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도 하나의 언어다. 지난 2월 제정해 지난 8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한국수화언어법 제1장 제1조에 따르면 한국수화언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다. 법에서도 이중 언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지만 아직 수화언어를 방송에서 접하긴 어렵다.

18일 SBS와 국립국어원은 SBS 목동 방송센터에서 ‘존중과 배려의 방송언어’라는 주제로 지난 1년간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 소속 황용주 연구원은 ‘언어 소외 계층 방송언어 개선을 위한 기초연구’라는 주제로 한국수화언어 통역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은 방송에서 ‘수어(수화언어)’사용이 늦은 편이다. 영국의 경우 1950년대 이미 수어방송이 시작됐고 한국에서 수어가 방송에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79년이다. 수어 대중화는 늦어졌다. 1982년 금옥학술재단에서 ‘표준수화사전’을 발간했고, 1996년 수화연구 창간호를 발간하면서 활성화됐고, 수화통역학 전공은 2002년에 와서 설립됐다.

▲ 수화통역방송의 영역별 최초 프로그램. 자료=국립국어원

수화방송 5% 제작편성 의무

수화방송은 의무다. 장애인 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 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방송통신위원회 고시 제2015-4호)에서는 중앙지상파는 2014년까지, 지역지상파는 2015년까지, 보도종합편성은 2016년까지 방송시간 중 자막방송 100%, 화면해설방송 10%, 수화통역방송 5%의 장애인방송물을 제작·편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앙지상파, 위성방송, 종편·보도PP(Program Provider)는 수화통역방송 5% 할당을 100% 달성했다. 지역지상파(95.7%),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98.5%),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95.5%)는 수화통역방송 할당량을 편성하지 못했다.

황 연구원은 “제작환경이 여의치 않은 방송사들이 방송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지원을 확대하고, 방송사도 5%만 지킬 것이 아니라 편성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화통역방송이 주로 아침이나 점심시간에 몰려있고, 황금시간에도 편성됐다고 볼 수 있는 곳은 EBS 정도”라고 지적했다.

수화방송에 바라는 점

황 연구원은 한 설문조사결과(김태욱, 2008)를 인용했다. 두 명 중 한명은 수화를 통해 프로그램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화프로그램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답한 비율은 11.4%에 불과했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조금 이해한다고 답한 비율이 46.9%에 달했다.

수화통역방송의 문제점으로는 수화통역사가 화면의 작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어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이 33.6%, 수화통역사의 수화방식이 내가 알고 있는 방식과 다르다는 의견이 22.1%, 수화통역사의 수화동작이 틀릴 때가 있다는 의견이 9.7%, 수화 속도가 너무 빨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26.5%, 전달하는 내용에 비해 수화통역시간이 길다는 의견이 8.1%(중복응답) 등으로 나타났다.

▲ YTN 보도화면 갈무리

일단 기술적인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 황 연구원은 “화면 크기는 요즘은 기술적으로 확대하는 등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화통역의 품질은 여러 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 황 연구원은 “수어도 언어이기 때문에 그냥 표정을 무뚝뚝하게 전달하면 이해하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수화통역사의 자질향상이 중요한데 한국에는 전문분야별 수화통역사가 나눠있지 않지만 미국은 법률, 의료 등 전문분야별로 나눠져 있다”고 말했다.

수화방식 차이도 통일해야 한다. 황 연구원은 “한 예로 ‘사드’라는 용어가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하면 이를 단순하게 지문자로 표현해야하는지 고민이 있다”며 “보통 다른 사람의 방송을 보거나 다른 장애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하다보니 방송국마다 다른데 전문용어나 신조어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상시적으로 용어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고시 기준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황 연구원은 “수화통역자들이 다른 방송출연자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자부심이 있어야 이들이 양질의 수화를 전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2012년에 하루짜리 교육밖에 실시하지 않았는데 전문적인 교육과 수화통역자들 간 네트워크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국의 태도도 변해야 한다. 황 연구원은 “방송준비가 급박하게 돌아갈 수는 있지만 사전고지 없이 원고를 방송직전에 받으면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렵다”며 “한사람의 장애인이라도 그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방송사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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