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0명 집단 탈퇴

지난 6월, ‘목소리 내는 노조’를 만들기 위해 모인 세브란스 병원 청소노동자들은 136명이었다. 보름도 안 돼 90여 명이 돌연 탈퇴했다. 이른바 ‘집단탈퇴’다. 동일한 양식의 탈퇴서가 일거에 노조로 전달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8월 말엔 중환자실 청소노동자 8명 전원이 팩스로 탈퇴서를 보냈고 신입직원 6명, 오후조 6명이 차례대로 동시에 탈퇴했다.

2. “민주노총은 안된다”

“복수노조 만들어도 되는데 민주노총은 절대 안된다.” 7월 노조 설립 전, 세브란스 청소용역업체 태가BM의 전 관리소장이 말했다. 이 발언이 언론에 폭로된 후 소장은 옷을 벗었다. 과연 소장의 책임일까. 소장은 “세브란스병원은 민주노총은 절대 안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소장의 퇴사 후에도 반장들은 ‘민주노총 가입하면 나랑 같이 일 못한다’고 직원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집단 탈퇴자 중 한 명이 노조에 전한 말이다.

3. 피켓팅값 100만원

청소노동자가 피켓 한 번 드는 값은 '100만원'이다. 세브란스병원이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업무방해 가처분신청’ 내용이다. 명목은 업무방해다. 병원은 두 달 간 ‘민주노조 인정하라’며 병원 로비에서 피켓팅을 하는 이들을 향해 고소·고발을 진행했다. 자기 사업장에서 시위를 했음에도 청소노동자 8명에겐 ‘특수건조물침입’ 혐의가 적용됐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노동조합하기 정말 힘들다.” 2년 넘게 세브란스 병원 청소일을 해 온 서아무개씨(59)의 말이다. 서씨가 말하는 노동조합엔 ‘민주노총’이 생략돼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서경지부)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5개월 간 겪은 ‘노조 탄압’은 백화점식이라 할 만큼 다양했다. 이들은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브란스병원에 ‘노조 인정’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6월 중순 처음 서경지부를 찾았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노조’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였다. 당시에도 노조는 있었으나 서씨는 “단협이라는 게 뭔지, 교섭을 하는지 안하는지, 교섭에서 무슨 얘길 하는지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임금 좀 올려달라 얘길 해도 노조가 ‘회사가 임금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는 식으로 잘라버렸다”고 말했다. 당시 이들은 한 달에 두 번 쉬었고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일했다. 이렇게 일해 받는 임금은 160만여원, 시급은 최저시급에 준하는 6030원이었다. ‘같은 업체 직원인데 왜 고대 안암병원 미화원은 시급이 6950원이고 우리는 최저임금인가’ 세브란스 청소노동자들은 답을 ‘민주노총 노동조합’에서 찾았다. 이들은 서경지부에 노조 분회를 설립한 고대 안암병원 청소노동자들에게서 ‘교섭력’을 봤다.

노조 설립 움직임이 시작된 지 한 달 후인 7월13일, 세브란스 청소노동자들은 출범식을 열었다. 애초 136명이 가입서를 냈으나 출범 시기엔 약 120명으로 줄었다. 열다섯 남짓한 인원이 자발적으로 탈퇴한 결과일까. 이들은 준비 시기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90명 집단 탈퇴’가 출범식 전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120명은 서경지부 활동가와 조합원이 다시 설득에 나선 끝에 회복한 수다.

▲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10월7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청소노동자 노조 파괴 직접 개입 세브란스병원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노조 방해, 은밀하게 깨알같이

전 소장의 ‘민주노총은 안돼’ 녹음파일은 90명 집단탈퇴의 이유를 잘 보여준다. 서경지부 가입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소장, 반장들은 직원 개별 면담을 하는 등 회유·협박에 나섰다. 최다혜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당시 무슨 일인가 싶어 알아봤더니 소장·반장이 ‘민주노총은 절대 안 된다’, ‘돈(수당) 더 올려주겠다’며 사인을 받았다고 들었다”면서 “제대로 내용을 알지 못하고 탈퇴한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맡은 구역 내에서만 움직인다. 청소 구역이 아닌 관리 구역을 할당받는 반장은 업무와 동선이 자유롭다. 220여 명 중 반장은 오전조 5명, 오후·야간조 각 1명 등 총 7명이다. 이들이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을 개별적으로 회유한다는 것이 서경지부 및 조합원들의 공통적 주장이다. 반장의 회유는 시시때때로, 그리고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제지하기도 어렵다.

직접 회유를 받은 직원은 서씨에게 ‘탈퇴를 해야 위험수당 2만5천원을 4만원으로 올려준다’, ‘이 구역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탈퇴해라’ 등의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서씨는 중환자실 8명 전원, 신입 직원 6명, 오후조 6명의 집단 탈퇴는 이런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최 조직차장은 조합원으로부터 “모 반장이 ‘당신들 때문에 우리 조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고 압박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압박이 누적돼서 지부를 탈퇴하는 청소노동자도 적지 않다. 최 조직차장은 탈퇴 경위를 물어볼 때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 '3개월 쪼개기 계약' 논란을 일으킨 근로계약서.

이 과정에서 ‘3개월 쪼개기’ 계약도 생겼다. 사측이 신입 직원들을 대상으로 '3개월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후 남은 9개월여를 다시 계약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틈새’ 회유·협박이 이뤄진다. 서경지부와 서씨의 말을 종합하면 ‘계약을 하고 싶으면 서경지부에 가입하지 말라’는 회유가 이뤄진다. 결국 노조 탄압을 위해 도입했다는 것이 서경지부의 견해다.

서씨는 기존 노조(한국노총 산하) 가입원서를 근무 첫 날부터 받는 관행도 있다고 지적했다. 3주 전 같은 층에서 일을 시작한 한 동료 직원이 “근무 첫 날 반장이 다른 노조 가입원서부터 쓰게 했고 10일 후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해당 노조를 탈퇴했다.

노조 출범 때에도 석연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출범식은 지난 7월13일 오후 4시30분 병원의 장소 대여 불허로 세브란스병원 앞 인도에서 진행됐다. 당시 병원은 ‘법적 관계가 없다’는 이유를 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민주노총 소속 노조만 거부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범식 한 시간 전, 본관 6층으로 청소노동자 전원이 긴급 소집됐다. 기존노조였던 기업별 노조의 이아무개 위원장이 연단에서 발언을 했다. 갑작스런 소집에 의심을 품은 연세대학교 학생과 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은 청소노동자가 문 밖에서 ‘나오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문은 보안요원, 태가BM 직원들이 막고 있었다. 회의장 안쪽 문은 반장들이 지키고 섰다. 회의장 안과 밖에서 거세게 항의해 문은 열렸고 조합원은 출범식을 치를 수 있었다.

▲ 지난 7월 초, 휴게실을 막아선 세브란스 보안팀. 사진=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제공

일상적 미행과 감시·채증

세브란스 보안요원의 감시·채증·출입불허도 일상적이다. 노조 출범식 전 서경지부 활동가들은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제대로 출입하지 못했다. 9시 오전조 쉬는 시간에 맞춰 휴게실을 찾아도 십수 명의 보안요원이 문 앞을 가로 막고 출입을 막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활동가가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일부 요원은 이들을 미행했다.

보안요원들은 서경지부 활동가의 동선에 대부분 함께 했다. 서경지부 활동가와 조합원이 취업 규칙이나 이전 단체협약 자료를 보기 위해 업체 및 기존 노조 사무실을 들를 때마다 보안요원들이 찾아와 퇴거 조치를 취했다. 공개를 거부한 업체 측과 서경지부 간 언성이 높아지기 마련이었고 보안요원들은 ‘노노갈등을 우려한 태가BM측의 요청’, ‘안전’ 등을 이유로 조치를 취했다. 취업규칙 게시는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권리임에도 서경지부 소속 청소노동자들은 보지 못했다. 서경지부는 이 또한 '깨알 탄압'의 일종이라 본다.

노조가 선전전을 진행하면 요원들은 카메라를 꺼낸다. 지난 5일 오후 12시 40분, 청소노동자들의 병원 로비 선전전에도 보안 요원 3명이 수시로 청소노동자들의 선전전 활동을 영상과 사진으로 찍었다. 함께 유인물을 나눠주던 박종호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조합원들이 통로 방해로 업무방해죄에 걸리지 않도록 다 벽에 붙어 서서 피켓을 들고 있다. 구호도 외치지 않는다"면서 "선전전할 때마다 이렇게 감시를 받는다"고 말했다. "병원 청소노동자 이야기입니다. 한번씩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 조직부장이 소리 높여 말하자 보안요원은 '조용히 해달라'고 제지했다.

박 조직부장은 세브란스병원이 '보안요원' 뒤에 숨었다고 지적했다. 청소노동자는 병원에 간접고용된 용역업체 직원이고 보안요원도 마찬가지다. 박 조직부장은 “저들도 간접고용 노동자인데 병원이 시키니 저렇게 하는 거 아니겠냐”면서 “병원은 ‘법적관계’없다고 전혀 나서지 않고 보안 업체만 우리랑 부딪히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2월5일 병원 로비 선전전 모습. 조합원들이 통행방해를 하지 않으려 벽에 붙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세브란스, ‘노조 동향파악‘도 지시했다

원·하청이 모두 노조탄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강한 의심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지난 9월 말 태가BM ‘업무일지’ 발견이다. 노조가 지난 수개월 간의 업무일지를 확보한 결과 세브란스병원 측이 하청업체에 노무관리를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9월7일 업무일지엔 최아무개 세브란스병원 사무팀 파트장이 쓴 “민노 집회정보 (9/8, 9, 12, 13) 만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다혜 한노집행부 방문 소란 등은 철산노 위원장에게 실시간 전달해 ‘노노대응’ 유도바랍니다“가 적혀 있다.

▲ 9월7일 업무일지.
▲ 9월20일 업무일지.

9월20일 업무일지에는 “사무실(2F) 난입 건에 대해 법적조치 진행 바랍니다”란 내용이, 9월25일엔 “주말, 휴일 등 민노 서경지부 또는 태가비엠 민노 조합원의 소행으로 보이는 민노총 전단지가 병원장실 등에 배포(유도)된 점에 대해 유의하시고 주말, 휴일 민노 서경 및 민노 조합원 동향파악 집중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모두 태가BM측에 하달된 것이다.

이와 관련, 병원 측은 "병원은 (하청업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답만 내놓았다. 태가BM 관계자는 6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노노대응은 당시 노조끼리 다투는 자리가 있어서 노조끼리 해결해야하는 상황을 표현한 말로 보이는데, 오해의 여지가 있게 쓰인 것”이라면서 “병원에서 지시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업무일지는 보통 소장이 싸인해서 올리는 것으로 회사도 당시 그 사항을 몰랐다”면서 “병원 측이 압력을 행사하거나 지시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병원장 나와달라’ 소리쳤는데 바로 유치장행

서경지부 활동가 3명과 청소노동자 8명은 현재 세브란스병원 측으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다. 활동가들은 병원 내 소란 등으로 인한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

10월7일과 12일이 특기할 만하다. 7일은 병원의 '노조 탄압' 지시 문서 발견으로 노조 활동 개입 정황이 확인됨에 따라 시위가 열렸다. 12일은 이 건에 대해 대화를 하기 위해 노조가 병원 사무팀에 고지한 면담날이었다. 12일 약속시간인 9시, 병원 사무팀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최 조직차장에 따르면 “지금껏 이처럼 문이 잠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병원장을 찾아가자”는 취지로 서경지부 활동가 3명은 병원장실을 향했다. 보안요원 십수명이 스크럼을 짜고 병원장실을 지키고 있었다. 최 조직차장은 “문고리 하나 못 잡아보고 잡혀갔다”면서 “몇 번 ‘나와달라’ 소리치면서 보안요원과 실랑이를 벌였는데 경찰이 출동해 업무방해로 잡아갔다”고 말했다. 최 조직차장, 박 조직부장, 김윤수 조직부장은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거의 48시간을 채우고 나왔다.

조합원 8명도 ‘로비 선전전’ 때문에 고발당했다. 업무방해, 명예훼손, 특수건조물침입 등 3가지 혐의다. 사업장 내의 노조활동은 보장받아야 할 단체행동권이다. 지난 5일 이들의 선전전을 지켜 본 결과 업무가 방해될 정도의 막대한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20명 조합원이 로비 곳곳에 벽에 등을 딱 붙이고 피켓을 들고 있었고 두어 명이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병원은 노조가 안된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병원은 공공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펼치는 장소다. 많은 환자들이 와서 진료받고, 직원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근무한다”면서 “이런 곳에서 고성, 소란 행위를 발생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 ⓒgettyimagesbank

“내버려두면 알아서 선택할 것”

서씨는 지금 심정을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거다. 자연스럽게 청소노동자들이 다 알아서 선택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알아서 ‘더 좋은 노조’를 택할테니 원·하청은 방해를 멈추라는 말이다. 태가BM은 “정황이 곧 진실이 아니다. 하나의 일만 가지고 전체적으로 확대해석해서 우리도 억울하다”고 밝혔으나 서씨는 “반장들이 시도때도 없이 회유하고 갑자기 집단탈퇴를 하고, 민주노총 조합원만 방해하는 걸 직접 겪는다. 사측이 탄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가BM측은 집단 탈퇴라 불리는 사건은 건별로 다 그렇게 흘러간 사정이 있다고 해명했다. 전 소장이 ‘민주노총은 안 된다’고 협박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계약하기 이전부터 세브란스에서 근무하던 소장으로, 문제가 발생해 퇴사시켰다”면서 “만약 압력이 있었으면 ‘잘린’ 소장이 폭로하지 않았겠느냐”고 답했다. 태가BM측은 “사측은 노조 활동에 개입한 적이 없다”면서 “노조탄압 정황이라고 하는데 개별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경지부 조합원은 현재 70여 명 수준이다. 여러 번 집단 탈퇴를 겪으며 다수 노조에서 탈락해 2018년까지 교섭권을 얻지 못했다. 교섭권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정상적인 노조 활동’이다. 이들은 ‘민주노조 인정하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지난 10월7일부터 점심시간마다 1시간 씩 본관 로비 선전전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선전전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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