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검증 칼날이 날카로워 지고 있다. 반기문 전 총장이 빨라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것이 분명해 지는 가운데 아들과 조카 등 측근을 포함한 부정부패 의혹부터 본인의 뇌물 수수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반기문 전 총장의 부정 의혹은 측근에서 나왔다. 뉴욕 연방검찰은 11일(현지시간) 반기문 전 총장 동생인 기상씨와 그의 아들 주현씨(반기문 전 총장 조카)가 경남기업 소유의 베트남 하노이 복합빌딩 ‘랜드마크 72’를 추진하면서 카타르의 한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려 한 혐의(해외부패방지법, 뇌물 수수, 사기, 돈세탁, 문서위조, 신용도용 등)로 기소했다.

KBS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뉴욕 연방검찰은 반기상-주현 부자와 함께 미국 국적의 공모자 말콤 해리스, 반주현의 조력자 우상씨도 기소했다. KBS는 “이번 사건이 미 연방검찰, 미 법무부는 물론 FBI 국제부패전담반까지 장기간 합동 수사한 끝에 기소에 이르렀다”며 “미 당국이 그 만큼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4명 형량 127년…반기문 연루 가능성은?

실제 미 연방검찰이 밝힌 혐의로만 보면 형량은 반기상씨의 경우 최대 30년, 주현씨 최대 62년, 말콤 해리스 최대 32년, 우상씨 최대 5년으로 4명에 대한 형량 총 합은 127년에 이른다.

▲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미 지난해 10월 서울북부지법은 주현씨가 위조한 ‘카타르 국부펀드가 랜드마크 72를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로 경남기업을 속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주현씨는 이 판결로 경남기업의 피해금액 59만 달러를 배상해야 했다. 경남기업은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주현씨의 부친인 반기상씨(경남기업 고문)는 2013년 뉴욕 부동산 업체에서 일하던 주현씨를 경남기업에 소개해 ‘랜드마크 72’ 매각 주관업체로 선정했다. 주현씨는 해당 업무를 주관했다. 하지만 주현씨가 일했던 부동산 업체는 이 같은 거대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없는 곳이었다.

문제는 주현씨가 카타르 쪽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명성’을 자주 언급하며 거래를 성사를 위해 여러 곳에 압박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뉴욕 연방검찰기소장을 보면 주현씨는 2013년 9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자신이 일했던 회사와 카타르 국왕, 해리스 등에게 보낸 이메일 등에서 “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우리 가족의 명성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는데”, “나의 가족이 보증한다” 등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10월3일 “법원, 성완종 속인 반기문 조카에 ‘59만 달러 배상’ 판결” 기사에서 “반(주현)씨 측은 성 전 회장 측에 ‘반 총장을 통해 카타르 국왕과 접촉할 수 있다’며 반 총장이 매각 과정에 모종의 역할을 할 것처럼 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7월 선데이저널은 주현씨가 2013년 경남기업에 보낸 메일에서 “(2013년) 9월25일 뉴욕에서 카타르 국왕 초청으로 열리는 칵테일 파티에 제가 참석할 예정인데 유엔 사무총장님 참석 여부는 반 고문(반기상 경남기업 고문으로 추정)님과 상의 하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9월25일 메일에서 주현씨는 다시 “카타르 국왕과 유엔 사무총장님께서 유엔에서 공식 만남이 있었고 간 고문님 부탁으로 랜드마크 72에 대해 언급했다”는 메일을 경남기업에 보낸다. 하지만 카타르 국왕과 반기문 전 총장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야당은 주현씨 뇌물혐의와 반기문 전 총장의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동생과 조카가 벌인 국제 사기극의 간판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반기문 전 총장이다. 반 총장은 이 같은 사기극이 벌어질 시기에 사기 피해자 성완종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며 “반기문 전 총장이 귀국 기자회견에서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촉구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존에프케네디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가까운 가족이 연루된 것에 당황스럽고 민망스럽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며 “사법적인 절차가 진행 중이니까 결과를 기다려 보겠다”고 말했다.

반기문 아들, SKT 뉴욕사무소 특혜 채용 의혹

반기문 전 총장의 장남 우현씨는 2011년 1월 SK텔레콤 뉴욕 사무소 직원으로 채용됐다. 뉴욕 사무소는 SK텔레콤 미국 현지 법인과 달리 본사에서 직접 관리한다. 주 업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08년 맡은 유엔글로벌캠팩트 상임이사 업무 지원이다.

하지만 뉴욕사무소는 최태원 회장이 해당 지위를 맡은 지 한 참 후인 2010년 4월에 설립됐다. 우현씨는 9개월 후 뉴욕사무소에 채용됐다. 일반 채용이 아닌 특별채용 과정이었으며 당시 1명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2월26일자 “SKT, 반기문 아들 골프 부킹도 잡아줬다” 기사에서 뉴욕 현지에서 만난 복수의 한인회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뉴욕사무소 직원들이 우현씨 골프 부킹을 잡아주는 등 집사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2010년 11월13일 유엔글로벌컴팩트 한국협회 초청으로 방한해 당시 상임이사였던 최태원 회장을 만났다. 우현씨가 채용된 시점은 이로부터 약 한달 반 뒤다. 뉴욕사무소 직원은 2~3명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반기문 전 총장 측에 ‘보험’을 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SK텔레콤 측이나 반기문 전 총장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12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반 전 총장 귀국 관련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반기문, 23억 뇌물 수수 의혹에 언론중재 신청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한 뇌물수수 의혹도 제기됐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2월24일자 “박연차, 반기문에 23만 달러 줬다” 기사에서 반기문 총장이 2005년 외교통상부 장관 재직 중일 때와 2007년 유엔 사무총장 취임 직후 두 차례 걸쳐 각각 20만 달러와 3만 달러를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반기문 전 총장 측은 지난 4일 시사저널을 대상으로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신청을 냈다. 반기문 전 총장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시사저널의 해당 기사는 후보 검증을 빙자한 음해성 사실 왜곡 기사”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이날 공항 입국 기자회견에서도 해당 질문을 받았으나 “왜 제 이름이 등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 문제는 이미 분명히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진실에 조금도 틀림없다”고 명백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역할은 잘 했나?

지난 10년 간 반기문 전 총장의 본업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이미 영국 시사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는 반기문 전 총장이 재선을 앞둔 2009년 6월11일자 ‘유엔 사무총장: 중간평가’ 기사에서 △권력에 대한 진실성 3점(10점 만점) △거시적인 상황파악 8점 △평화유지 6점 △관리능력 2점으로 엇갈린 평가를 내렸다.

외교관 특유의 “조용한 외교” 스타일인 반기문 전 총장이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충돌을 피하고 한국인 측근으로 구성된 비서진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반면 기후변화 의제를 위한 합의도출에 앞장섰다는 점(거시적인 상황파악)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계간지 내일을여는역사 2016년 가을호에 실린 ‘유엔 사무총장과 반기문’ 칼럼에서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반기문 전 총장이 취임 직후 준비했던 개혁안을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떠오르는 게 없다는 지적이 공존한다고 지적했다.

시사인은 지난 2016년 6월 낸 457호에서 지난 10년간 반기문 전 총장을 다룬 외신을 분석한 결과 “비서처럼 왔다가 투명인간처럼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초임(2007~2011년) 개발과 인권, 기후변화 등 강대국의 갈등소지가 적은 안전한 의제를 제기하며 ‘비서형 총장’의 업무 운영 행태를 보였다.

재선(2012~2016년)을 발판으로 반기문 전 총장은 국제 분쟁 등 갈등 이슈에 더욱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로 움직이며 결국 이슈들에 밀려 변방으로 사라졌다. 시사인은 “글로벌 유력지들이 유엔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반 사무총장은 담론의 중심에서 말 그대로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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