은 제대로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 기사 텍스트가 구조화되지 않고 쓰이는 즉시 버려지다보니 가공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CMS(콘텐츠관리시스템)업체인 비알스톰과 미디어디렉션연구소가 컨소시엄을 꾸리고 CMS를 개발하면서 ‘CMS 혁신을 통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지난 12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비알스톰 사무실을 찾았다.

“알고리즘 ‘태그’자동입력이 변화의 시작”

박희목 비알스톰 대표는 “미디어는 ‘온디맨드’화 될 것이다. 온디맨드는 키워드 기반이고, 인공지능의 근간도 키워드다. 즉, 키워드에 맞는 콘텐츠 유통이 가능한 회사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호동 미디어디렉션연구소장 역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품은 CMS가 있어야 뉴스미디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태그’기능을 통해 기사를 분류할 수 있지만 정작 기자들이 이용하지 않고 있다. 엄 소장은 “태그만 잘 걸어놔도 좋은 키워드 분류가 된다. 그러나 신문사 있을 때 기자들을 보면 태그는커녕 ‘정치’ ‘사회’ 등 클릭 한번에 섹션 지정하는 것도 잘 하지 않는다”면서 “기자들이 번거로워 하는 점을 알고리즘으로 풀게 됐다”고 말했다.

▲ 비알스톰의 태그 자동입력(오토태깅) 시스템.

비알스톰은 2015년 연합뉴스의 차세대 CMS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기사 텍스트에서 핵심 단어를 추출해 자동으로 태그하는 오토태깅 기능을 만들었다. 특검 관련 기사를 기자가 작성하고 있으면 따로 입력하지 않아도 ‘태블릿PC’ ‘이재용’ ‘특별검사’등의 태그가 자동으로 입력된다. 같은 원리로 ‘정치’ ‘사회’ 등 섹션 분류와 관련기사도 묶음도 자동으로 만든다. 이처럼 기사를 체계적으로 ‘아카이빙’하게 되면 활용할 여지가 커진다.

박 대표는 “콘텐츠에 태깅을 하게 되면 각 기사별로 키워드가 요약된다. 그러면 사람마다 선호하는 기사의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고, 관심을 가질만한 뉴스를 추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ICT 중에서도 게임 하드웨어에 관심이 많은 이용자가 관련 뉴스를 많이 보게 되면, 플레이스테이션 신모델 출시소식을 추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장기적으로 미디어 발전 방향인 ‘음성호출’에 맞도록 기사를 데이터화하는 게 과제다. 엄 소장은 “인공지능 스피커의 발전이 보여주듯 앞으로 저널리즘의 호출방식은 음성으로 불러내는 것일 수 있다. 음성은 화면에서 진열된 기사 중 특정 제목과 언론사를 선택하는 것과 다른 개념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적용될 수 있도록 키워드를 구조화할 수 있어야 선택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도 상품, 기자도 유통을 알아야 한다”

“기자들을 보면 언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데, 디지털 시대에는 기사를 상품으로 여기면서 유통도 고민해야 한다.” 박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기사를 쓰고 난 후 어떤 반응이 있는지 기자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CMS에 독자 반응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게 했다”고 말했다. 비알스톰의 CMS에는 기사 작성 이후 기사가 얼마나 퍼지는지, 시간에 따라 반응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모바일 접속비율과 PC 접속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포털 댓글 반응은 어떤지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는 게 끝이 아니라 개별 기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노하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게티이미지.

그는 “현재는 통계를 보여주는 수준이지만 이 같은 방식을 기반으로 기자에게 충분히 인사이트를 줘야 한다”면서 “어떤 소재를 써야 기사의 반응이 더 좋은지, 사진은 몇 개를 넣는 게 적절한지 등 독자의 반응에 대한 데이터를 풍성하게 하는 방향으로 CMS가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쟁적인 문제다. 브랜드가 해체되고 기사가 낱개로 유통되는 상항에서 기자가 유통을 알아야 할 필요성은 있겠지만, ‘자극적인 기사를 써 성과를 내라’는 압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읽히는 기사’라는 게 기자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키워드일 수 있지만 디지털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경쟁을 해야 하고, 읽히는 소재와 방법을 알아내는 게 중요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단절된 소통이 낳은 낡은 CMS, 혁신을 망친다”

박 대표는 연합뉴스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직접 기자들을 만나 CMS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분석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한 기자는 “사진편집하려면 프로그램을 별도로 켜야 해서 복잡하다”고 말했고, 다른 기자는 “찾는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검색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기능이 많은데 정작 쓰는 건 별로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용하는 기자들이 자사 CMS를 불편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알스톰은 연합뉴스 CMS에 오토태깅과 마찬가지로 기사를 작성하는 순간 발생하는 잡다한 일을 자동화했다. 기사에 들어갈만한 자료 리스트를 만들고 최적화된 순서로 제시한다. ‘박근혜 대통령 기자간담회’에 대한 기사를 기자가 쓰고 있으면 자동으로 ‘관련사진’ ‘관련영상’ ‘관련 인물정보’ ‘관련 주소’ 등이 뜨는 것이다. 

엄 소장은 “CMS를 바꾸게 되면 저항이 있지만, 막상 제대로 된 CMS를 써보면 디지털 마인드가 심어지는 속도는 대단히 빠르다”면서 “조중동 등 대형매체 기자들도 아직까지 종이신문 만드는 시스템인 집배신을 쓴다.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려면 온라인용 CMS를 또 별도로 열어서 써야 한다. 그러니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의 신문제작인력은 계속 신문 만들고 디지털부서 인력만 디지털화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CMS가 변화를 하지 못한 데는 CMS 업체와 신문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는 게 엄 소장의 진단이다. 그는 “대부분의 언론이 소수의 회사가 만든 CMS상품을 쓰는데, 이는 그 회사가 혁신하기 이전에는 수 많은 언론이 혁신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상품을 납품하는 업체에 종속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CMS에 새로운 기술이 추가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CMS제작업체와 언론사, 언론사 내부의 기술파트와 편집국의 소통이 전무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엄 소장은 “좋은 기술이 있다고 해서 좋은 CMS인 건 아니다. 기존 업체나 언론사 내 기술파트는 개발자가 모든 것을 담당한다”면서 “포토샵이 가진 기능을 CMS에 때려넣으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고 불편해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우리가 컨소시엄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CMS는 기술파트에서만 만드는데, 언론을 경험하고 전략을 고민하는 사람이 함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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