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비선실세’로 지목되는 최순실씨(60·최서원으로 개명)의 실세로서의 면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검찰 수사 자료가 재판을 통해 공개됨에 따라 언론이 보도한 수준 이상의 사실관계가 밝혀지는데 따라서다.

지난 11일 오전 10시경부터 오후 11시경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57), 정호성 전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47) 등의 사건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날 공판에선 검찰이 서증(법원에 제출된 문서 증거)을 실물화상기에 놓고 검증하면서 공소 이유를 설명하는 서증조사가 진행됐다.

▲ 최순실씨. ⓒ포커스뉴스

최씨는 측근들의 ‘최회장’이었다. 최씨가 운영하는 회사나 차명회사 임직원들이 검찰 조사에서 밝힌 호칭이다. 이들 회사들은 국가사업 수주 특혜, 대기업 압박을 통한 계약 특혜 및 인사권 개입, 횡령 등을 통해 사익 극대화를 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씨가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사실이 입증되면 최씨의 혐의 여부는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최순실이 회의 주관, 차명 회사 설립, 설립대금 납부까지

광고대행사 ‘플레이그라운드’(이하 PG) 임직원 진술은 최씨가 PG의 실질적 운영자임을 보여줬다. 장순호 전 PG 재무이사는 “최순실의 소개로 PG에 입사하게 됐다. 내게 PG 재무일을 보라고 했다”면서 “설립 당시 주주인 박모씨, 임모씨, 이모씨는 최순실의 차명주주일거라 생각한다. 박씨, 임씨 지분에 대한 돈은 김성현 당시 PG 사내이사에게서 받아라고 지시받았다”고 검찰에 밝혔다.

PG 회계팀장인 엄모씨도 검찰에 “최순실이 설립자금을 아프리카 이사를 통해 김홍탁 PG 대표 통장으로 1억원을 넣었고 5명 주주 명의로 분배해 입금한 것”이라 밝혔다.

차명주주 중 한 명인 이모씨는 ‘안모씨에게 (명의를) 제공했는데 나중에 보니 모스코스(최씨 차명회사 중 하나)와 PG 이사로 등재돼있더라’면서 ‘이병헌(최씨 조카)이 김영수에게 요청했고 김영수가 안모씨에게 요청했고 안씨가 나에게 요청한 것’이라 진술한 바 있다. 김씨는 최씨의 측근으로, 최씨의 압력으로 포스코 계열사인 ‘포레카’ 대표이사에 선임됐다고 알려져있다. 이병헌씨와 김영수씨는 PG의 긴밀한 관계자가 아님에도 명의를 구하고 다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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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이사를 맡았던 전모씨는 “최씨가 장순호나 김성현에 전화해 회의하자고 한 사실이 여러 차례 있음을 알고 있고 장씨나 김씨가 PG 경영상황이나 기타 다른 사항들을 최씨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더블루케이’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최씨는 임원, 주주명부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회의를 주관하고 의사결정을 주도했다고 지적됐다.

더블루케이의 대표는 조성민씨와 최철씨, 상무는 고영태씨였다. 조씨는 같은 교회를 다니던 장순호씨가 최씨에게 소개한 인물로 최씨가 “회사를 설립하려는데 대표이사 맡을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한 데 따른 것이었다.

조씨는 ‘최순실씨가 K스포츠재단 박헌영 과장과 노승일 부장에 사업계획서 작성을 지시하면 두 사람은 나에게 제안서를 보고한다’면서 지난해 1월16일 “최순실씨에게 박 과장과 노 부장이 작성한 제안서를 보고했다. 최씨는 나에게 곧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연락이 갈 것”이라고 진술했다. 최씨의 말대로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7일 후 조씨에게 연락해 사업 추진 상황을 알렸다.

전모 더블루케이 경리직원은 회사를 “최 회장, 조성민 대표, 고영태 상무, 최철 대표가 근무하던 회사”라 설명했고 “최씨가 가끔 사무실에 오면 자금 사정 물어봤는데 현황 지출내역을 정리해서 볼 수 있게 했다. (…) 사람들이 모두 회장이라 불러 그런 줄 알았다. 회의실을 (최씨의 별도 사무실로) 썼다”고 진술했다.

박헌영, 노승일 등 K스포츠재단 인사들이 더블루케이 사무실을 종종 들러 늦게까지 일을 하고 갔던 것에 대해 전씨는 “더블루케이를 K스포츠재단 자회사 개념으로 생각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고영태, 조성민을 비롯해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최순실씨는 일주일에 2번 정도 나와 매번 회의를 진행했다”고 검찰에 말했다.

K스포츠재단 이사도 최씨에게 보고를 올렸다. 최씨를 ‘최 회장’이라 불렀던 정현식 재단 이사는 재단 출범 시기에 사무총장, 이사장에게 명함을 만들어줬다는 것과 (현판식에 쓸) 현판을 판 것까지 최씨에게 보고했다. 그 전에 최씨는 동일한 지시를 정 이사에게 내린 바 있다.

모스코스, 코어플랜 등도 임직원들이 최씨 지인으로 가득 채워져있고 최씨 조카인 이병헌씨가 지정한 장소에 명의를 빌려준 이들의 인감증명서가 전달됐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최씨가 지난해 9월 독일에 마지막으로 세운 페이퍼컴퍼니 ‘더운트’ 설립도 최씨의 지시에 따라 장순호씨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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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사장이 신생 소기업에 쩔쩔매는 상황

대기업 포스코는 신생 중소 스포츠 컨설팅 회사 ‘더블루케이’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상무를 비롯한 다수 직원은 지난 3월 더블루케이측의 ‘양해를 구하기 위해’ 더블루케이 사무실을 직접 방문했다. 황은연 포스코 사장은 더블루케이에 거절 의사를 전달한 지 하루 만에 “언짢게 했으면 미안하고 오해 풀어주기 바랍니다”라고 사과를 전달하기도 했다.

황 사장이 더블루케이의 ‘여자 배드민턴 팀을 창단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데 따른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더블루케이 직원들이 ‘황 사장의 고압적 자세에 불쾌했다’는 취지로 최순실에게 보고하자, 최씨는 ‘더블루케이 직원을 잡상인 취급했다’고 안 전 수석에게 그대로 보고하게 했다. 황 사장은 바로 다음 날 12시28분에 죄송하다는 문자를 조성민 당시 대표에게 보낸 것이다.

서모 포스코 직원은 당시 황 사장과 양모 상무로부터 ‘전화해서 (더블루케이를) 달래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더블루 측에서 미팅 내용에 불만이 나온다 하니 오해사지 않도록 달래주라는 취지였다”며 “달래주지 않으면 큰 임팩트가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진술했다.

안 전 수석은 ‘포레카 인수’ 과정에서도 전면에 나서 포스코 회장을 압박했다. 포레카 인수는 최순실씨의 계획이었다. 인수를 위해 차명회사 ‘모스코스’를 만들었지만 기준에 미달해 우선협상 대상이 되지 못했고 우선 대상자인 ‘컴투게더’는 최씨 측 의견을 따라주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안 전 수석이 권오준 포스코 회장에 ‘살펴달라’며 문자·통화를 수차례 넣고 면담도 진행했다.

더블루케이, 포레카 등의 문제와 특별한 이해관계가 연관되지 않은 안 전 수석이 이를 주도적으로 계획했을 가능성은 적다. 안 전 수석은 왜 직권을 남용하면서 까지 관계자들에게 압박을 가한 것일까.

안 전 수석의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직권남용이 ‘누구에게 지시받은 것이냐’는 검찰의 질문에 이수영 대통령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실 4급 행정관은 “빨리 재단 설립하라는 미션을 받은 것 같았다”고 답했다. “그러한 미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최순실 지시 받고 증거 은폐, 모두가 자인했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지난해 12월 19일 제1회 공판준비기일 때부터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전적으로 부인해왔다. 검찰에 제시한 증거는 이를 정면 반박했다.

최씨의 지시를 받고 컴퓨터 포맷 및 자료 파쇄에 나섰던 사람들은 모두 증거인멸을 인정했다. 장순호씨는 “최 원장(최순실)으로부터 연락이 와 컴퓨터를 파기했다. 안에 있는 자료 모두 분쇄기에 파쇄하라고 지시받았다”고 진술했다.

신모씨도 최씨 측근인 자신의 남편에게 “연락받고 더운트(더블루케이 후신격) 컴퓨터와 자료를 없애러 갔다”면서 “남편이, 최순실씨가 장순호 이사에게 연락해놨으니 더운트 사무실에 가서 남은 피씨와 자료 싹 다 정리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신씨 남편의 지시를 받은 구모씨는 그에게 “(파쇄 후 자료가 복구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복구하고 있다”면서 “파일이 살아나면 하드디스크를 부셔서 산에 묻어버릴게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구씨는 망치로 하드디스크를 파기해 사진을 찍어놓기도 했다.

‘윗선’을 가리려 말을 맞춘 흔적도 명백히 드러났다.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은 안 전 수석과 수석의 보좌관 김모씨로 부터 허위진술을 요구받았다. 검찰 조사 출석 1~2일 전 김씨는 김형수 이사장을 불러 “이사장이 미르재단 이사진과 직원들을 선임했다고 말해달라”, “전경련이 이사장을 선임한 측이라 말해달라”, “안 전 수석과 주고받은 통화내역 조심해달라” 등을 요구했다. 청와대가 미르재단 설립을 주도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김씨는 왜 말을 맞췄냐는 검찰 질문에 “당시 VIP를 지키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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