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에 뇌물공여로 연루된 재벌 대기업만 53개입니다.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 등 53개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했습니다. 이들은 출연금에 댓가로 재계 일반이 요구하는 정책과 자신의 민원 처리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박영수 특검이 삼성그룹과 제일모직 간 합병 특혜 제공을 둘러싸고 삼성그룹을 제3자 뇌물공여죄의 공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재벌총수 구속과 전경련 해체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삼성전기에서 엔지니어로 10여 년간 일했던 이상수씨가 촛불문화제에서 한 발언을 기고로 보내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삼성에서 10년 넘게 엔지니어로 일했던 이상수라고 합니다. 몇 해 전에, 제가 일했던 바로 그 라인에서도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생겼습니다. 반올림은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반올림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 지난 1월3일 열린 ‘재벌총수 구속과 전경련 해체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 발언을 한 이상수씨. 사진=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저에게 반도체 산업의 직업병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하이닉스 반도체에서 일했던 대학 친구는 공장에서 쓰러져 10년 가까이를 집에서 요양해야 했습니다. 반올림에 제보된 78명의 사망자 명단에는 제 일 년 후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삼성반도체/LCD에서만 228명의 피해자가 반올림에 제보해 왔습니다. 

병들고 죽어간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삼성은 아직도 직업병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2014년 이건희가 쓰러지고 이재용의 3대 세습을 준비하던 삼성이, 사회적 여론을 의식해서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을 합니다. 그리고, 지난 해 사회적 중재기구인 조정위원회가 권고를 합니다. ‘삼성이 천억원을 내서 직업병 공익재단을 만들고 이를 통해 보상과 예방을 실시하라’구요.

하지만 삼성은 이 권고를 무시하고 대화마저 단절한 채 자체보상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밟습니다. 말이 보상이지, 비밀유지를 조건으로 피해자에게 돈을 건네는 것입니다. 백혈병에 걸린 황유미에게 500만원을 주고 없던 일로 무마하려 했던 그 못된 버릇을 더 확대해서 반복한 것입니다.

이렇게 직업병을 없는 것으로 만든 덕분에 지난 해 삼성전자가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만 1009억원이라고 합니다.

▲ 사진=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더 기가 막힌 사실이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조정위 권고가 나온 지난해 7월과 협상이 최종 결렬되어 반올림이 노숙농성에 돌입하는 10월 사이에, 삼성의 사장과 전무가 독일에 가서 최순실에게 뇌물을 건낸 것입니다. 최순실의 독일 회사 전 대표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연구비 지원’과 ‘노조문제 협력’을 약속받고 삼성이 최순실에게 돈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최순실은 이 돈으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생활비도 쓰고, 십 억이 넘는 말도 샀습니다.

삼성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고 1급 장애를 얻은 한혜경님과 그 어머니 김시녀님은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요. 한혜경님이 뇌종양 수술로 잃어버린 균형 감각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운동이 바로 승마라고 합니다.

정작 말이 필요한 한혜경은 모른체하고, 정유라에게는 값 비싼 말을 사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삼성을, 정말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 사진=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지난 재벌 청문회에서 이재용이 그랬습니다. 황유미를 알고 있다고,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미안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청문회 이틀 후 삼성에서 사내하청으로 일했던 한 노동자는 78번째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이틀 연속으로 삼성반도체 공장을 짓던 한 노동자가 질식해서, 또 다른 한 명은 추락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간단한 가스측정기가 있었다면, 추락방지막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없었을 죽음입니다. 아니 공기를 단축한다고 그렇게 몰아대지만 않았어도 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살인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삼성직업병 문제는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삼성은 지금 이순간에도 살인을 멈추지 않는 살인기업입니다. 이 끔찍한 기업의 책임자인 이재용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합니다.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투명하고 배제 없이 보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시행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반올림의 싸움을 응원하고 연대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의 연대로 강남역 삼성본사 앞 반올림 농성이 452일째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준 이름 모를 수많은 평범한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재용의 범죄행위를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삼성직업병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반올림의 농성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재용의 3대 세습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되는 세상이 되도록 반올림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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