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한 수사는 어느 수준까지 확대될까. 박영수 특검팀이 '최순실 국정농단 배후'로 지목되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직권남용 혐의 규명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특검의 칼 끝이 김 전 실장의 국정농단 방조, 문화계·언론계 외압행사 등에까지 향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검팀은 26일 오전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증거 확보를 위해 김 전 비서실장 및 조윤선 문체부 장관 자택, 문화체육관광부 사무실 및 장관 집무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다. 김 전 실장과 문체부 관계자의 강제 수사가 동시에 진행됐다는 점에서 특검은 문체부 인사 외압 혐의에 수사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물이 든 상자를 가져가고 있다.ⓒ민중의소리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26일 오전 브리핑에서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 자택이 동시 압수수색된 것에 대해 “두 사람의 공통 혐의에 대한 수사가 먼저 시작한 것으로 봐도 된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김 전 실장 및 조 장관의 휴대전화 압수 여부와 관련, “일반적으로 (휴대전화는) 압수수색영장에 당연히 포함돼 있다”고 밝혔으나 “압수수색 당시 김 전 실장이 자택에 있는 지 여부는 보고 받지 못했다. 휴대전화를 압수했는지 여부도 아직 보고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해당 압수수색 영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명시돼있냐는 질의에 이 대변인은 “피의사실 관련이라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의해 이미 직권남용권리방해행사죄로 입건된 바 있다. 김 전 실장이 2014년 10월 당시 김희범 문체부 1차관에게 1급 공무원 6명의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정황이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특검은 김 전 실장의 혐의가 기소까지 이어지지 못한데 따라 추가 조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 이규철 특검 대변인이 12월26일 오전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포커스뉴스

특검 조윤선·한국문예위까지 수사…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 돌입했나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 및 예술 작품 검열 사태 등을 둘러싼 직권남용 혐의 수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두 사람의 주요 공통 혐의이자 압수수색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도 연루된 사건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업무일지 수첩)을 통해 정황이 확인된다. 2014년 9월5일 비망록에 “다이빙 벨 - 교문위 - 국감장에서 성토 당부 신성범 간사, 부산영화제 MBC 이종인 대표 이상호 출품”이라는 내용이, 다음날인 6일엔 “다이빙 벨 - 다큐 제작·방영 - 여타죄책”이라는 내용이 기재돼있다. 세월호 생존자 구조 작업의 무능함을 비판한 다큐 ‘다이빙벨’의 영화제 출품을 다각도로 저지하려 한 정황이다.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은 김 전 실장이 이끈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에 출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동석한 2014년 10월2일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비망록)는 논의가 이뤄졌다. 2015년 1월2일 회의에서 수석비서관들은 “영화계 좌파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이 필요하다(경제)”라고 논의했다. 이 지시가 정무수석실, 교육문화수석실을 통해 문체부 및 문체부 산하 조직들에까지 하달됐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에서 압수수색 중인 가운데 대문에 있는 명패가 보이고 있다.ⓒ민중의소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창작산실 지원산업’, ‘문학창작기금’ 등과 관련해 혐의가 특정될 수 있다.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당시 심사위원 5인에게 창작산실 지원사업으로 이미 선정됐던 연출가 박근형의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선정에서 제외할 것을 종용한 혐의를 사고 있다. 우수 작품 100편에 1000만원씩 지원하는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에서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의 작품이 의도적으로 배제됐다는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일례로 이윤택 작가는 희곡 분야에서 100점을 받은 1순위 후보였음에도 결국 선정에서 탈락했다.

지난 12일 12개 문화예술단체는 위 내용을 근거로 김 전 실장, 조 장관, 송광용 전 교육문화수석비서관,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9인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업무방해 혐의로 특검에 고발했다.

“‘관련없다’ 법꾸라지 김기춘 잡으려면 특검이 수사 의지 보일 수밖에 없다”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한 추가 혐의 적용은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추가적인 고발이 잇따르고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인지했음에도 방조했다는 직무유기 혐의 적용 주장이 거세게 제기되지만 김 전 실장이 부인하는 한 입증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김 전 실장은 지난 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 출석해 “최순실을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이름은 안다”라고 답하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방조한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꼬리를 잘랐다. 비망록으로 드러난 언론계·문화계·사법부 등에 대한 청와대 비서실 외압 행사 정황에 대해서 김 전 실장은 자신의 지시가 아니라 김 전 민정수석의 “주관적 생각이 가미된 것”이라 주장해왔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현재 특검이 인지한 추가 혐의 중 하나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인사청탁’이다. 특검은 지난 21일 전인 수사준비기간 중,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을 사전접촉해 2013년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김기춘 전 실장을 통해 인사 압력을 행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따르면 2013년 3월 김 전 차관은 유 전 장관에게 문체부 전 고위간부 A씨를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 전장관이 A씨의 뇌물수수 전력을 이유로 청탁을 거절하자 이후 김 전 실장이 유 전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임명을 재차 요구했던 것이다.

김 전 실장은 A씨의 범죄 전력을 듣고 이내 전화를 끊었다고 알려졌으나, 전화를 통한 김 전 실장의 지시가 과연 어느 선까지 개입된 청탁인지 규명될 필요가 있다. 특검은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연속 김 전 차관을 소환조사하는 동안 이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 포괄적인 수사가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특검은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입건한 피의 사실 외에 구체적인 피의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 대변인은 김 전 실장의 추가 혐의와 관련, “앞으로 수사가 진행될 경우에 대해선 말하기 힘들다”면서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수사 진행 사항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밝혔다.

김 전 실장의 ‘혐의 꼬리 자르기’와 관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이광철 변호사는 26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특검의 수사 의지만 있으면 (추가 고발건과 관련) 수사에 나설 수 있다”면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직접 증거가 아니기 때문에 보완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나무만 보아선 안되고 숲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비서실회의 운영구조나 비서실장의 권한 등을 고려하면 비망록 기록이 김 전 실장의 지시와 분리된다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변호사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 스타일, 박근혜 대통령의 캐릭터 등도 함께 봐야 한다”면서 “장경욱 변호사 표적 징계, 언론 탄압,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예술작품 검열,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 일정 개입 등 비망록에 적힌 것들은 실제로 그대로 일어났다.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일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은 김기춘 전 실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으로 특검에 고발해왔다.

장경욱 변호사는 자신에 대한 표적 징계·감시를 지휘·관철했다는 이유로 김 전 실장을 특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2014년 11월3일 서울중앙지검이 이들을 ‘국가보안법 사건 등의 피의자에게 진술 거부 또는 혐의 부인을 요구했다’며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신청을 한 이래로 지난 5월까지 장 변호사와 법정다툼을 벌여왔다. 2014년 9~10월 비망록엔 청와대 비서실이 장 변호사에 대한 수사 및 형사처벌을 검토했고 징계 계획을 세운 정황이 적시돼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 오병윤 전 원내대표 등 과거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6인은 지난 21일 통합진보당 해산에 청와대가 관여했다며 김 전 비서실장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각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소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에는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무죄 선고 뒤 추가 증인 신청 및 청구 사유 변경을 논의한 내용이 명시돼있다. 헌재와 청와대 비서실 간의 교감이 드러난 대목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포함한 언론단체들도 지난달 21일 김기춘 전 실장을 포함, 박 대통령, 김성우 전 수석,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등 4인을 “비선실세 비리, 대통령과 청와대의 잘못 등을 은폐하기 위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며 직권남용죄 및 방송법 위반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구체적 혐의는 △정윤회 문건 보도 관련, 조한규 당시 세계일보 사장 부당 해임에 압력 행사 △KBS 방송편성에 부당 개입 △KBS 이사 및 사장의 인사권 행사 과정에 압력 행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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