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21일자 보도 “중국, 한국 드라마·영화·예능 방영 금지”는 파급력이 크다. 중앙일보 보도 이후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중국 소비의 영향이 큰 엔터테인먼트와 화장품 관련주가 21일 줄줄이 급락했다는 소식도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이언왕 등 중국 언론이 “한국 드라마·영화·예능 프로그램과 한국 작품을 리메이크한 콘텐츠가 모두 방송 금지된다”는 지침을 광전총국(중국의 미디어규제기구)이 비공식적으로 내렸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번 조치는 지방 31개 성·시 위성방송은 물론 지방 방송과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까지 적용돼 중국 내 한류 콘텐트 유통이 크게 타격을 받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 21일 중앙일보 1면 기사.
중앙일보는 또 중국의 한 누리꾼이 이 같은 사실을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 올렸다는 점도 근거로 삼았다. 지난 주말 웨이보에는 방송사 내부 게시판으로 보이는 이미지 캡쳐화면과 함께 “장쑤성 방송국 책임자가 한국 스타가 출연하는 모든 광고 방송을 금지하라는 상부 통지를 받았다. 사태가 긴급하다. 방송사 모두 행동에 들어갔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중국에서 기사까지 나올 정도면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해당 기사를 살펴보면 “최근 온라인에 위성TV 내부 공지를 캡쳐한 사진이 올라왔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중국언론이 정부나 방송사를 취재한 게 아니라 인터넷 게시물을 캡쳐해 인용했고, 한국 언론이 이를 또 다시 인용하며 실제 ‘금지령’이 내려진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이번 금지령 논란은 ‘소문’일 가능성이 크다. 관련 보도를 한 매체는 신랑웨이보, 왕이, 텅쉰, 관찰자망 등인데 중국 내에서 공신력이 높지 않은 인터넷 매체에 속한다. 중국 내 주류언론인 CCTV, 신화사, 인민일보 등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기관인 광전총국은 미디어 관련 정책이 나올 때마다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는데 21일 광전총국 홈페이지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대동소이한 이야기가 이전부터 몇 차례 흘러나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 7월 광전총국이 한류 제재 지침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지만 실제 공식지침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8월4일에는 서울경제가 “[단독]중국 CCTV 광전총국 9월1일부터 한류제재 명문규정 발표”를 보도하고 관련 기사가 쏟아졌으나 중국 누리꾼이 CCTV뉴스 영상에 자막을 합성한 이미지에 한국 언론이 속은 것으로 밝혀졌다. 시기적으로 사드배치가 논란이 된 때가 아닌 지금 이 같은 조치가 나온 점도 의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제재 지침이 내려지거나 관련 통보는 없었다”면서 “7~8월에도 같은 얘기가 업계에서 나왔다. 지금도 이 수준인 거 같은데 공식적 지침이 나기 전에는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콘텐츠 방영을 중단하는 지침을 내리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성현 고려대 한류융복합연구소 겸임연구원은 “중국 정부에 이 같은 권한이 있는 건 맞지만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 사업자들에게도 타격이 크기 때문에 ‘전면 중단’같은 조치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면서 “실제 콘텐츠 방영이 끊기더라도 전면금지가 아니라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침이 내려졌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사드배치 결정 이후 중국 시장에 한류 관련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정부가 통제하는 분위기라기 보다는 사업자들이 정부 눈치를 보거나 자발적인 판단으로 교류를 중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중국에 다녀온 언론계 관계자는 “새로 관계를 형성하려는 방송사와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 건 맞지만 이미 협력체계가 구축된 방송사와는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현 연구원은 “실제 관련 지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중국 내에서 한류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는 건 사실이고 이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TV에서 한류콘텐츠 비율이 높아 중국정부가 이를 규제하려는 상황이 있었고, 중국 사업자들도 한국측의 지나친 출연료 요구 등에 부당함을 느껴왔다. 이때 사드배치 결정이 빌미가 됐고, 한류콘텐츠를 줄이는 기조가 형성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중국측 대응은 한류 콘텐츠 비율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려는 ‘기싸움’의 성격이 강하다.

번역= 콘텐츠기획팀 최고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