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LCD 공장에서 직업병으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또 발생했다.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유해화학물질을 다뤘던 노동자가 재직 중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4년여의 투병 끝에 사망했다. 삼성 반도체·LCD 직업병 혹은 직업병 추정 사망자는 지금까지 파악된 수만 78명에 달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18일 보도자료를 내 “지난 8일 새벽 한 시경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일했던 황아무개씨(52)가 악성림프종으로 사망했다”면서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LCD 직업병 피해자 중 78번째 사망”이라고 밝혔다.

▲ 2016년 11월24일 기준, 반올림이 파악한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제보자 현황 요약. 사진=반올림

황씨는 지난 2011년 1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삼성전자 화성공장 15, 16 생산라인의 ‘CCSS룸(Central Chemical Supply System. 화학물질 중앙 공급 시스템)’에서 일했다. CCSS룸은 해당 반도체 생산라인에 쓰이는 각종 화학물질을 보관·공급하는 곳이다.

황씨는 일상적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일했다. 황씨의 업무는 화학물질이 담긴 드럼통을 운반해 공급 설비에 연결하거나 드럼통 위에 고인 화학물질 및 룸 내부로 흘러나온 화학물질을 닦아내는 일이었다. 황씨의 산재 신청 결과 확인된 회사 제출 자료에 따르면, 황씨가 취급한 물질 39종 중 인체유해성이 확인된 물질은 27종, 발암물질은 3종이었다. 나머지 8종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황씨는 1년 3개월 근무 끝에 ‘피부T세포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임파선암인 림프종의 일종으로 면역체계에 발생하는 피부암이다. 2013년 1월 퇴사 후 투병 중이던 황씨는 지난 10월 ‘말초성 T세포 림프종’ 추가 진단을 받았고 이 병이 급격히 악화돼 숨을 거뒀다.

황씨는 삼성전자 정규직원이 아닌 삼성전자 협력업체 한양ENG의 자회사 ‘한양CMS’ 소속 노동자였다. 이 같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더 높다. 반올림은 “(반도체 공정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학물질을 운반ㆍ관리하는 일,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있어야 하고, 그 일은 보통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맡게 된다”면서 “위험이 외주화 되는 것”이라 지적했다.

▲ 황씨가 투병 중이던 2014년 11월17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 응했던 황씨의 모습. 사진=이하늬 기자

황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승인 여부도, 삼성전자 측의 보상도 받지 못한 상황이다. 황씨는 2014년 10월 반올림의 도움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공단은 2년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승인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는 자체 보상위원회를 꾸려 입사 시점, 재직 기간, 질환 종류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일부 피해자에게 직업병 피해에 대상 보상을 한시적으로 해준 바 있다. 2011년 11월 입사한 황씨는 ‘2011년 1월1일 이전 입사자’라는 삼성전자 측 보상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보상 신청을 할 수 없었다.

반올림은 “결국 정부와 회사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고인은 세상을 떠났다. 질병에 따른 경제적ㆍ정신적 고통은 또다시 고스란히 유족들의 몫이 되었다”면서 “삼성은 독단적인 보상기준을 철회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 절차를 마련하라.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의 죽음을 신속하게 산업재해로 인정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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