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보도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가 보도국 밖으로 쫓겨나고, 촛불집회 현장에서 마이크 태그도 못 달고 중계방송을 하다가 시민들 비난에 쫓겨났던 MBC 기자들.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고백했던 MBC 3년차 막내 기자 3명이 결국 경위서를 쓰게 됐다.

MBC 기자들에 따르면 최기화 MBC 보도국장은 6일 아침 편집회의에서 뉴스데스크의 ‘태블릿PC 보도가 뭐가 문제냐’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튜브에 반성문을 올린 곽동건·이덕영·전예지 기자는 11일까지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요구받았다.

▲ 지난 4일 유튜브에 ‘MBC 막내 기자의 반성문’을 올린 (왼쪽부터) 이덕영·곽동건·전예지 기자.
앞서 지난 4일 곽 기자 등 3명은 유튜브에 ‘MBC 막내 기자의 반성문’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고 ‘보도 정상화’를 위해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최기화 보도국장 사퇴, 해직·징계 기자의 복귀를 촉구했다. (관련기사 : MBC 막내 기자들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다”)

지난해 11월19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중계하다 시민들의 비난과 조롱을 듣고 철수했던 사회부 3년차 곽동건 기자는 “현장에 나간 기자는 마이크 태그조차 달지 못했고 실내에 숨어서 중계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며 “취재 현장에서 우리를 보고 ‘짖어봐’ 하는 분도, ‘부끄럽지 않냐’고 호통을 치는 분들도 많아 사실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이덕영 기자는 “뿐만 아니라 최근 MBC는 JTBC가 입수한 태블릿의 출처에 대해 끈질기게 보도하고 있다”면서 “스스로 ‘최순실 것이 맞다’는 보도를 냈다가 다시 ‘의심된다’고 수차례 번복하는 모양새도 우습지만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추측에 추측으로 기사화하는 현실에 우리 젊은 기자들은 절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MBC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등의 변호인들과 일부 친박·극우 매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며 “태블릿PC와 관련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관련기사 : MBC, 최순실 태블릿 PC에 대한 ‘집착’ 이유 있다)

그동안 김희웅 MBC 기자협회장 등 MBC 보도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기자들이 보도국 밖으로 쫓겨나거나 회사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던 점에서 이들 3명에 대한 사측의 징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MBC 40기 기자 12명(강나림·고은상·김재경·박종욱·서유정·송양환·오현석·장인수·정진욱·조국현·조재영·조현용)은 후배들에 대한 회사의 경위서 제출 요구에 대해 성명을 내고 “막내들이 만든 영상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제출한 경위서”라며 “최순실 사태 이후 우리 뉴스 시청률을 살펴보라. 징계는 이미 시청자들로부터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쓴소리에 귀 기울이고,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우리도 후배들의 심정에 백분 공감하고 있다”며 “조직의 손발과 같은 이들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뉴스를 회복시키자며 보듬을 일”이라고 강조했다.

▲ 6일 서울 상암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최기화 보도국장 사퇴를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했다. 최기화 국장(오른쪽)과 오정환 취재센터장(가운데)이 이들을 지나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박성제 MBC 해직기자는 5일 “아마 이 동영상을 만든 세 후배는 중징계를 받겠지만 이 동영상을 보고 나는 MBC 뉴스를 되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격려했다. 박성호 해직기자도 “아프지만 희망을 봤다. 복직해 이들과 일할 생각하니 든든하다”며 “사측이 이들에게 칼을 든다면 시민들이 상암동 MBC로 촛불 들고 몰려가 지켜내자”고 말했다.

곽동건 기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미 너무 늦었지만, 동기들과 뒤늦게 반성문을 썼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사라져 버린 이곳에서. 지금까지 그랬듯 새해에도 잘 견뎌내겠다”고 다짐했다. 전예지 기자도 “너무 늦었단 걸 안다. 늦은 만큼 더 반성하고 노력하겠다. 절망하더라도 포기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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