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반 동안 검찰의 ‘표적 징계 시도’와 싸워 온 장경욱 변호사가 표적 징계의 몸통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고발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수사·징계를 지휘한 정황 근거가 확인됨에 따라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박영수 특검에 고발장을 접수하기 직전인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직권남용권리방해 및 무고죄로 고발할 것이라 밝혔다.

▲ 12월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민변 장경욱 변호사 부당징계 시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특검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중의소리

김 전 실장의 혐의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란 권한을 남용해 고발인에 대한 부당징계를 지휘·관철했다는 점이다. 고발인은 장경욱 변호사와 민변이다. 이들은 2014년 11월3일 서울중앙지검이 이들을 ‘국가보안법 사건 등의 피의자에게 진술 거부 또는 혐의 부인을 요구했다’며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신청을 한 이래로 지난 5월까지 검찰과 법정다툼을 벌여왔다.

김 전 실장의 징계 지휘 정황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업무일지 수첩)에서 확인된다.

2014년 9월11일 비망록엔 “장경욱 변 철저 고발 건 조사 – 안타깝다 – 변 정지 – 법무부 징계”라고 적혀있다. 민변은 '안타깝다' 에 대해 "(장 변호사 수사 건이) 형사사건으로 진행하지 못한 점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변 정지'는 변호사 자격 정지의 준 말로 보인다. 검찰은 이 논의가 이루어진지 2개월 여 후인 11월3일 대한변협에 징계개시를 신청했다.

2014년 10월26일 비망록엔 “민변 변호사 징계 추진 현황 보고 요”기록이 발견됐다. 청와대 비서실이 장경욱·김인숙 변호사를 포함한 민변 변호사들을 표적 감시하고 징계를 추진해왔다는 정황이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징계 신청에 나설 때부터 ‘표적 징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징계명분이 설득력이 부족한 데다 그 대상이 사정기관의 간첩 사건 조작 사실을 밝혀낸 장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대한변협은 ‘정당한 변론권 행사였다’며 검찰의 징계신청을 기각했고 곧이어 낸 이의신청도 기각했다. 법무부는 2015년 5월11일 검찰이 낸 이의신청을 받아들여줬으나 장경욱·김인숙 변호사가 무효를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4월27일 서울행정법원은 두 변호사에 대한 징계 무효를 확인했다.

장 변호사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및 ‘홍아무개씨 간첩 조작 사건’에서 두 피고인의 무죄를 이끌어낸 바 있다. 특히 유우성씨 사건에서 장 변호사는 국정원 및 검찰이 중국 공안 공문서 위조 등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장 변호사는 “홍아무개씨가 간첩사건에서 무죄를 받은 지 일주일 정도 뒤 ‘장경욱 이름이 적시된 수사를 철저히 하라, 변호사 업무 정지 시켜서 법무부에서 징계하라’ 지시가 내려온 것”이라면서 “김기춘 씨가 지금 현재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최순실을 몰랐다고 하지만 국정농단 세력들을 위해 앞장서서 방패막이로 부역자 역할을 한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다.

장 변호사는 표적 수사 정황이 확인된 현재 심경으로 “박근혜 정부에 의해 피의자가 됐었지만 박근혜, 김기춘이 피의자가 되는 시대를 맞았다”면서 “정의가 세워지고 상식이 통하는 민주적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 장경욱 변호사의 법률대리인 이광철 변호사(왼쪽)와 고발인 장경욱 변호사(오른쪽). 사진=손가영 기자

민변은 추가 고발도 검토 중이라 밝혔다. 장 변호사의 고발은 그에 대한 표적 수사 지휘 정황이 명백히 드러나 바로 법적 조치에 나서게 된 것이지 그 외 비망록에서 ‘민변 표적 감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는 점에서다. 민변은 이들 기록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라 밝혔다.

2014년 6~8월 동안 비망록엔 “민변 한택근(61년생, 경신고-서울대 22기) 부회장 이상호(18기) 이석범(22기) 정연순 (23기)”, “민변 활동 변호사 ①정부 관련사건 수임 ②리크루트 ③ 펀드(기업, 아름다운가게) ex) 교육부 지평에 의뢰” 등이 등장한다. 민변 집행부의 과거 이력 및 과거사 사건 수임 여부 등을 파악한 흔적이다. 검찰은 2015년 ‘과거사 사건 수임 제한 위반’ 혐의로 일부 민변 소속 변호사를 기소한 바 있다.

위헌정당해산 및 세월호 유가족 측 변호사를 감시한 정황도 있다. 2014년 9월1일 비망록엔 “정당해산 및 세월호 유족 측 변호사”, “위헌정당해산 관련 통진당 측 주요 변호사 : 김선수, 이재화, 김진, 이재정, 이광철”, “세월호 유가족 측 주요 변호사 : 권영국, 박주민, 김용민, 오영중”등이 적시돼있다.

민변은 이에 대해 “청와대가 정당해산 및 세월호 유족 측 변호사 명단(출신지역, 학력, 주요경력 포함)을 확인하고 있다”며 “청와대가 이들의 이력 및 성향을 파악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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