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공공성이 무너졌다. 시장은 급변하고 있지만 정부조직은 뒤쳐졌다. 방송은 종합편성채널을 위한 특혜로 얼룩졌고, 독점이 우려되는 플랫폼은 정글처럼 방치됐다. 공영방송은 보도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이번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미디어 분야 과제는 차기 정부에 넘어간다. 차기 정부는 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 미디어오늘은 차기정부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미디어 정책 9대 과제를 꼽았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연합뉴스

미래창조과학부 해체, 신문·방송 부처 통합

창조경제는 실패했다.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질적인 산업부처와 과학부처의 결합은 실패했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미래창조과학부는 해체되고 과학기술부가 다시 분리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미디어 부처를 어떻게 재편하느냐다.

이명박 정부 때와 같이 방송통신위원회로 통합하는 방안과 노무현 정부 때처럼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원화하는 안이 유력하다. 그러나 미디어 정책을 통합적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회귀에 그칠 게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의 방송 분야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신문 분야를 통합해 미디어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영섭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 뉴미디어 융합 등 교차구조가 허용되고 정책이 공동으로 수립되는 상황에서 신문과 방송 담당 부처를 분리하는 방식은 거꾸로 가는 것”이라며 “해외에서도 일반적으로 하나의 부처에서 미디어를 관리한다”고 말했다.

▲ 2014년 12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을 마친 뒤 석굴암 VR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청점유율조사, 문화체육관광부의 여론집중도조사 등에서 신문과 방송을 통합적으로 계산하고 있지만 정작 부처는 찢어져 있다보니 일부 정책이 중복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문화부의 신문 진흥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미디어발전기금으로 재편해 신문 진흥 등 미디어 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걸면 걸리는 공정성 심의 폐지

정부가 개입해 미디어를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심의위)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심의위는 방통위에서 독립한 이후 민간기구 자격으로 심의를 하고 있지만, 정부여당에서 다수 위원을 추천해 사실상 정부가 직접 심의하는 것과 같다. ‘김영한 비망록’에서도 청와대가 비판적 보도와 게시글에 대해 심의위를 통해 대응할 것을 주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미국에서 방송심의는 협회차원에서 진행한다”면서 “통신심의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행정기관에서 민간자율단체로 권한을 이양하라’는 권고를 내렸지만 전혀 집행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심의위 폐지나 이에 준하는 개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폐지하고 통신심의 등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기능을 민간에 넘기는 안을 고려해볼만하다. 또한 심의위원의 성별, 연령, 직업 등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심의위원 9명 전원은 50대 이상 남성이다.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특별다수제 도입

언론 정상화 방안도 필요하다. 보도기능이 있는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에 공정성 확보 장치를 마련하는 제도 개선이 논의돼야 한다. 특히, 방송법 개정을 통해 노사동수 편성위원회를 구성해 편성규약을 만들고 실현하도록 명시하면 지상파는 물론 종편의 편향적인 보도가 개선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설립은 야3당이 공동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에 포함돼 있다. 19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를 이룬 바 있지만 “민영방송에 편성위원회를 강제하는 건 위헌”이라며 종합편성채널이 반발하자 새누리당이 전체회의에서 법안 처리에 동의하지 않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에 포함된 특별다수제도 도입해야 한다. 특별다수제란 사장 선임 때 공영방송 이사 3분의 2이상 찬성을 해야 가결되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낙점한 인사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임명되는 현 구조를 개선하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거론된다.

▲ 지난달 28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장에 모여 의사진행발언을 진행했다. 사진=포커스뉴스.

종편 황금채널·의무송신 특혜 환수

신생사업자라는 이유로 붙은 특혜였다. 올해 다수 종합편성채널의 흑자전환이 예상돼 특혜를 환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편은 출범 당시 10번대 황금채널을 부여받아 시청률을 쉽게 높였다. 유료방송 플랫폼이 임의로 번호를 정하는 다른 유료방송 채널과 달리 차별적인 조치다. 1월1일 개국한 CJ E&M의 다이아TV의 경우 유료방송 업체에 따라 60~100번대 채널을 쓰고 있다.

사실상 의무송신을 하면서 채널제공 대가(전송 매출)를 받는 이중특혜도 환수해야 한다. 유료방송채널의 편성을 결정하는 건 유료방송 플랫폼의 고유권한이지만 종편은 모든 플랫폼에 의무적으로 송신하게 되면서 시청범위를 넓혀 시청률과 광고매출 증대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지상파의 경우 유료방송 플랫폼에 채널을 의무로 내보내는 의무송신채널(EBS, KBS1)로 방송법에 지정되면 무료로 채널을 공급해야 하지만 종편은 채널제공 대가를 받아왔다. 종편4사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의무전송 대가로 1286억 원을 벌어들였다. 같은 기간 종편4사의 광고매출액(2862억 원)의 5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 MBN의 경우 종편 개국 이전 보도채널 때 매출이 반영됐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속수무책 방통위, 직권조정 권한 확보

지상파와 유료방송 플랫폼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는 2014년부터 유료방송 플랫폼에 채널을 내보내는 대가인 재송신수수료(CPS)를 기존 280원에서 400원대로 올릴 것을 요구해 유료방송 플랫폼 진영과 마찰을 빚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방통위가 가진 법적 권한은 방송이 중단될 위기가 벌어지면 방송을 30일 동안 더 틀게 하는 ‘방송유지재개명령’뿐이다.

따라서 방송법 개정을 통해 방통위에 ‘직권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 방통위가 19대 국회 때 내놓은 방송법 개정안에는 직권조정 기능이 있었으나 2015년 11월 미방위 법안소위에서 지상파 관계자 비공개면담 직후 돌연 삭제됐다. 직권조정은 사업자들의 협상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지상파가 무료보편적서비스인데다 파국이 반복되면서 피해가 시청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정부개입이 불가피하다.

방통위의 직권조정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적정한 재송신 대가를 산정해야 한다. 방통위는 지난해 재송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재송신 대가 산정 시 기준만 제시하고 대가 산정을 하지 않아 업계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여론수렴을 거쳐 적정한 재송신 가격 기준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

시청 패턴이 실시간에서 비실시간(VOD)으로 옮겨가면서 실시간 재송신 뿐 아니라 VOD 가격 갈등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방통위가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는 점도 문제다. 2015년 지상파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 케이블 플랫폼)와 VOD 가격배분을 두고 갈등을 벌였으며, 재송신 갈등을 빚으면서 애먼 VOD공급을 끊으며 케이블을 압박해오고 있다.

통신의 방송장악 저지 방안 마련

통신3사가 유료방송 시장을 삼키고 있다. 2012년만 해도 SO의 점유율이 63.6%, IPTV·위성방송의 점유율이 36.4%였지만 지난해 3월 SO 49.4%, IPTV·위성방송 50.6%로 역전됐다. 설상가상으로 미래부가 지난해 12월 장기적으로 케이블의 권역을 폐지하고 유료방송 체계를 하나로 통일하는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발표해 시장에는 IPTV와 소수의 케이블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만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IPTV가 급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게 된 데는 통신사의 ‘결합상품’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 SO는 방송상품과 인터넷만 팔 수 있지만 IPTV는 핸드폰까지 묶어 할인을 했다. 통신시장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IPTV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통신시장의 지배력이 방송시장으로 전이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는 끼워 팔기 수준으로 전락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유료방송 제도개선의 핵심은 결합상품을 건드리는 데 있다. 결합상품 구성 품목에 제한을 두거나 특정 상품의 할인비율 등을 명시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방통위와 미래부는 SO에도 핸드폰 상품을 묶어 팔 수 있는 ‘동등결합’을 허용했지만 통신사가 제대로 지원할지 여부가 불투명해 한계가 뚜렷하다.

통합방송법 논의 국면에서 케이블의 지역성을 확보하고, 무분별한 인수합병이 이뤄지지 않도록 유료방송 인수합병 기준을 까다롭게 마련할 필요성도 있다. 2018년 일몰을 앞둔 유료방송 합산규제(유료방송 시장에서 한 사업자가 3분의 1이상 가입자를 유치할 수 없게 하는 규제)를 연장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빅데이터 ‘비식별화’ 전면 재검토

국민의 개인정보를 팔아 창조경제를 한다는 발상의 비식별화 조치가 골자인 가이드라인과 관련 법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비식별화는 예를 들어 ‘A카드사의 고객정보’파일이 있다면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는 모자이크처리를 하듯 지우고, 결제 내역 리스트만 보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정보와 대조하고 결합하면 개개인이 특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A라는 이용자의 통신정보, 카드결제정보, 의료정보 등을 하나로 묶게 되면 당사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비식별화’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지만 국제적으로는 ‘익명화’된 정보에 한해서만 가공을 허용하고 있다. 익명화는 비식별화와는 다른 개념으로 정보를 결합해도 개인이 특정될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가공한 데이터로 활용에는 다소 제약이 있다. 반면 비식별화는 정부 가이드라인에서조차 “식별이 되면 ‘재식별화’를 하라”면서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식별화가 골자인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대해 지난해 11월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보완요청을 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비식별화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요구사항 중 하나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전경련이 2013년 8월 미래부에 제출한 민원사항에 빅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이 있고, 이후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비식별화가 포함된 ‘규제프리존특별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12차례나 언급하는 등 직접적으로 챙기기도 했다.

세금으로 기사 구매? 정부광고법 개정

2015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2014년까지 5년간 혈세를 통해 나간 정부 집행 총광고비(정부부처 및 정부유관기관 등 포함)는 2조2254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부부처에서 세금을 통해 우호적인 신문지면과 방송프로그램을 발주하는 관행이 비일비재하지만 이를 국민들이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신문과 방송이 해당 정부부처의 금전적 지원 사실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의 홍보로 이어지는 이 같은 관행은 사실상 여론조작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지난해 7월 발의안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안’(정부광고법, 대표발의 노웅래 의원)은 정부광고 집행을 투명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핵심은 제10조 정부기관 등의 유사 정부광고 금지 조항이다. 10조는 “정부광고 형태 이외에 언론사의 지면이나 방송시간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일체의 홍보행태를 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지면이나 방송시간을 구매하면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조항은 정부부처의 여론조작을 방지하고 김영란법과 함께 언론계의 비윤리적 영업 관행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문 팔기 위한 교육? 진짜 미디어 교육 실시해야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자유학기제를 도입하면서 미디어 교육이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은 요원하다. 각 부처가 각개격파를 해 사업이 중복되고, 주객전도가 돼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컨트롤타워부터 정비해야 한다. 언론진흥재단과 주요 일간지들은 NIE(신문활용교육)를 실시하고 있으며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은 방송체험 교육 위주로 미디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인터넷진흥원도 미디어 교육을 한다. 부처가 찢어진 것도 문제지만 각 부처의 미디어 교사 임명 절차와 자격도 제각각이다. 미디어 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은 컨트롤타워 중심으로 미디어 교육정책이 편성된다. 영국의 오프콤, 프랑스의 국립미디어센터, 핀란드의 국립시청각센터가 대표적이다.

▲ 시청자미디어재단의 미디어교육은 미디어 체험교육이나 활용교육에 머물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사업자를 위한 미디어 교육이 되면 주객이 전도될 우려가 크다. 언론재단의 미디어 교육은 신문사업자와 연계하고 있고 시청자미디어재단은 지역 민방 등과 협력하고 있는데, 단순히 활용하고 체험하는 게 아니라 뉴스의 이면을 이해하고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의 개입이 최소화돼야 한다. 언론진흥재단의 이사장과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임명에는 정부의 입김이 닿는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일선 미디어 교사들에게 정부 정책에 대한 내용을 교육하지 못하게 해 논란이 됐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는 대형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정부 국정홍보영상을 틀기도 했다. 미디어교육의 현주소다.

교과목에 미디어를 추가하는 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교육과정 전반의 개편이 맞물려야 한다. 프랑스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는 큰 범주 내에 미디어 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은 시민의식 수업을 통해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이유를 배우고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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