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최순실씨가 자신의 국정 농단을 폭로했던 '태블릿 PC' 증거능력을 없애는 데 재판 전략을 집중하고 있다. 모든 혐의를 인정해왔던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도 돌연 입장을 바꾸고 이에 가세함에 따라 '정호성 입막기'가 가동되는 게 아닌지 의혹이 제기된다.

정호성 전 비서관의 법률대리인 차기환 변호사(우정합동법률사무소 대표)는 29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재판장 김세윤)에서 열린 피고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 등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제2차 공판준비기일에 참석해 "'JTBC 태블릿 입수경위 절차가 적법한 것이냐', '태블릿 파일이 오염된 적이 없냐' 하는 것은 정호성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감정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판부에 태블릿 PC에 대한 증거 감정을 신청했다.

▲ 12월19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는 지난 19일 제1차 공판준비기일 때부터 최순실 변호인단이 요구해 온 주장이다. 최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법무법인 동북아)는 "검찰에 실물을 보여달라 누차 요청했지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면서 "이 부분은 전체 (국정농단)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증거로 신청한다"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정 전 비서관의 증거신청이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지난 27일까지 태블릿 PC에 관해 문제제기를 해온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정 전 비서관의 입장은 지난 28일, 2차 공판준비기일이 열리기 하루 전 돌변했다. 29일 공판에 참석한 차기환 변호사는 지난 28일 선임됐고 선임계도 당일 제출됐다. 지난 1차 공판준비기일엔 강갑진 법무법인 충무로 변호사가 정씨 법률대리인으로 참석했다.

강갑진 변호사는 지난 1차 공판기일에 태블릿 PC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 강 변호사는 정씨가 혐의 대부분을 자백하고 있으며 '대통령 지시에 따랐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차기환 변호사.(사진=TV조선 캡쳐)

차 변호사는 29일 이 입장을 전면 부정했다. 정 전 비서관의 자백에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미 진술한 바 있는 대통령 공모 여부도 인정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태블릿 PC 입수의 적법성 여부도 처음 강조하기 시작했다.

차 변호사는 "정호성은 2012년 대선 캠프 동안 최씨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문건을 전달한 것 자체는 맞다. 그 문서가 태블릿 PC에서 나왔고 그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 맞다면 문건 전달 행위 자체는 인정한다"고 말했다. 태블릿 PC가 최씨의 것이 아니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자백'에서 한 발 비켜난 입장이다.

'대통령 지시에 따랐다'는 취지의 진술에 대해 차 변호사는 "대통령 공모는 특정해서 말한 적이 없으니 그 점은 부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일 직전인 12월8일, JTBC 해명보도와 취재팀장의 인터뷰 기사 간 모순되는 점이 있다"면서 "건물 경비업체가 있는데 임의로 반출했다고 하면 적법한 절차에 따른 증거가 될 수 있는가. 검찰도 다 아는 사실일 텐데 적법 절차에 따라 입수된 것인지는 다퉈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비서관이 일관되게 자백 입장을 견지해온 점, 공판준비기일 하루 전 선임돼 정씨를 단 한 번 접견해 본 변호사가 정씨 법률대리인으로 참석한 점 등을 고려하면 정 전 비서관의 입장 선회는 의뭉스러운 변화다.

검찰은 이에 "최순실 변호인과 다를 바 없는 의견이다", "(법정이) 정호성의 재판정인가 대통령의 재판정인가 명확히 해달라"면서 노골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검찰은 "지난달 20일 체포된 후 한 달 이상 지났다. 정호성과 13차례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하면서 정호성은 공소사실 일체를 자백했고 대통령과 공모관계를 인정했고 정호성 변호인이 증거에 동의한다는 취지도 말한 상황"이라면서 "1회 공판준비기일에도 자백 취지로 말했다. 이로부터 10여 일 지난 2차 공판기일 하루 전날 변호인이 교체됐다. 어제까지 하기로 한 증거인부서(검찰 제시 증거에 대해 인정 여부를 표시한 서면)도 제출한 바 없이 법정에서 태블릿 PC를 문제 삼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은 이어 "기록 파악도 채 되지 않고 피고인 접견도 충분히 못했다면서 대통령 공모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니 정호성의 재판정인가 대통령의 재판정인가"라 반문했다.

정호성 변호인 교체한 날, 최순실 ‘태블릿 PC’ 국과수 감정신청해

정 전 비서관의 입장 선회는 최씨 측의 압력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태블릿 PC'는 정 전 비서관의 범죄 사실과 관련된 증거기 때문이다.

▲ 정호성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이 12월25일 오후 '최순실 등 일반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김세윤 재판장은 지난 19일 공판준비기일에서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공소사실과 관계있는지 모르겠다. 정호성 피고인만 관련된 증거사실로 보인다"면서 최씨 측 태블릿 PC 감정 신청을 거부하는 취지의 답을 내놓은 바 있다.

최씨가 태블릿 PC의 증거능력을 다투려면 정 전 비서관을 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 전 비서관이 차기환 변호사를 선임한 지난 28일, 최씨 변호인단은 태블릿 PC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혹은 카이스트, 서울대학교 등에 맡겨달라며 재판부에 요구했다. 최씨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검찰의 태블릿 PC 입수 경위 공개도 요구했다.

최씨 변호인단은 2차 공판준비기일에도 '태블릿 PC 불법 입수' 의혹을 재판부에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이경재 변호사는 "공무상 비밀 누설죄로 처벌받으려면 어떤 경위로 (태블릿 PC가) 최순실에게 전달됐는지 나타나야 한다"면서 "태블릿 감정 신청에 대해 굳이 검찰이 거부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이 문제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자청해서 감정신청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이 자비로 산 태블릿 PC를 직접 법정에 들고 와 재판부에 보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결정을 추후로 미뤄 논 상태다. 김세윤 재판장은 "재판 관련 증인이 70명 가까이 되고 유무죄 심리가 급하다고 판단된다. 태블릿 PC는 최서원의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고 양형 관련 내용이기 때문에, 양형 신청에 대해서는 결정을 보류한다"면서 "최서원 피고인은 정호성 피고인의 증거조사 절차에 참여해 (태블릿 PC 관련 증거물을) 볼 수 있다. 감정 신청, 구석명 신청 결정은 그때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 업무일지 17권 사본 △대기업 회장 독대할 당시 작성된 대통령 말씀자료 사본 △최순실-노승일 간 통화녹취록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최순실과 고영태, 박헌영 등 측근 간의 통화 녹취록은 향후 추가 제출할 것이라 밝혔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 및 더블루K 관계자 16명 △플레이그라운드(최씨 차명회사) 등 관련 직원 4명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 4명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자 5명 △대기업총수를 포함한 기업 관계자 23명 등 52명을 재판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경재 변호사는 검찰 측 증인에 대해 "이 사람들이 다 공소사실과 관련된 실행행위자"라면서 "박 대통령, 최순실, 안종범 등 상층부만 법 심판대에 올라가있고 실제 행위자들은 일절 입건되지 않았다. (이들이) 입건돼야 할 사람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제1회 공판기일은 2017년 1월5일 오후 2시10분에 열릴 예정이다. 이날은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서면 증거 조사가 이뤄진 후,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등 전경련 관계자 증인 신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승철 부회장은 피고인들의 기업 뇌물 공여 관련된 직권남용권리방해행사 혐의 증거인멸교사죄 관련해 신문을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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